[오피니언] 공식출시 3주년, 우리가 기아차 스팅어에 빚진 것

어떤 가능성이 상상만으로 머무를 때,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전제 조건들이다. 번드르르한 조건들은 결국 실행을 막는 자물쇠에 불과하다. 때론 그 자물쇠를 끊고 나가느라 상처를 입어도 뚫고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이는 기아차 스팅어 이야기다. 여러 가지 우려와 전제조건을 완벽하게 해결한 차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걸 일단 돌파하는 데 성공한 자동차다.

스팅어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결코 적지 않았다. 국산 후륜 구동 고성능차의 실현을 위한 엔지니어링적인 과제, 좁은 시장성과 수입차의 견고한 아성, 그리고 기아가 성공하면 그걸 고급화시켜 등장할 큰집 장자제네시스의 잠재적 위협까지 한계가 많았다. 그래도 기아자동차는 일단 돌파를 택했다.

물론 그래서 한계도 분명했다. 매끈하고 잘 빠진 디자인과 수준급의 섀시 설계에 기반한 조향 세팅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부분이지만, 아무래도 3.3리터 트윈 터보 고성능 엔진에선 취약점이 드러났다. 오너들의 커뮤니티에서 지적돼 왔던 냉각수 부족 문제라든가 비슷한 배기량과 성능의 수입차 대비 지나치게 나쁜 연비 등이 그것이다.

냉정히 말해 애초에 F1이나 내구레이스와 같은 모터스포츠에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온 독일 고성능차들의 파워트레인 기술을 단숨에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물론 현대기아차의 연구진들조차 그런 한계를 인정한다. 다만 이런 차를, 비교적 구입과 유지 보수에 비용이 적게 드는 국산차로 만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스팅어가 들었던 평가 중 가장 억울했을 법한 내용이라면 그 이후에 등장한 제네시스의 G70와의 우열 비교였다. 사실 후륜 구동 고성능차의 품질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현가 및 조향 연구진은 스팅어 개발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들이 거의 그대로 옮겨간 것이었다. 쉽게 말해, 스팅어가 없었다면 G70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스팅어의 휠베이스는 2,9052,835㎜의 제네시스보다는 더 길다. 스팅어에게 주어진 과제가 더 까다로웠음에도 완성도가 그만큼 높았던 셈이다.

인테리어에 대한 저평가는 조금 더 다중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우선 두 차는 휠베이스 차이가 있는 만큼 세그먼트와 성격도 다르다. 스팅어는 고성능 주행도 가능한 패밀리 세단이라면 G70는 좀 더 1~2인의 탑승자를 중심으로 한 스포티 드라이빙의 본질을 노리는 자동차다. 이렇게 보면 현재 G70의 화려한 인테리어가 스팅어에 어울리고, 스팅어의 심플한 인테리어는 오히려 G70에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차종의 엇갈린 인테리어 방향 역시 시장 상황을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직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고성능차는 신흥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고성능차의 높은 가격은 차량이 주는 고급스러움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영역 소비자들 상당수의 생각이다. 더군다나 나름대로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통해 내놓는 고성능 지향 차량이라면 소비자들은 인테리어 면에서도 강점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제네시스는 이런 요구에 부응하며 G70에 우선 있어 보이는사양들을 우선적으로 집어넣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스팅어의 인테리어 디자인도 크게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다. 대시보드는 기능에 봉사하는 디자인이라는 유럽 고성능 세단의 감각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했다. 심플한 면처리에 터빈형 송풍구 조합 및 간략화된 조작계는 차의 정체성과 잘 어울린다. 무작정 화려한 첨단 편의 사양을 구겨 넣는 대신, GT라는 차의 성격을, 완벽은 아니라도 정석에 가깝게 구현한 자동차가 스팅어다.

오는 하반기, 기아차 스팅어는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반전을 노린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센터페시아 스크린을 현재 주요 차종과 같이 와이드로 바꾸고, 주요 외관 디자인에도 약간의 변경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점 아닌 약점으로 꼽혔던 인테리어 개선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어피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한편 최고 출력 304ps2.5리터 터보 엔진의 투입과 8DCT 결합 등이 예정돼 있다. 이는 3.3 트윈 터보 엔진과 2.0리터 직렬 4기통 터보 엔진 사이의 갭을 메워 줄 것으로 보인다. 파워트레인 라인업에서 이렇게 단계적 고성능화를 보여주는 것은 GT라는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전략이다. 실제로 해외 고성능 브랜드들도 대표급의 고성능 모델과 엔트리급 사이 등급의 동력 성능을내는 파워트레인을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스팅어 소유주들이 애프터마켓을 통해 장착하곤 하는 가변 배기 시스템이 장착된다는 소식도 있다. 감성적으로도 GT라는 성격에 충실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스팅어의 3년 전 등장이 그랬듯, 현재 이후 스팅어의 건재도 한국 자동차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차가 아니었으면 한국 자동차는 제원적 크기 확장에만 집착하는 뻔한 전륜 구동 SUV나 세단만 있는 재미없는 캐릭터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스팅어를 거치지 않고도 후륜 구동 고성능차가 개발됐을지는 모르지만, 해당 플랫폼의 차량이 한국 시장에서 어떤 특성을 갖고 또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부족한 상태로, 비슷한 장르의 수입차와 싸워야 했을 것이다. 스팅어의 판매량이 저조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수입차의 영역이던 이 시장에 국산차의 길을 마련한 전위대 역할을 한 것도 스팅어였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한계는 있지만 이 정도 동력 성능과 주행 감성을 발휘하는 후륜 구동 기반 차량을 수입차 시장에서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찾을 수 있었을까? 스팅어가 나오는 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마니아들이 스팅어에 진 빚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