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패션 디자인부터 패키징 디자인, 가전제품, 심지어 바이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에서 레트로 풍의 디자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디자인 트렌드를 비켜가는 산업 군이 있으니 바로 자동차 산업, 자동차 디자인은 대체적으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트렌드를 만들었으며, ‘레트로’에 대한 시도는 아직 빈약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모빌리티 업계에 ‘레트로’ 수요는 있다
모빌리티 업계 중에서도 바이크 업계는 레트로 디자인을 차용하고, 중요한 수익모델로 자리잡은 케이스다. 이 업계에서 ‘클래식’은 엄연히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으며, 각 제조사들은 최신의 기술을 클래식한 디자인 속에 잘 녹여내고 있다.
일례로 로얄 엔필드의 경우, 대부분의 모델이 엔진은 신형으로 교체가 되더라도 디자인은 20세기 초반부터 생산했던 클래식 바이크의 형태로 제작된다. 그밖에 할리데이비슨 역시 그만의 오랜 디자인 전통을 지키며 기술적 발전도 함께하고 있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물론 과거의 설계와 기술을 현재까지도 적용해 생산하는 기종도 있다. 125CC 단기통 바이크인 혼다 CG125는 일본 혼다에서 1978년부터 2008년까지 생산한 모델인데, 현재까지도 같은 설계와 기술로 중국 우양 혼다 및 신대주 혼다 등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해당 제품이 지금까지도 계속 생산되고 판매되는 이유는 애초에 해당 모델이 개발도상국을 타깃으로 내구성과 정비성, 경제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되어 확실한 수요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폭스바겐 비틀 타입 1의 경우 1938년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2003년까지 무려 65년 동안 같은 설계와 디자인으로 생산됐다. 오랜 기간 동안 출시된 만큼 현재까지도 유럽 및 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부품 수급도 원활하다.
‘레트로’에 대한 자동차 소비자 수요
물론 자동차 업계에서도 전통적인 디자인을 유지 한 채 지속적으로 신 모델을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포르쉐 911 시리즈와 미니쿠퍼의 모델들은 수십 년 전 출시된 1세대 모델의 디자인을 조금씩 다듬어가며 디자인적 전통을 지키고 있으며, 그밖에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 역시 그들만의 패밀리룩 전통성을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완성차 업계에서 완벽하게 수십 년 전 디자인을 지금까지 양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자동차는 종종 튜닝 전문 회사 혹은 콘셉트카의 형태로 출시되곤 하는데, 자동차 마니아들의 반응이 뜨겁다.
일례로 지난해 영국 스윈던 파워트레인(Swindon Powertrain)이 개발한 스윈드(Swind) E 클래식 미니는 1세대 로버미니의 원형을 최신 기술로 완벽히 복원시킨 후 전기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모델이다. 로버 미니와 동일한 외형과, 비율을 갖고 있지만, USB 충전 포트, 열선 가죽 시트, 네비게이션 등이 적용되는 등 최신의 사양을 갖췄다. 또한 효율적인 전기모터 배치를 통해 57:43의 무게 배분을 얻을 수 있었으며, 연료탱크가 사라지며 트렁크 용량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그밖에 싱어 비히클 디자인이라는 회사 역시 오래된 포르쉐 모델을 기반으로 복원 및 튜닝을 거쳐 새로운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이 회사는 특히 포르쉐 911 중에서도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생산된 964 모델로 새로운 자동차를 만든다. 기본 뼈대는 출시 당시 만들어진 그대로지만, 그 외 모든 패널은 탄소섬유로 새롭게 제작하며, 새로운 엔진(3.8L 혹은 4.0L 엔진이 사용된다)과 새로운 변속기를 통해 일반 964모델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을 보여준다. 물론 가격 역시 964 베이스 차량을 제외하고도 3억 5천만원에 달하지만, 포르쉐 감성을 찾는 고객들의 문의가 뜨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클래식카 양산이 어려운 이유?
하지만, 정작 자동차 제조사에서 클래식카 디자인을 양산형으로 출시한 적은 극히 드물다. 예컨데 국내의 경우, 1991년 쌍용자동차에서 출시한 칼리스타 이후, 클래식 디자인의 차량이 양산된 적은 없었다. 당시 칼리스타는 트림에 따라 3,170만 원에서 3,670만 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대로 판매 부진을 겪었으며 결국 출시 3년만인 1994년에 단종됐다. 참고로 칼리스타는 영국 팬더 웨스트윈드가 생산한 로드스터에 포드 엔진을 장착해 제작된 차종이다.
물론 해외의 경우에는 드물게 클래식카 디자인을 현재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모델들이 있다. 일례로 영국의 모건 모터 컴퍼니에서 제작된 모든 차종들은 1900년대 초반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지지만, 파워트레인과 내부 기능은 현재의 기술이 적용된다. 예컨데 모건 에어로 시리즈의 경우 BMW X5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며, 4.8L V8엔진을 통해 273km/h의 최고속도를 발휘할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연간 수백만 대의 차량을 생산하는 대형 제조사에서는 이러한 모델을 만들기 어려운 것일까? 혹자는 대량생산을 통해 클래식카 디자인 모델을 더욱 값싼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클래식카 디자인 모델 개발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하며,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대량생산 방식에 대응할 수 있는 수요자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자동차 모델 개발에는 차량 가격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금액이 필요한데 그만큼의 수익창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밖에 과거의 디자인을 지키면서 갈수록 강화되는 충돌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 역시 더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모빌리티 산업에서 ‘레트로’에 대한 소비자 수요는 분명하지만, 모델의 개발비용부터 소비자가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산업에서 시도하기에는 리스크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카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진 만큼, 클래식카 디자인 모델을 출시해보는 것은 어떨까? 해당 모델을 통한 직접적인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더라도 브랜드의 긍정적 이미지 창출을 통한 장기적 수익을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
글
양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