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CD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구나.” 가끔 에디터의 차에 동승하는 이들이 놀라며 하는 이야기다. 이렇게 놀란 이들은 2020년식임에도 CD 플레이어가 장착된 차종이 있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란다.
자동차용 CD 플레이어가 누린 영광의 역사는 짧다. 1984년 파이오니어 사가 해당 유닛을 처음 선보인 이래, 1987년형 링컨 타운카에 최초로 적용됐다. 국산차에는 1세대 그랜저가 먼저냐, 독립 모델로 등장한 Y카 시대의 쏘나타가 먼저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국산차의 대중적 차종에까지 CD 플레이어가 장착됐던 건 2000년대 초중반이 되어서의 일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에 이미 USB를 활용한 음원 청취가 가능해졌고 2010년대 중반 들어와서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블루투스 기능에 밀려 차량용 CD 플레이어는 빠르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주요 제조사의 최상위급 세단이나 SUV는 옵션으로 블루레이 DVD 기능과 함께 CD 플레이어를 제공하고 있으며, 컴팩트한 차종에서는 소수의 일본 제조사들만 이를 적용한다.
CD 플레이어 유닛의 퇴조는 단 1kg이라도 공차 중량을 덜어 연비를 향상시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자 하는 자동차 기술 개발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차량 온보드 컴퓨터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네트워크와 접속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음악을 재생하는 방식도 이미 2000년대 초중반부터 연구됐다. 아우디와 유니버설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 제조사와 음반사(이제 이것도 사라질 용어지만)의 협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경계마저도 지워지고, IT 플랫폼 기업과 자동차 제조사, 통신사가 손을 잡고 물리적 재생 매체의 필요성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그럼에도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량용 CD 플레이어를 장착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안 되는 차종들이 모두 동급 차종에서 가격이 높은 고급 브랜드거나, 혹은 주 타깃 고객층의 연령이 높은 경우다. 이들 중에는 아직 상당수 자기가 즐겨 듣는 음악을 CD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현재 다수의 음원 사이트 전부에 구축되어 있지는 않다. 개별 곡이 있더라도 CD로 음악을 듣는 이들은, 순서에 의해 재생되는 곡 간의 스토리텔링을 선호한다. 물론 이런 이들은 공룡처럼 소멸해가겠지만, 적어도 현재 30대 후반이나 40대에는 이런 경험을 갖고 또 계속 누리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대상을 뭔가 물리적으로 축소해 소유하는 개념을 사랑하는 일본은 그 독특한 문화적 특성상, 규모는 줄었을망정 아직 CD가 음악 감상의 매체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CD를 좋아하는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음악에 대한 집중 감상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날 들을 음악이 담긴 CD를 고르고 그걸 CD 플레이어에 밀어 넣는 행위 자체가 이미 명료한 선택이고 그 음악을 들어야 할 이유를 말해 준다. 차량의 NVH(노이즈, 진동, 거슬림) 제어가 완벽하지 않아 청음 공간으로 나쁘다고 하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쉽게 가질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자동차는 집중 감상을 위한 완벽한 공간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소유하려는 사람과 CD를 아직 간직하려는 사람 사이에는 정성적 공통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의 세마 쇼, 일본의 도쿄오토살롱, 한국의 오토살롱위크 같은 튜닝카 페스티벌에서 차량을 청음 공간으로 꾸미는 이들을 보면 이런 이들의 존재를 보다 확연히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곧 사라질 것이 예정돼 있는 CD와 그 애호가들의 이러한 습성은 그 이후 세대의 문화적 특성은 물론 자동차를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에디터를 비롯해 CD 플레이어가 장착된 차종을 택한 이들은 짧은 순간을 타더라도 차량의 캐빈을 머무르는 공간으로 본다. 머무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소속감 혹은 소유의 감각과 연결된다.
반면 음악을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배경음의 하나로 인식하는 이들은 거주에 익숙지 않다. 디지털과 모바일에 익숙한 이들은 고정된 공간을 불안해한다. 이들에게 공유되는 플랫폼은 그 인기 주기도 짧다. 이들은 누군가 찾아올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한다. ‘초딩’으로 제유될 수 있는 10대 초중반의 네트워크 유저들이 무언가 고정된 공간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인스타그램을 버리고, 짧은 텀의 고정되지 않은 움직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틱톡으로 대거 이주한 것도 비슷한 사회적 현상이다.
향후 0과 1의 한계를 벗어난 양자 컴퓨팅이 대세가 되고, 네트워크 역량이 인간의 신경망처럼 확장된다면, 이후 등장할 세대들의 사고관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 세계에 일어나는 일과 사물들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전까지의 세대가 알던 언어기호와 의미의 조합 자체가 끊임없이 분열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재화와 물질의 개별 소유를 중시하는 그 이전 세대 세계관의 재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다.
시선을 다시, 근미래에서 현재로 돌려 본다. 지난 6월 1일, 정부 각 부처는 합동으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를 연말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단 비율은 70%에서 30%로 줄었다. COVID-19의 경제 파급 효과로 인한 소비 동결을 최대한 완화하려는 노력이다. 물론 이런 노력도 중요하다. 어쨌든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대환란 이후,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뉴노멀에 적응하라고 부르짖는 주체들은정작 경제 영향 규모가 큰 제조업을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 그림은 있을까? 또한 그 그림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될 향후 세대들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 이동에 대한 개념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물론 출생의 배경이 완전히 다른 이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모 세대가 결혼해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자녀 세대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는 동물의 숲(닌텐도 스위치 게임)과 넷플릭스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개는 농담 이상의 통찰이다.
2020년식 차량에 CD 플레이어가 장착돼 있고, 거기에 들어갈 음악을 고심해서 고르는 걸 즐기는 에디터의 즐거움과 그걸 놀랍게 여기는 세대의 간극은, 어쩌면 문제라기보다 힌트일지도 모른다. 잠깐이나마 머무르고 혹은 소유하는 것이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의 정점에 서 있던 자동차는 이제 사라지려 한다. 자동차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자동차라는 공간을 감각하는 방법이 바뀌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위의 생각은 지극히 이성적인 수준에서 한 이야기다. 여전히, 글자에 의존하는 한 사람은 사랑한 것이 빨리 사라져가서,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 힘들어서 모든 것이 어지럽다. 오늘 차 안에서 들을 퇴근 CD는 그래서 넥스트(N.EX.T)의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