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2020 12월부로 닛산과 인피니티가 한국에서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업계는 술렁였다. 더한 설화(舌禍)를 일으킨 유니클로의 경우에도 퇴출의 분위기는 없었기에, 업계의 충격은 보이는 것 이상이다. 당장 한국 법인의 직원들은 남은 기간 동안 커리어를 이어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결국 토요타·렉서스와 혼다도 그 뒤를 따를 것이란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이 두 제조사와 닛산의 본질적 차이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봤다.

견고한 글로벌 위상 vs
한국 기업에도 한참 달리는 브랜드 가치

토요타와 혼다는 자동차 업계를 떠나서 글로벌 브랜드 랭킹 자체가 다른 기업들이다. CEO가 악기 상자에 숨어서 도망가야 할 상황 따위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기업 문화는 그들도 예외는 아니지만 토요타는 자동차를 넘어 기업 브랜드 전체를 봐도 최상위권에 랭크된다. 2019년에는 인터브랜드 기준으로 7위에 랭크됐으며 이는 8위에 위치한 메르세데스 벤츠보다도 높았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두 말할 필요 없는 1위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 참고로 토요타 바로 위가 삼성이다.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토요타의 시티 솔루션 ‘우븐 시티,’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 7위에 랭크돼 있다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2020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어반 모빌리티, 혼다 e

혼다도 2019년 인터브랜드 글로벌 평가 21위에 올랐다. 특히 친환경성과 신뢰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기술적 완성도에서는 더할 나위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자동차뿐만 아니라 아시모를 비롯해 어반 EV 등 주요 미래 운송수단과 생활 편리 시스템 등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비해 닛산은 52위다. 전년도 대비 브랜드 가치는 6% 포인트 하락한 상태고, 이는 현대기아차가 기록한 36위보다 한참 처지는 순위다. 다만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는 별도로 브랜드 가치로 집계되고 있지는 않다.

물론 르노닛산이 특장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황은 아니다. 경상용 차량 및 소형차, 소형 전기차들은 나름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모터스포츠 영역에의 꾸준한 투자를 통해 신기술 개발도 이어나가고 있으며, 가변 압축비의 VC 터보, 수랭식 인터쿨러를 적용한 고성능 3.0리터 트윈터보 엔진 등 파워트레인 개발도 선구적이다.

그러나 닛산의 경우 브랜드를 상징할 만한 양산차 프로젝트가 십여 년째 멈춰 있다. 좋은 엔진을 개발하고도 그것이 빛을 발할 만한 신차 플랫폼 전략의 부재가 아프다. 그렇다고 전동화 전략이 기민한 것도 아니다. 수년 전에는 품질 신뢰도 문제까지 불거졌다. 물론 여기에는 르노의 뒤에 있는 프랑스 정부가 닛산의 가치를 떨어뜨려 완전한 흡수를 노리려는 계획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저간의 사정이 어찌 됐든 현재 브랜드 가치는 닛산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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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째 ‘에디션’ 발표로 일관하는 GT-R

한국 시장에서의 입지?
‘킬러’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다르다

지금은 국산과 수입을 떠나 각 브랜드가 확고한 정체성에 부합하면서도 소비자들의 숨은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킬러 차종들을 투입할 수 있느냐가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른다. 아직 디테일한 부분은 물론 기초과학 수준 차이에 따른 소재 완성도 등에 차이가 있지만, 그것이 선택에 결정적인 이유가 않는 상황에서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과거와는 다른 입장에 서 있다.

닛산, 불매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닛산은 여기서 실패했다. G37의 뒤를 이은 인피니티 Q60S 쿠페는 BMW M2로 가는 유저들을 발길을 잡는 데 실패했다. 패스파인더는 혼다 파일럿이 119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던 20196월에 단 12대가 출고되는 데 그쳤다. 사실 닛산은 불매 운동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았던 2019 9월과 10월을 제외하면 오히려 그 이후에는 불매운동 시작 이전과 판매량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미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가 좁아져 있었다. 그나마 알티마 X-트레일 등이 할인 버프라도 받으며 선방했다.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마지막까지 선방 중인 닛산 알티마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지난해 직접 시승한 QX50

렉서스, 럭셔리 하이브리드의 대명사답게 조용히 회복 중

그러나 토요타·렉서스와 혼다를 이들과 비교하며 다음 타자운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들에겐 믿을 만한 킬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할인 전략을 거의 쓰지 않는 렉서스는 2019 9월 이후부터 2020 4월까지 판매량 450~600대 선으로 고전하다가 5월 들어 신차인 RX 450h, 450hL(롱바디), 소형 하이브리드 SUVUX의 연식변경 등으로 720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렉서스는 품질을 갖춘 럭셔리 하이브리드라는 명확한 포지셔닝이 있는 데다 제품 자체의 부가가치가 높다는 점이 선방의 요인으로 꼽힌다. 2000년대 후반 가속페달 문제, 에어백 문제 등으로 일본 차 이미지가 추락했을 때를 견뎠던 만큼 위기 운영 노하우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 내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윤리) 활동 예산액은 조금이나마 증액하는 등 정성을 들이고 있기도 하다.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연식변경으로 출시된 2021년형 UX250h

토요타, 하이브리드 명가의 전력으로 버티는 중

다만 국산차와 가격 포지션이 일정 부분 겹치는 토요타의 경우는 조금 고전이 이어지고 있다. 불매운동 시작 전 1,200~1,300여 대를 판매했던 토요타는 아직 400~600대 선을 유지하는 데 만족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주력 차종인 캠리 하이브리드와 라브 4 하이브리드는 월 100~200대 내외의 나름대로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렉서스의 NX처럼 국산차 대비 확고한 우위를 갖는 하이브리드 SUV라는 점에서 이 이하로 하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고효율 하이브리드 SUV로 여전히 지지도가 높은 토요타 라브 4 하이브리드

혼다, 기술과 하이브리드의 가치로 재도약 준비

2020년 들어와서 혼다의 판매량은 단순 수치로 보면 크게 떨어져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2019년 하반기, 할인 행사 시 물량이 대거 소진된 결과다. 혼다의 차량 내구성, 성능 등에 대한 평가는, 편의성에서 앞서는 동급 국산차가 등장함에도 여전히 후하다. 특히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하이브리드의 장점인 연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공간감의 대형 SUV인 파일럿과 미니밴 오딧세이 등은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다. 아무리 큰 폭의 할인이 있었다지만 그대로 완판됐다는 건 그만큼 품질 면에서 선망의 대상이 돼 왔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혼다는 ADAS 기능인 혼다 센싱을 큰 옵션 차별 없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어코드와 CR-V 등에 적용된 자속 추종 장치(LSF), 추돌 경감 긴급 제동(CMBS) 등은 다른 브랜드의 경우 고가 패키지에 포함되는 기능이다. 혼다는 기술과 제품에 대한 견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반기 주요 차종의 신차 물량을 확보하고 재도약을 노린다.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2020년형 어코드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닛산과는 다른 이유
2020년형 오딧세이

2019 7월 시작된 일본의 경제적 보복행위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국민들의 자발적 불매 운동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 브랜드가 갖는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별개여야 한다. 닛산의 한국 시장 철수가 불매 운동의 여파만이 아니라 한국 시장에 어필할 킬러가 없었던 까닭이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토요타·렉서스, 혼다가 불매 운동으로 철수할 가능성 역시 낮고 그럼에도 나오는 철수설은 바람이나 목적이 담긴 유언비어에 가깝다.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비실대던 닛산과 멀쩡한 토요타, 혼다는 다르다. 이 둘이 투자 법인을 철수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될 때의 한국 경제상황의 제반 상황은 가정하기도 피곤하다.

최근 일본 프로야구단과 한국 프로야구단 사이에 서로 전광판 응원 메시지를 교환하는 이벤트가 진행됐다. 이벤트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기업 활동은 민간 교류의 장이자 한 나라 국민이 세계를 더 넓게 볼 수 있는 통로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