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시기 러시아에도 럭셔리 세단이 있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연임이 또 한 번 가능해지면서 과거 냉전 시대 강국이었던 구소련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는 현재 세계의 긴장감을 부추기는 요인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러시아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기도 한다. 국민들이 잘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 미국과 함께 세계를 동서로 양분하며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마음껏 누렸던 구소련 시기의 그들은 과연 어떤 차들을 만들었을까? 그 당시 제작된 러시아의 럭셔리 세단들을 알아봤다.

공산권 국가의 캐딜락
ZIL-4112R

ZIL(Zavod imeni Likhachova)은 제정 러시아를 몰락시키고 사회주의를 표방한 러시아 혁명 바로 직전인 1916년 설립되었다. 시기가 혼란했던 터라 바로 자동차를 생산하지 못하고 7년 뒤인 1924년에야 첫 번째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혁명 이전 러시아도 나름대로 전제군주제 하에 산업화에 힘썼다. 특히 ZIL의 공장은 당시 최신 미국식 제작 및 장비 시설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했다.

영광과 혼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함께 한 이 브랜드는 2013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 브랜드는 공산권 세계의 캐딜락 같은 존재였다. ZIL은 구소련 뿐 아니라 북한, 베트남 등 여러 공산권 국가 수장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2세대인 ZIL-110의 경우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 김일성, 베트남의 호치민 등이 애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러시아 및 동유럽 국가의 개혁과 개방을 이끈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의전차로도 이용됐다.

가장 최근 차종으로는 ZIL-4112R을 들 수 있다. ZIL-4112R은 2006년 출시된 차량이지만 1985년에 나온 이전 세대 ZIL-41047과 비슷한 외관 디자인이 특징이다. 그러나 실내는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부럽지 않을 정도로 호화스럽다. 샴페인 냉장고는 물론 열선 및 통풍이 되는 후방 시트가 있으며 운전석과 뒷자리 사이에 격벽도 있어 VIP의 사생활도 보호해준다. 전반적으로 ZIL-4112R의 실내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50 풀만의 느낌을 풍긴다.

이 밖에도 두꺼운 도어 및 창문, 런플랫 타이어 등 방탄 장비들이 적용됐다. 그래서 중량이 무려 3.5톤에 달한다. 파워트레인은 자체 개발한 최고추력 400ps의 7.7리터 V8엔진과 상용차 전문변속기 제조사 앨리슨사의 6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해 구성했다. 참고로 이전에는 3단자동변속기를 탑재해 효율성이 엉망이었다. ZIL은 사라졌지만 2013년 경 설립된 것으로 추측되는 자동차 제조사 아우루스가 세나트 리무진을 의전차로 제작하며 ZIL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쿠바의 카스트로가 시거 다음으로 사랑했다?
가즈 M13/M14 차이카

가즈는 1932년 설립되어 소련군의 군용 차량을 제작하던 회사였다. 가즈의 대표 차종으로는 1956년부터 2010년까지 생산된 볼가 시리즈가 있다. 가즈 볼가는 현재 택시로 이용될 정도로 흔한 차량이지만 구소련 시절에는 고위 당원들만 탈 수 있었던 고급 승용차였다. 그리고 볼가 보다 더 상위에 있는 차량이 바로 차이카다.

1세대 가즈 M13 차이카는 1959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됐다. 그런데 2세대 가즈 M14 차이카 가 1977년 출시, 1988년에 단종되어 활동 시기가 살짝 겹친다. 또한 앞서 ZIL의 고급 세단처럼 여러 공산국가에서 많이 사용됐는데 특히 쿠바에서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가 이 차를 애용했다. 이는 당시 소련의 주석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선물 받은 것으로 본래 피델 카스트로는 M13 차이카 외에 앞서 이야기한 ZIL-111도 선물 받았지만 가즈 차이카가 더 빠르고 강력해 차이카를 더 많이 탔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소련의 우방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왕족들에게도 선물한 바 있다.

차이카의 파워트레인은 5.5리터 V8 엔진과 3단 자동변속기를 결합한 것이었다. 엔진의 최고출력은 198ps에 달했고 최고속도도 160km/h로, 당시로서는 매우 빨라 소련의 정보기관 KGB에서도 많이 애용했다. 2세대는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사용하지만 최고출력이 살짝 향상되어 223p를 발휘 했다. 그러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개혁 및 개방 정책으로 단종됐다. 심지어 차이카의 설계도와 제조시설 모두 파괴됐다고 전해진다.

푸틴 대통령의 소시적 애마?
타트라 613

타트라는 스코다와 함께 체코의 양대 자동차 제조사다. 체코도 과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정했다. 그런데 타트라는 역사가 제법 길다. 1850년에 설립해 마차와 기차 등을 제작하며 사업을 확장했으며 1897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럭셔리 세단 및 상용차 등을 가리는 것 없이 제작하던 회사였으나 지금은 승용차량 제작은 일절 하지 않고 트럭 및 버스 등 상용차만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타트라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포르쉐 보다 먼저 공랭식 엔진을 개발, 제작한 제조사였다는 점이다. 심지어 현재도 상용차에 공랭식 디젤 엔진을 장착할 정도다. 또한 타트라에서 제작한 승용차들은 모두 포르쉐 911처럼 리어 엔진 후륜 구동(RR방식)을 사용했다. 참고로 히틀러와 포르쉐 박사가 타트라의 차량을 보고 폭스바겐 비틀 개발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하니 포르쉐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타트라가 독일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면서 타트라의 소송은 무시됐다. 그 정도로 당시 타트라의 기술력은 매우 대단했다. 또한 엔지니어링 외에 공기역학에도 일가견이 있어 차량을 제작할 때도 공기역학을 신경 쓴 디자인으로 나왔었다.

이 중 플래그십 세단 타트라 613은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했으며 판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고위 간부들을 위한 차량으로 소개돼 메르세데스-벤츠 W116 S클래스와 경쟁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보기관 실력자로 재직 중 탔던 차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요즘 세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롱노우즈 숏테일 형식이다. 엔진의 배치와 구동 방식이 타트라의 전통을 유지해 리어 엔진 후륜 구동이었기 때문에 전방의 기다란 보닛이 전부 크럼플 존이었다. 그래서 정면 충돌 안전성은 시대를 초월할 정도로 우수했다. 실내에도 모바일 오피스의 시작이라고 할 정도로 카폰과 CRT TV, 미니 바 등이 있어 소련 고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운동 성능에는 한계가 있었다. 200ps의 3.5리터 공랭식 V8엔진을 탑재해 230km/h의 최고속도를 발휘할 수 있었고 고급 세단답게 전·후륜 모두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됐지만 리어 엔진, 후륜구동임에도 토션빔 서스펜션을 적용해 오버스티어가 밥 먹듯 발생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찾는 사람만 찾아 판매량이 매우 저조했고 결국 1996년 후속인 타트라 700을 발표 했음에도 불구하고 1999년 단종 될 때까지 75대라는 처참한 판매량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구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던 과학 기술을 보유했고, 국가 총생산도 세계 2위였을 정도로 20세기의 초강대국이었다. 특히 냉전 시대에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 서방 국가들을 이기기 위해 자원 투자도 아낌이 없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주의 체제에서, 어찌 보면 사치품이었던 자동차 분야는 발전할 수 없었다. 세계최초로 우주에 갔다 왔지만 소련 도로에는 라다나 트라반트 같은 소형차들이 대부분이었다. 당 관료들이 타는 고급 차종 역시 이 콘텐츠에서 살펴본 차량 외에 딱히 더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구소련이 자동차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자 했다면 1991년 구소련 해체 및 냉전시대가 끝날 때 즈음에 훨씬 앞선 첨단 기술이 적용된 차를 일찍 선보였을 지도 모른다.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