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자동차의 움직임은 부품들 간의 물리적인 연결 및 유압 장치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기 신호로 작동하는 드라이브 바이 와이어 기술의 보급으로 이러한 상식도 과거의 것이 됐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볼수록 신기한 드라이브 바이 와이어 기술을 살펴본다.
이 역시 항공 기술이 원조? 플라이 바이 와이어
‘엑스(X) 바이 와이어’ 기술의 시작은 비행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초기의 비행기는 조종간과 날개의 플랩, 방향키 등이 철사줄이나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순수하게 조종사의 힘이 필요했다. 그러나 비행기의 출력이 올라가고 제트 엔진이 도입되는 등 사람의 힘만으로 컨트롤 하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유압을 이용해 케이블을 당겨 조종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이 방식을 플라이 바이 케이블이라 불렀다.
유압과 케이블 방식이 결합된 비행기는 조종사가 조종간을 움직이면 그 조종간의 움직임에 따라 유압 밸브가 열리고, 유체가 유압관을 통해 조종면에 있는 유압 작동기로 힘이 전달된다. 그 힘으로 조종면을 움직이는 원리다. 덕분에 조종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유체가 이동하는 관, 유압벨브, 유압펌프 등 유압 시스템들이 추가되어 비행기의 무게가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발생했다. 또한 유압 시스템이 고장 날 경우 제어가 어려워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았다.
이러한 유압+케이블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자식으로 움직이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의 개념이 등장 것은 1950년대였다. 플라이 바이 와이어가 최초로 적용된 비행기는 캐나다의 CF-105 애로우였다. 참고로 CF-105는 캐나다 공군이 개발한 초음속 요격기로 정치적 문제로 도입되지는 못한 비운의 전투기다. 초기의 플라이 바이 와이어는 완전히 전기 신호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유체가 흐르는 관을 전선으로 바꾼 것이 전부였다. 즉, 조종간을 입력하면 전기 신호가 전선을 타고 흘러가 조종면에 있는 유압 구동 시스템을 작동시켜 움직이는 원리다. 그래도 완전 유압식 시스템보다 무게가 훨씬 가벼워 비행기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이 후 전선이 사라지고 컴퓨터가 모든 것을 계산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등장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드라이브 바이 와이어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80년대 이전까지 자동차는 케이블과 톱니바퀴가 직접 맞물려 움직였다. 물론 지금도 케이블 방식을 많이 사용하며 바이 와이어 방식은 주로 전기차나 고가의 자동차에만 사용되고 있다. 자동차의 와이어 기술은 적용 부위에 따라 스로틀 바이 와이어,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스티어 바이 와이어 등으로 부른다.
스로틀 바이 와이어(Throttle By Wire)
먼저 스로틀 바이 와이어는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형태다. 과거의 자동차는 엔진에 공기를 공급해주는 스로틀 바디와 가속 페달이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어 직관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케이블이 느슨해지거나 끊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출력 향상에도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전자 제어 방식, 스로틀 바이 와이어가 도입됐다.
스로틀 바이 와이어는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컴퓨터가 최적의 공기양을 계산해 스로틀을 개폐 명령을 내려 엔진 내부로 공기를 넣어주는 원리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 초기에는 굼뜨고 오작동이 많았다. 현재는 많이 개선 됐으며 스로틀 바이 와이어 방식이 아닌 자동차를 찾는 것이 힘들 정도로 많이 보급화됐다. 또한 자동차의 바이 와이어 기술 중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래서 케이블로 직접 작동하는 것 보다 오작동 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운전자에게 주는 피드백도 우수하다. 참고로 최초로 스로틀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사용한 자동차는 1988년형 BMW E32 7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Brake By Wire)
그리고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는 브레이크 액이 지나가는 관이 대신 전기 신호로 제동을 하는 방식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유압식 브레이크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는 주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적용하고 있다. 유압식 브레이크는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진공 배력 장치, 하이드로백(hydro-vac)을 통해 마스터 실린더가 브레이크 액을 주입하고 브레이크 액이 각 바퀴의 피스톤을 밀어 패드를 디스크에 밀착시켜 제동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그러나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방식은 이 모든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이드로백도 없다.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는 패드로 디스크를 잡아 제동하는 것은 일반 브레이크와 동일하지만 유체관 대신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전기 신호를 보내면 컴퓨터가 계산해 운전자가 의도한 양만큼의 힘을 마스터 실린더로 보내는 원리다.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시스템은 1세대 토요타 프리우스를 시작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동 시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으며 살짝 밟아도 확 제동되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꼈다. 물론 최근에는 그런 느낌을 많이 개선해 일반 브레이크와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까지 구현했다. 특히 전기차 기반의 F1이라 불리는 포뮬러 E를 통해 그 기술력이 한층 다듬어졌고 이는 아우디 E-트론, PSA 그룹의 DS3 크로스백 E-텐스와 같은 전기차 라인업에 적용되고 있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Steer By Wire)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은 개념 자체는 과거 비행기에 플라이 바이 와이어가 개발된 시기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자동차에는 2013년 인피니티 Q50를 통해 처음 도입됐기 때문에 바이 와이어 가 적용된 장치 중 역사가 짧은 편이다. 이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티어링 시스템의 변천사를 간략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무파워 핸들’ 혹은 휴먼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스티어링휠과 조향 장치가 바로 연결되어 순수 운전자의 힘만으로 조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커지고 무거워지면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졌고 1951년 유압의 힘으로 조향 할 수 있는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이 개발됐다. 그러나 이 역시 엔진의 동력 중 일부를 계속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졌고 그래서 개발 된 것이 유압 대신 모터로 작동하는 전기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이다. 이 방식은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제조사에 따라 MDPS, EPS 등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스티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 스티어링 휠과 조향 장치에 물리적인 연결 없이 전기 신호로 조향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물리적인 연결이 없기 때문에 노면의 요철이나 충격이 운전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안락한 승차감을 주며 보다 빠른 조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스티어링 휠을 통해 전해지는 물리적인 감각이 없어 아직까지는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평이 많다.
드라이브 와이어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운전 시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 전해지는 피드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내연기관의 수명이 길어봐야 15년 정도 남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자동차의 전동화와 자율주행화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바이 와이어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과거 SF 영화에서 보던 운전대가 없고 직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보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글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