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기업에서는 특허가 곧 경쟁력이 이자 수입원이므로 신기술을 개발하면 무조건 특허부터 낸다. 만약 특허권을 침해하게 되면 억대의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특허권 침해는 중대한 이슈다. 자동차 기업에서 포르쉐가 보유한 특허는 어마어마하고 과거에도 그러했다. 그런데 포르쉐 창업주인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폭스바겐 비틀을 개발할 당시 특허 기술을 침해한 사건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상대는 체코의 자동차 제조사이자 공랭식 엔진의 본좌라 불리는 타트라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그 내막은 무엇이었을까?

히틀러의 자동차 비틀, 반전을 낳다

우리나라에서 폭스바겐과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타트라와 한스 레드빈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폭스바겐은 시가총액 3위의 대기업이고 타트라는 체코에 있는 화물차를 전문 제조사다. 하지만 과거에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폭스바겐과 타트라의 운명을 역전시킨 자동차가 바로 비틀이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2019 폭스바겐 비틀 파이널 에디션

지난 2019년을 끝으로 단종된 비틀은 귀여운 외모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지만 탄생 배경은 전혀 귀엽지 않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히틀러와 포르쉐를 창립한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자동차이며 이를 판매한 수익으로 대량 살상무기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손자들과 함께한 페르디난트 포르쉐, 왼쪽은 911의 아버지라 불리는 F.A. 포르쉐, 오른쪽은 VW 제국의 군주 페르디난트 피에히

그런데 실제로 이 비틀은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타트라와 타트라의 엔지니어 한스 레드빈카의 특허 기술을 베껴서 만든 것이었다. 참고로 한스 레드빈카와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둘 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엔지니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히틀러를 통해 서로 교류하던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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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레드빈카

한스 레드빈카와 페르디난트 포르쉐 모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이다. 한스 레드빈카는 비엔나 근처 클로스터노이부르크,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프라하 근처의 브라티슬라비체 나트 니소우에서 태어났다. 이후 한스 레드빈카는 슈타이어에 입사했다가 네셀도르프(오늘날 타트라)에서 자동차 개발 및 디자이너로 이직했으며,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오스트로다임러와 다임러벤츠에서 자동차를 개발하다 포르쉐를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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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트라 T11

1924년 한스 레드빈카는 공랭식 수평대향 엔진을 앞쪽에 탑재한 타트라 T11을 선보였다. 타트라 T11은 매우 저렴한 가격에 성능과 품질도 우수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었다. 그래서 당시 자동차 개발자들은 타트라 T11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농기계,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존속하고 있는 구트브로트의 요셉 간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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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트브로트 스탠더드 슈페리어

그는 T11의 엔진을 뒤에 배치하면 공력 성능, 제작 단가, 성능 등 모든 면에서 더 효율이 높을 것이라 판단하고 1932년 리어엔진 방식의 스탠더드 슈페리어를 출시했다. 그러나 리어 엔진의 최대 단점이 바로 엔진 냉각이었다. 스탠더드 슈페리어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타트라 프로토타입 V570

같은 시기에 한스 레드빈카와 타트라도 리어 엔진 자동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리어 엔진의 단점인 냉각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에어 스쿠프와 쿨링팬 등을 장착했다. 그렇게 해서 프로토타입 V570을 공개했다. 2년 후 1934년에는 프로토타입 V570을 기반으로 타트라 최초의 리어엔진 자동차 T77을 출시했다. 소형 차였던 스탠더드 슈페리어와 달리 T77은 대형 차였고 성능도 우수해 당시 히틀러와 나치의 리더 로베르트 라이 등이 애용했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타트라 77

포르쉐가 비틀을 만들기 위해 저질렀던 ‘범죄’,
나치 권력과의 협잡

자동차 마니아이자 국가 사회주의자인 히틀러도 T77에 영감을 받아 독일산 국민차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마침 페르디난트 포르쉐도 타트라처럼 대중적인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히틀러는 페르디난트 포르쉐에게, 500만 원 정도의 가격에 성인 2, 아이 3명이 넉넉하게 탈 수 있어야 하며 안정적으로 아우토반을 100km/h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포르쉐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어 했지만 막상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차를 개발하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KdF 바겐

일단 히틀러가 요구한 조건 즉, 단가와 그에 맞는 디자인을 만족시키려면 리어엔진 배치 방식을 최선이었다. 당연히 포르쉐도 리어엔진의 단점인 냉각 시스템 문제에 부딪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내지 못한 그는 타트라가 사용했던 방식인 냉각팬과 에어 스쿠프를 장착해 출시했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KdF 바겐, 비틀

물론 우연히 만들고 보니 타트라의 시스템과 같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냉각팬과 에어덕트를 이용한 리어엔진 쿨링 시스템은 한스 레드빈카와 타트라가 특허를 낸 상태였다. 따라서 우연이든 아니든 포르쉐가 이 시스템을 사용하려면 타트라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그대로 해당 기술을 가져다 적용한 것이었다. , 비틀과 후에 포르쉐로 이어지는 공랭식 수평대향 리어엔진의 근본은 바로 타트라와 타트라의 엔지니어 한스 레드빈카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타트라 T97

여기에 외관 디자인도 문제도 있었다. 비틀이 나오기 2년 전인 1936년에 타트라에서 풍뎅이를 닮은 유선형 디자인에 공랭식 수평대향 엔진을 리어에 탑재한 T97을 출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냉각 문제를 해결 못해 골머리를 앓던 포르쉐가 하루아침에 해결하고 디자인에서부터 파워 트레인까지 똑같은 KdF 바겐, 비틀을 출시했으니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타트라 T97

이에 한스 레드빈카와 타트라는 좌시하지 않고 특허권 침해로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폭스바겐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KdF 바겐은 독일 총통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였고 타트라는 일개 기업이었기 때문에 결과는 물 보듯 뻔했다. 여기에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면서 자연스럽게 한스 레드빈카와 타트라의 소송은 묵살됐다. 심지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한 독일은 비틀을 홍보하기 위해 타트라에게 T97을 단종시키라고 명령했고 개발자인 한스 레드빈카를 5년간 수감하기까지 했다.


'특허 맛집' 포르쉐가 특허권 침해로 소송 당했었다?
1948년식 포르쉐 356(좌), 1938년식 타트라 87(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망해버린 타트라는 1946년 체코슬로바키아 국영회사가 됐다. 시간이 지난 후 1951, 한스 레드빈카는 출소하고 독일 뮌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고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사망했다. 포르쉐가 사망하고 나치가 사라지자 타트라는 폭스바겐을 상대로 다시 특허권 침해로 소송을 걸었다. 이번에는 승소했고 1965년 특허 침해가 인정되어 타트라에게 100만 마르크를 지불했다. 참고로 100만 마르크는 약 65,000만 원 정도로 당시로는 매우 큰 금액이었다.

타트라의 사연은 정말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경우다. 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능력이 좋은 인물이지만 그가 했던 행동들,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특허권을 침해한 일은, 빈말로라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콘텐츠를 통해 그동안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비틀의 새로운 면이 알려졌으면 한다.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