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는 각 세계 각 기관과 단체, 매체에서 올해의 차를 뽑습니다. 그 중엔 세계 여성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이 뽑은 ‘위민즈 월드 카 오브 더 이어(Women’s World Car of the Year, 이하 ‘WWCOTY’)도 있습니다. WWCOTY는 깐깐한 글로벌 자동차 미디어 영역에서도 능력과 경력으로 존경받는 여성 언론인들이 포진하고 있는 공신력 있는 상입니다. 40개국 56명의 여서 언론인들 중에는 우리로 치면 국장급들이 즐비합니다.
선정 분야는 퍼포먼스, 대형 SUV, 대형차, 퓨어 4X4(4륜 구동), 패밀리 SUV, 어반 모델 6개입니다. WWCOTY의 선정 분야는 매년 조금씩 바뀌는데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의 성향을 반영하려는 고민으로 보입니다. 과연 어떤 차들이 선정됐을까요?
퍼포먼스 카(Performance Car) : 아우디 e-트론 GT
WWCOTY 평가단이 꼽은 2021년의 퍼포먼스 카는 아우디의 고성능 전기 세단 e-트론 GT입니다. 지난 해의 스포츠카와 럭셔리카 영역을 통합한 모양새입니다. 단순히 차의 동력성능보다 자동차가 주는 종합적인 경험을 평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사단은, 아방가르드하고 스포티한 이미지와 안락한 승차감, 주행의 부드러움에 먼저 주목했습니다. 포르쉐 타이칸과 J1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보다 장거리 여행에서의 편안함을 고성능의 가치와 연결시켰다는 데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아우디 e-트론 GT는 93.4kWh(실질 83.7kWh) 리튬 이온 배터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타이칸처럼 고속 주행에 대응하기 위한 2단 변속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최고 출력은 350kW(475ps), 최대 토크는 64.2kg∙m이며 부스트 시 최고 출력은 390kW(530ps), 최대 토크는 65.2kg∙m에 달합니다. 0→100km/h 도달 시간은 4.1초(부스트 적용 시), 1회 완충 시 주행거리는 WLPT 기준 448~488km 수준입니다. 유럽에서는 10만 5,950유로(한화 약 1억 4,400만 원)부터 판매되고 있습니다.
대형 SUV(Large SUV) : BMW iX
대형 SUV 영역도 전기차가 선정됐습니다. BMW의 iX가 주인공인데요. iX는 전장 4,955㎜, 휠베이스, 3,000㎜, 전폭 1,965㎜에 달하는 대형 전기 SUV입니다. 물론 전장은 5미터를 넘지 않으나 전기차의 특성상 휠베이스가 극단적으로 깁니다. X5보다 긴 수치죠. 휠 사이즈는 X7과 동일한 22인치가 적용되는데 그러다 보니 오버행은 더 짧고 측면이 우람해 보입니다.
인테리어에서는 스티어링 휠 중앙의 BMW 로고, 기어 셀렉터, 시동 버튼에 BMW i 블루 포인트 컬러가 i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며, 센터페시아의 12.3인치의 대형 디스플레이는 미래적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퍼포먼스 카 선정의 이유를 봤을 때, 이 차도 같은 맥락일 것 같습니다.
출력에 따른 iX의 세부 모델 구분은 xDrive 40, xDrive 50 그리고 xDrive M60으로 나뉩니다. xDrive 40의 배터리 용량은 76.6kWh(실질 71kw)로 최고 출력은 326ps(240kW), 최대 토크 64.2kg∙m이며 1회 완충 시 주행 거리는 WLTP 기준으로 372~425km 범위입니다. xDrive 50의 배터리 용량은 총 111.5kWh(실질 105.2kWh)이며 최고 출력은 523ps(390kW), 최대 토크는 78kg∙m에 달합니다. 1회 완충 시 주행거리는 550~661km 수준입니다.
iX xDrive M60은 전기 세단 i4의 고성능 버전 M50과 함께 전기차 시대의 M이 무엇이냐는 BMW의 대답입니다. 619ps(455kW)의 최고 출력과 M 런치 컨트롤 사용시 112kg∙m에 달하는 최대 토크를 발휘합니다. 0→100km/h 가속 시간도 3.8초에 불과한 괴물입니다. 이 차는 오는 6월부터 미국에서 판매될 예정입니다.
대형차(Large Car) : 머스탱 마하-E
이 부문 선정 차종 역시 전기차입니다. 포드의 야심작 머스탱 마하-E죠. 포드 유럽은 현지에서의 전동화 전략을 매우 강력하게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WWCOTY의 선정이 조금 이해되지 않습니다. 대형 SUV로 BMW iX를 뽑아 놓고 별도의 대형차 카테고리를 둔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 SUV인 마하-E를 택했네요. 마하-E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차라리 EQS가 들어갔어야 할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마하-E도 휠베이스는 2,984㎜에 달하지만 전장이 4,714㎜로 대형이라 보기엔 작습니다. 엔진과 변속기가 없는 전기차 특성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프렁크(frunk, 프론트 트렁크)와 크럼플 존(사고 시 일그러지는 여유 공간) 때문에라도 앞쪽 공간을 남겨두는 추세입니다. 결코 전기차이기 때문에 이 정도면 대형이다,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마하-E에 적용되는 배터리는 전력량에 따라 70kWh, 91kWh 2종류입니다. 모터 수, 구동 방식, 출력에 따라 사양이 다양합니다. 가장 동력 성능이 출중한 GT 퍼포먼스의 경우 358kW(480ps)로 0→100km/h 가속 시간이 3.5초에 불과합니다. 비슷한 영역에서 가속 성능에 모든 것을 건 테슬라와 비슷한데 완성도는 더 높다는 실제 유저들의 평가도 보입니다.
차라리 iX를 전년도에 있던 럭셔리카 영역으로 옮기거나 머스탱 마하-E를 EV 영역으로 옮겼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물론 전동화 차종들이 대세를 이뤄가는 과정인데, 별도로 EV 영역을 두는 것이 혼란스럽고 고민됐을 거란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납득은 어려운 선정이었습니다.
퓨어 4X4(Pure 4X4) : 지프 랭글러 4Xe
4륜 구동 SUV 영역에서는 지프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4Xe가 선정됐습니다. 마르타 가르시아(Marta Garcia) WWCOTY 심사위원장은 이 차를 두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진정성을 제시한 차로 WWCOTY의 방향성에도 부합하는 차”라 평가했습니다. 구 FCA의 전동화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삼성 SDI의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 등으로 물꼬를 텄습니다. 여기에 전동화에서 선제적이었던 구 PSA 그룹과 한 식구가 되면서 기술적 진화의 방향도 분명해졌습니다.
4Xe 파워트레인은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과 15.2kWh 용량의 리튬이온 고전압 배터리, 2개의 모터–제너레이터를 장착했습니다. 최적의 조건에서, 50km까지(유럽 기준) 전기 모드주행이 가능합니다. 최고 출력 사양은 380ps와 275ps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0→100km/h 가속 시간이 6.4초 정도입니다. 유럽 기준으로, 하이브리드 모드에서의 연비는 3.5L/100km 즉 환산하면 28.5km/L 정도입니다만, 북미 기준 복합연비는 49mpg(20.8km/L) 수준입니다. 참고로 한국 기준의 복합연비로는 12.7km/L입니다.
패밀리 SUV(Family SUV) : 기아 스포티지
최적의 영역에 최적의 차가 선정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패밀리 SUV 스포티지는 뭔가 입에 착 붙습니다. 스포티지는 유럽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스포티지와 EV6의 인기를 기반으로 기아 브랜드가 월간 판매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기아는 유럽 전략 차종들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아 왔는데, WWCOTY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사실 최근 기아는 유럽에서 스텔란티스, 특히 구 PSA 그룹 브랜드인 푸조, 시트로엥과 가는 길도 비슷하고 디자인 언어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에서입니다. 등화류에서 세로형의 DRL을 통해 포인트를 주고, 보닛과 측면 절곡을 통해 전체적인 인상을 강조하는 방식 등 디자인적 요소에서부터 1.6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 자동변속기까지 많은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다만 푸조가 PHEV를 지향한다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또한 신형 니로의 컬러 포인트는 시트로엥의 핵심 디자인 포인트이기도 하죠. 요철에 대응하는 서스펜션 세팅도 시트로엥이 주력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들이, 유럽인들로 하여금 기아의 신차를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유럽인들에게 신뢰받는 대중적 브랜드와 나란히 보인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요. WWCOTY 평가단도 푸조 3008과 비교하며 그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2개의 12.3인치 터치스크린의 시인성과 사용성, 수납 공간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