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AR,PLEASE’ 외침 F1도 외면할 수 없었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수도 키예프에서 교전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우크라이나 인들과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이 평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소망과는 달리 상황은 악화하고 있습니다. 수적, 질적 열세인 우크라이나의 병력은 러시아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내진 못하고 있습니다. 키예프 시내에서의 작전은우크라이나의 평범한 시민들까지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나서면서, 러시아군 병사들조차 꺼림칙해할 정도로 더욱 처참해질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이런 가운데 국가 간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한 중국은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며 안보리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무산되는 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들이 이러한 군사 공격을 지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현재 러시아의 주요 도시에서는 시민들의 반전 시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물론 이들은 속속 체포되고 있습니다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서 1,700여 명의 시위자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선출된 권력자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마찬가지로, 무소불위라 하더라도 푸틴이 두려워해야 할 선출의 주체 러시아 국민들을 향해 평화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코미디언 출신이라 무능하다는 말도 많이 돌지만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무시하는 폭력적 언사입니다. 그의 전략은 힘없을지언정 정확합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보다 더 큰 용기로 러시아를 비판하고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바로 자국 러시아의 스포츠 스타들입니다. 2월 25멕시카노 텔셀 오픈 테니스 대회 8강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차주 발표될 세계 남자 테니스 랭킹 1위를 확정지었지만 테니스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습니다그는 중계화면 카메라에 ‘No War Please(제발 전쟁을 멈춰 달라)’는 메시지를 쓰는 세리머니를 전했습니다또 다른 러시아의 테니스 스타인 안드레이 루블레프도 카메라에 이 메시지를 썼습니다

세계적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하는 러시아 선수들은미국 기반의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하거나 팀에 소속돼 있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스포츠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우정의 기회이기도 하니까요그러나 그것도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되면 묘하게 갈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북미 아이스하키 리그(NHL)의 슈퍼스타인 알렉산더 오베츠킨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져 있으나이번 침공에 대해서만은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반면 보다 큰 금액과 기업 간 이해 관계가 맞물린 포뮬러 원(F1)에서 활약하는 드라이버팀의 경우 입장이 난처한 상황입니다포뮬러 원 내 유일한 미국 국적 팀인 하스(HAAS) 포뮬러 원 팀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인 니키타 마제핀은 2022 시즌 출전이 불투명합니다부친인 드미트리 마제핀이 러시아의 거대 석유화학 회사 우랄켐(Uralchem)의 핵심 대주주인데이 기업 역시 침공의 책임을 묻는 대 러시아 경제 제재의 영향을 받습니다그리고 포뮬러 원도 캘린더에서 러시아 GP를 빼버렸습니다. 하스 팀 역시 바르셀로나에서 진행 중인 공식 테스트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하스에서 우랄켐의 지분이 빠진다면 팀의 존립이 불가할 수도 있습니다. 


'NO WAR,PLEASE' 외침 F1도 외면할 수 없었다
니키타 마제핀. 부친이 하스 팀의 자금줄이자 러시아 거대 석유화학기업 우랄켐의 대주주입니다

또 다른 러시아인 드라이버 다닐 크비얏(전 알파타우리, 르노 알핀)의 경우는 별 메시지를 내진 않았습니다뭔가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국적 정체성을 뭐라 딱 잘라 이야기하기 어려운 팀이기도 하고본인의 입지도 불안하므로 아직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2021년부터 시트를 잃은 게 그나마 다행일까요.외치는 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입장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으니까요.


'NO WAR,PLEASE' 외침 F1도 외면할 수 없었다
알파타우리와 르노 알핀 등에서 활약한 다닐 크비얏. 2021년부터는 시트를 잃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모터스포츠를 넘어 자동차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임이 자명합니다전동화와 관련해 배터리의 원료가 되는 리튬도중국 다음으로 많은 양이 러시아에 매장돼 있습니다여기에 러시아에서 유럽쪽으로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비롯해 다양한 에너지원료 자원들이 존재하죠

스포츠 스타들은 영향력 있는 존재들이고 그래서 발언에 파급력이 있습니다특히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스포츠의 역할은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통로이자 기회였으므로 어쩌면 스포츠 스타들의 발언은, 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의무일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세계를 돌며 경기를 치르고 1위를 꿈꿔왔지만 그것을 이룬 지금, 마냥 즐길 수 없다”고 하는 다닐 메드베데프의 말에는 강한 타격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의 순수성은 과신되어서는 안 되고 평화와 쉽게 연결하는 것도 나이브한 생각입니다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차라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서주나 인터미션 정도였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거슬러 올라가보면 20세기 냉전 시대진영 간 우위를 스포츠로 대리하고자 했던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모자라죠. 우리만 해도 국가대항 스포츠 경기에 ‘전(戰)’이라는 한자를 붙이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순수한 건좌절 속에서 평화를 바라는 가녀린 희망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