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COTY의 문, 안 열리면 뚫지! 한국 최초 선정, 기아 EV6

유럽 시장에서 한국브랜드, 특히 기아의 위상은 많이 올라갔습니다. 왜건인 씨드 시리즈 등 핵심 전략 차종을 비롯해 1세대 니로 EV 등이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죠. 그런데 매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하던 ‘유럽 올해의 차(EUCOTY, European Car of the Year)’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기아뿐만 아니라 한국 브랜드들이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 동네죠.  그러나 열리지 않던 그 문을 기아가 시원하게 뚫었습니다. 바로 전동화 전용 차종 EV6입니다.

총점 279포인트,
르노 메간 E-테크와 현대 아이오닉 5 각각 2, 3위에

EV6가 심사단으로부터 얻은 총점은 279포인트입니다. 르노 메간 4세대 메간 기반 전기차인 메간 E-테크가 265점으로 2위, 현대차의 아이오닉 5가 261점으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7대의 최종 후보 차종 중 전동화 차종이 6종입니다. PHEV인 푸조 308을 비롯해 스코다 엔야크 iV, 포드 머스탱 마하-E 등이 최종 후보에 포진했습니다. 

EUCOTY는 22개국 59명의 심사위원들이 자동차를 까다롭게 테스트하고 면밀하게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 선정되므로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공신력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브랜드나 단체로부터도 자유롭게 평가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입니다. 

EV6의 선정 이유에 대해서 아직 공식적인 코멘트가 올라온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유럽 매체들은 1회 완충 시 주행 거리가 동급 배터리를 장착한 어떤 브랜드와 견주어도 우수하며 초급속 충전 시스템의 성능(18분 만에 배터리 용량을 10%에서 80%까지 충전 가능)에 주목해 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대중적 브랜드의 차종임에도 프리미엄 차종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타일과 공간성 면에서의 우수성 등 프리미엄 차량으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갖추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77.4kWh 배터리 장착, 듀얼 모터 4륜 구동 기준으로 239kW(325ps)에 달하고 0→100km/h 가속 시간도 5초대 초반에 불과한 점 등은 전기차의 본질적인 면이자 브랜드의 격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특히 2022년 하반기에는 고성능 기종인 GT도 등장할 것으로 예고돼 있어, 고성능차에 대한 수요가 높은 유럽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V6는 이미 앞선 1월, 영국 <왓카(What Car?)>가 선정한 올해의 차를 비롯해 독일 올해의 차에 ‘프리미엄’ 부문에도 선정되는 등 기세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 올해의 차’ 엠블럼을 사진에 삽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로써 기아 EV6는 같은 해 대륙과 영국의 주요 시상식을 모두 휩쓸며 돌풍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판매량은 2021년 10월 판매 시작 이후 누적 1만 1,302대로 시장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잠깐, 경합했던 차종들을 간략히 살펴볼까요? 르노 메간 e-테크 일렉트릭은 전장 4,200㎜, 휠베이스 2,700㎜의 준중형급 크로스오버 타입 SUV입니다. 배터리 용량은 60kWh이며 WLTP 기준 1회 완충 시 주행거리는 450km 수준입니다. 현대 아이오닉 5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굳이 한 번 더 확인하자면, 72.6kWh 배터리를 장착했으며 1회 완충 시 WLTP 기준 최대 487km(롱레인지 기준)를 주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폭스바겐 그룹 산하 두 브랜드의 차종이 눈에 띕니다. 쿠프라의 전기차 본(Born)과 스코다의 엔야크(Enyaq iV)입니다. 두 차 모두 폭스바겐그룹의 전기차 플랫폼인 MEB 기반으로, 폭스바겐의 I.D4와도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용량 범위는 45kWh부터 82kWh까지로 넓은 편입니다. 말 그대로 대중적인 브랜드다 보니, 아우디와의 경계선을 살짝살짝 터치하는 폭스바겐과 달리 두 브랜드는 저용량 배터리 기반 저가 라인업 범위가 넓습니다. 쿠프라 본 전기차의 경우는 영국 기준으로 3만 2,000파운드(약 5,161만 원), 스코다 엔야크 iV는 3만 4,600파운드(약 5,554만 원)부터 시작입니다. 


EUCOTY의 문, 안 열리면 뚫지!
한국 최초 선정, 기아 EV6
쿠프라 본

EUCOTY의 문, 안 열리면 뚫지!
한국 최초 선정, 기아 EV6
엔야크 iV
K-배터리의 위상 한국 차에 대한 호감, 
중러 자원패권주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관건

기아는 E-GMP 플랫폼에 기반한 휠베이스 2,900㎜의 여유로운 공간, 주행 성능 등을 수상 요인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나, 사실 전기차에서 한국 브랜드의 위상이 높아진 데는 역시 한국 주요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글로벌 신뢰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생산량은 중국 CATL에 밀리지만 기술 완성도, 차량 장착시 안정성, 해당 자동차 브랜드와의 협업에 의한 알고리즘 최적화 등은 한국 브랜드들이 한참 앞서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은 듯합니다. 단 며칠 만에, 세계적으로는 비극적일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우크라이나가 의외의 선전을 이어가며 길어질 모양새입니다. 우크라이나군의 사기가 드높은데다,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러시아 자국 내에서조차 대규모로 이어진 반전 집회가 상황을 묘하게 흘러가게 만들고 있는데요. 이 상황이 그리 핑크빛으로만 보이진 않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상식은 전 인류의 보편적 상식과 약간 다른 선에 있을 거란 점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푸틴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전략적 동반자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나라는 현재 세계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결심을 한 모양새입니다. 여기서 기존 인류가 상식을 가치로 받아들였던 것들을 ‘서방 혹은 미국 기준의 정의’로 규정하고 그에 맞춰 자신들의 정당한 행위에 제약을 가하려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러프하면서도 거칠 것 없는 프레임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동시에 두 나라는 에너지 및 산업화 자원 매장량 대국입니다. 특히 전기차용 2차 전지에 필수적인 리튬은 물론이고, 언제든지 전략화할 수 있는 광물 자원의 종류가 엄청난 양으로 매장돼 있죠. 물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후반부터 격화된 미중 무역 갈등과 배터리 수요 확대에 대비해 미국 및 서방 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남미 등 리튬 보유 및 생산국들을 통해 대비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생산되는 양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소식인데 ‘초’를 친 것 같아 유쾌하진 않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의 각 산업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장면을 너무 많이 연출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다가 푸틴의 핵 폭주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면 이건 자동차 산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경제, 아니 문명의 존망을 이야기할 시점인 거죠. 

어려운 시기에 좋은 성과를 올린 기아에 축하를 전합니다. 참 평화까진 기대하지 않으니, 좀 격앙된 세계가 핏발을 누그러뜨리고 일상을 찾을 수 있길.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