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들의 ‘큰 차에 대한 로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생활이 개선되면서 신체 조건이 달라지는 건 차치하더라도 사회적 지위의 표상이 된 자동차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크고 널찍해야 했기 때문이죠.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각 개인의 니즈가 좀 더 복잡해지고 유통되는 자동차도 다양해진 만큼 과거보다 여러 유형의 차량들을 만나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차 선호사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차박과 캠핑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들도 생겼기에 큰 차 전성시대는 더욱 가속화 되는 모양새죠.
치열해진 대형 SUV 시장
대형 SUV시장에 팰리세이드라는 걸출한 국산 모델이 등장한 이후 수입차들은 한걸음 더 멀리 나가야했습니다. 익스플로러로 재미를 보던 포드는 익스페디션을 들여왔고요, 트래버스로 대응하던 쉐보레는 오늘의 주인공 타호를 도입합니다. 한국에서 큰 차를 좋아한다고 하니 진짜 제대로 큰 차가 어떤 건지 보여줄 심산으로 말이죠.
그런데, 아무리 국내소비자들이 큰 차를 좋아한다고 해도 미국 시장에 특화된 타호같은 초대형 SUV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가뜩이나 카니발, 팰리세이드, 트래버스 등의 대형차들만 해도 주차라인을 벗어나 앞머리를 내놓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말이죠.
국내 주차단위구획 현황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타호가 공용주택에서 이웃들과 어우러져 적응할 수 있을지를 말이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주차단위구획의 최소 기준을 찾아봐야 했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일반형(소형차) 주차단위구획 최소 기준은 1990년 이후 2.3m×5.0m로 적용돼 왔습니다. 그러다 2012년, 큰 차 선호현상 심화에 따른 차량제원 확대로 ‘확장형 주차단위구획’이 도입됐는데요. 이 경우에는 2.5m×5.1m로 폭과 길이가 소폭 늘어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신축 시설물에서 50대 이상 규모 주차장을 갖출 경우에 30% 이상을 설치해야 하는 것일 뿐 여전히 대부분의 주차구획은 이전의 최소 기준이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시 문제의식을 느꼈는지 2018년도에 개정안이 나왔고요, 드디어 일반형 주차장의 최소 폭이 2.5m가 됐습니다. 다만 길이는 여전히 5.0m로 변함이 없었는데요. 확장형이 돼야 2.6m×5.2m 규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 기준이 모두 충족이 됐을 때 대형차들도 비로소 문콕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주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마저도 개정안 시행이 2019년 3월부터 신축 건물에 한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니 실제 주차장 개선효과를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겠죠.
타호의 압도적 사이즈
그럼 다시 타호로 돌아와서, 타호의 차체 크기는 어떨까요? 미국의 너른 땅을 배경으로 탄생한 타호의 덩치는 말 그대로 규격외 사이즈입니다. 전장 5,352mm, 전폭 2,057mm, 전고 1,925mm, 축간거리 3,071mm로 일반형 주차장(5.0m)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길이부터 35cm는 벗어납니다. 완전히 개정된 확장형 주차장을 기준으로 해도 여전히 15cm는 넘는다는 얘기죠.
차폭은 어떨까요? 국토부에서는 주차구획 기준을 상정할 때 문 열림 폭을 560~600mm로 정했는데요. 타호의 전폭이 2m를 살짝 넘어가니 최신 개정안 속 확장형 주차장(2.6m)이라면 수용 가능한 수치가 되겠지만 기존 일반형 주차장(2.3m)의 경우에는 기본 승하차조차 상당히 어려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 이렇게 우리나라 주차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차량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를 사야할 만한 매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간단히 살펴보면 우선 타호의 플랫폼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공유합니다. SUV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차와 형제관계니 타호의 태생도 부족함이 있을 리 없습니다. 뼈대부터 서스펜션, 엔진까지 제왕의 것들을 활용합니다. 에어 서스펜션과 6.2L V8 가솔린 엔진을 고스란히 차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에스컬레이드 대비 6천만 원 가까이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했죠.
하이 컨트리 트림이 9,253만 원, 다크 나이트 트림이 9,363만 원입니다. 에스컬레이드의 프리미엄 감성을 덜어내면 생기는 결과물 또는 기름기 빠진 에스컬레이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에스컬레이드를 6천만 원 저렴하게 즐기는 합리적 선택일까요? 아니면 국내실정에 맞지 않는 투머치 SUV일까요? 자세한 상품성은 추후 시승을 해본 뒤 다시 전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압도적인 크기만큼이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차, 쉐보레 타호였습니다.
글 신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