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40 리차지, 쿠페 명가 볼보의 헤리티지를 전하다

볼보 하면 어떤 이미지부터 먼저 떠오르시나요최근 5년 사이에 이 브랜드를 알게 됐다면 SUV일 것이고 1980년대 이후부터라면 특유의 각진 디자인와이퍼가 있는 헤드램프 등이 있을 겁니다하지만 의외로 볼보 역사의 중요한 장면을 장식하는 차들은 쿠페 디자인 혹은 쿠페의 가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XC40 리차지가 볼보 최초의 쿠페형 SUV 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쿠페라는 키워드는 볼보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C40 리차지를 보며 그 가치가 다시 떠올라 돌아보았습니다

기록과 열정의 아이콘
쿠페의 정석 P1800(1960’s)

이미지에서 보듯 이 차는 쿠페의 사전적 의미에 정확하게 부합합니다. 2인승을 기반으로 하는 탑승 공간과 그 후미를 향해 부드럽게 흐르는 루프의 선세로배치 엔진의 구조적 특성이 반영된 롱 노즈 숏 데크 타입 차체 디자인만 봐도 그렇습니다전장은 모델에 따라 4,350~4,400㎜, 휠베이스는 2,450㎜로 컴팩트한 타입이었지만 실제 제원보다 웅장해 보이는 멋을 갖고 있었습니다지금도 그러하지만 자동차에 고급스러움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요트의 유려한 느낌을 차용합니다미국이나 유럽 부호들의 취향에서 유래한 요소죠. P1800을 디자인한 펠 H. 페터슨(1932~)의 주된 영역도 요트 디자인이었습니다

1966년 토슬란다 공장에서 처음 태어난 P1800은 등장하자마자 아름다운 자태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007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로저 무어 경의 TV 출연작 <더 세인트(The Saint, 1962~1969)>를 비롯해 1990년대 북미 지역 인기 드라마 <스타게이트 SG1(Stargate SG1)> 등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차의 명성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은 어브 고든(Irv Gordon, 1940~2018)이라는 인물 덕분입니다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너무 정정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하셔서 백세 찬가를 부르실 줄 알았더니 78세를 일기로 떠난 이 영국인은, P1800으로 무려 300만 마일 이상을 주행해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지구를 120바퀴 돈 기록에 달하죠영국인인 그는 이 차를 타고 주로 캐나다 등 광활한 북미 지역을 여행했다고 합니다볼보 측에서 차를 팔라고 했는데마일당 1달러로 환산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죠아름다운 디자인만큼이나 내구성이 좋았던 차라는 평판이 있습니다


C40 리차지, 쿠페 명가 볼보의 헤리티지를 전하다
누적 주행거리 300만 마일을 돌파했던 2013년의 어브 고든

엔진은 최고 출력 100ps의 1,778cc, 최고 출력 119p 1,986cc가 적용됐습니다변속기는 4단 수동 그리고 보르그워너제의 3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됐죠.

직선 시대의 쿠페
262C, 780(1970~1980’s)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전체적으로 자동차들이 각과 직선을 살린 디자인을 선보이게 됩니다포드와 협업을 통해 개발된 볼보의 200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였죠당시엔 이런 디자인이 금형 기술의 첨단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특히 측면을 가로지르는 절곡형의 캐릭터라인은 철강 기술과 성형 기술을 극단적으로 제시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262C 쿠페는 이 200 시리즈를 기반으로 카로체리아인 베르토네가 디자인한 쿠페입니다휠베이스는2,640㎜ 정도였지만 전장은 4,890㎜에 달해 오버행이 길고 유려한 타입이었는데요세로 배치 후륜 구동 라인업을 택한 만큼 롱 노즈 숏 데크의 구조적인 비율도 드라마틱했습니다지금 볼보의 프리미엄 지향이 난데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이 당시부터 볼보는 시장에서 럭셔리카를 만들 수 있는 브랜드로 통했습니다그 대표적인 차가 262C였죠 

엔진으로는 최고 출력 약 125ps를 발휘한 2,664cc의 V6 엔진 그리고 1980년대 초반 북미용 차종에 적용됐던 130ps의 2,849cc V6 엔진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이 차는 에너지 파동 이후 상황에 부응하는 적은 배기량과 GT의 감각을 동시에 갖춘 차로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후계라곤 할 수 없지만 1980년대의 700시리즈 등장은 200 시리즈와 시간이 겹칩니다그래서 쿠페인 780 262C의 후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여기에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맡았다는 점도 상징적으로 작용하죠. 1985년 제네바 모터쇼에 등장했고 이듬해 세계 시장에 인도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40~50대들은 아마 이 시기부터의 볼보가 눈에 익숙할 겁니다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지만상당히 오래 고수되면서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게 되는데그건 나중 일입니다어쨌든 이 차는 262C 대비 전장은 약 90~100㎜ 가까이 줄이면서도 휠베이스는 130㎜ 이상 연장한 2,770㎜로 만들어 전후 오버행을 줄인 모던하고 스포티한 비례감을 갖게 됐습니다. 262C까지가 여유로운 GT를 지향했다면 이 차부터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의 차량 성능 상향 평준화에 부웅하는 스포티 쿠페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엔진 선택지도 다양했습니다. 특히 터보차저 엔진이 적극 채용됐는데 2.0리터 직렬 4기통 터보 DOHC, 2.4리터 직렬 6기통 터보 디젤이 적용됐습니다. 가장 기함으로는 최고 출력 150ps를 발휘하는 2.8리터 V6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이 있었죠. 780의 엔진들도 1990년대로 가면서 출력 상승 경쟁에 동참했는데 2.0리터 터보 DOHC 가솔린 엔진은 유럽 시장용으로 최대 200ps를 발휘하도록 개선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배기량 당 출력과 퍼포먼스를 바라는 유럽의 모터스포츠 지향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780은 많이 생산되거나 팔린 차는 아닙니다. 약 5년 동안 9,000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포드 머스탱 등이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미드사이즈 쿠페 시장에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던 차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후륜에 적용했던 독립식 서스펜션과 주행 상황에 따라 차고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댐퍼 및 첨단 공조장치의 적용 등이 빛을 발했습니다.

새 시대 볼보의 전주곡
C70, C30(1990~2000’s)

2000년대 중후반한국에도 수입차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소비층이 30대까지도 내려왔습니다지금이야 보편을 넘어 천편일률적인 차량 선택이 이뤄지고 있지만당시만 해도 수입차 시장은 개성을 중시했습니다그런 상황에 나름의 존재감을 발휘했던 차 중 하나가 바로 C70 컨버터블이었습니다약 7,000만 원대 중반으로 당시로선 상당히 고가인 편이었죠.

한국에서는 컨버터블로 기억되는 C70이지만 유럽에서는 쿠페가 먼저였습니다바로 이 C70 쿠페가 780의 후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물론 구동계의 레이아웃은 가로배치 전륜구동으로 바뀌었습니다만 후륜 구동 쿠페와 같은 극적인 롱 노즈 숏 데크를 디자인을 최대한 살렸습니다전륜구동이면서도 후륜 구동의 비율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S60 세단의 모습에는 사실 이 시기에 축적된 역량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C70 라인업은 1996년 파리모터쇼에 데뷔했습니다플랫폼은 1990년대 세단과 왜건으로 인기를 누린 850의 것이었고 사이즈는 오히려 262C 때로 돌아갔는데 전장은 4,720㎜, 휠베이스는 2,660㎜였습니다하지만 이 때는 소재의 강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해동일한 제원의 크기를 만드는 데 드는 강재의 부피나 양을 줄일 수 있어 공간은 넓어졌습니다게다가 이미 유럽에서는 환경 규제도 시작된 상태여서 연비에 영향을 미치는 공차중량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볼보의 ‘각’과 비례감을 유지하되 모서리 부분을 둥글둥글하게 표현했습니다. 한국에 잘 알려진 2세대부터는 더욱 눈에 익을 겁니다. 거의 현재 볼보의 직전 세대 디자인이죠. 헤드램프와 범퍼가 동일한 면에 평면 배치되던 디자인을 버리고 전면부에 볼륨감을 넣는 방식, 후미 트렁크 리드를 예리하게 만든 점 등은 혁신적이었습니다. 특히 이 차의 외관 디자인은 여러 디자이너들이 협업을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C70은 북미 한정으로 하드 탑 컨버터블도 적용됐는데, 당시 컨버터블로서는 드물게 미국 고속도로손해보험협회(IIHS)의 탑 세이프티 픽 평가를 얻어내기도 했죠. 특히 윈도우 커튼 타입의 에어백은 자동차 업계에서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파워트레인도 유니크했습니다. 한 때 ‘크레용팝’이라는 걸그룹의 댄스 테마가 되기도 했던 직렬 5기통 가솔린 터보 및 디젤 터보 엔진이 적용됐죠.

이 시기에는 쿠페의 가치를 다른 장르에 적용한 차들이 등장합니다메르세데스 벤츠의 CLS가 쿠페를 4도어 세단과 결합했다면 볼보는 해치백과 결합하며 독특한 스타일링을 선보였습니다그 결과가 C70과 플랫폼을 공유한 C30입니다이 차 역시 2000년대 중반 국내에도 출시돼 잘 알려져 있죠당시엔 대중 매체를 통해서도 얼굴을 종종 내비쳤던 차로어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