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브랜드는 최근 G70 슈팅브레이크(SHOOTING BRAKE)를 출시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을 조금 더한다면 ‘슈팅브레이크‘라는 명칭이 싫습니다.
슈팅브레이크는 외관 상 왜건(wagon)과 비슷한 스타일이지만 쿠페 타입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의미적인 기원도 다릅니다. 왜건은 20세기 초중반, 역에서 사용하기 위해 세단을 개조한 것이었던 반면, 슈팅브레이크의 기원은 말로 끄는 수레였습니다. 이 수레는 길어서 좌우로 승객들이 늘어 앉을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냥감이 보이면 발포했고, 사냥하지 않을 때 총을 세워둘 수 있는 거치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력원이 말이 아닌 엔진으로 바뀌면서 슈팅브레이크 자동차가 등장하게 된 겁니다.
자동차 시대에 슈팅브레이크를 내놓은 것은 주로 고급차 브랜드들이었습니다. 1910년대 초, 스코틀랜드의 알비온(Albion) 모터스가 최초로 슈팅브레이크를 상품화했고, 비슷한 시기에 롤스로이스가 실버고스트를 기반으로 한 슈팅브레이크를 내놨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 귀족문화의 마지막 상징과도 같은 등장이었습니다.
1920~30년대에는 제조사들보타 영국 코치빌더들이 여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수요 자체가 많지 않아 제조사가 직접 만들기엔 타산이 맞지 않았는데, 소수의 부자들을 상대하기엔 코치빌더가 나은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지금도 자가토(Zagato)는 애스턴 마틴 기반의 슈팅 브레이크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1920년대 코치빌더들의 주된 고객들은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스콧 F.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미국의 신흥 부자들은 유럽 귀족들의 생활 습관과 문물을 돈으로 사며, 일천한 역사에 대한 열등감을 지우려 했죠.
제조사 기반 슈팅브레이크는 1960~70년대에 잠시 다시 등장합니다. 애스턴마틴 DB5 슈팅브레이크, 볼보 P1800 기반의 ES 정도가 이 시기의 대표적 슈팅브레이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수요 자체가 줄면서 슈팅브레이크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습니다.
참고로 국내에 ‘슈팅브레이크‘라는 개념이 소개된 것은 2012년 이후였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CLS 2세대 기반의 250 CDI 슈팅브레이크가 국내 시판 차종 기준 최초 슈팅브레이크라 할 수 있었죠. 국내에서는 슈팅브레이크라는 스타일보다, 2.2리터(2,143cc) 디젤 엔진을 장착한 실용적인 차, 2좌석밖에 없는 CLS 의 공간적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차로 설정됐습니다. 원래 이 차의 성격에 부합하는 파워트레인은 63 AMG S(당시 네이밍 배열 기준)였지만 국내에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이 차는 최고 출력 580ps 이상, 최대 토크는 81.5kg*m에 달하는 괴물 슈팅브레이크였죠. 사슴이나 새 따위가 아니라 용 사냥을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차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팅브레이크 혹은 슈팅브레이크 스타일의 차가 등장한 시기를 보면 급격한 경제위기가 찾아온 직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1910년대 대영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1960~70년대에는 오일 쇼크가 찾아왔습니다. 2010년대에는 월가 금융위기의 충격으로부터 세계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어가던 시점이었으며, 어느 새 지금은 추억이 된 제로금리 시대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이런 시기의 특징이 부익부 빈익빈인데, 이 때의 부자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 대운을 만난 신흥 부자라는 점입니다. 벼락부자는 위기의 타이밍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의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들이 2018년을 기준으로 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쥔 것도 이 저금리 시대의 영향이었습니다. 갈곳 잃은 돈이 공격적 인수합병 시장으로 흘러들면서 단기간에 부자가 되는 사람이 많아졌죠.
사람이 단기간에 부자가 되면 가장 먼저 차를 바꾸려 합니다. 진짜 부자가 되면 건물이나 땅을 건물, 요트를 사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건물을 갖고 다니면서 자랑할 수 있나요? 강릉에서 만난 사람에게 강남의 건물을 가져와서 보여줄 순 없지요. 강남에서 만난 지인에게 남해안에 정박시켜 놓은 요트를 가져와서 보여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차는 언제든지 갖고 다니며 자랑할 수 있습니다. 시계와 마찬가지로요. 럭셔리 브랜드의 성장을 베블런재의 특성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 베블런재(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리는 상품,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주창한 개념)들이 잘 팔리는 상황을 만든 게, 위기라면 위기일 수도 있었던 저금리였습니다. 이 고금리 시대는 또 지금의 논리대로 부자가 생기겠죠.
그렇기에, 저는 제네시스가 ‘슈팅브레이크‘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유목민들의 후예인 유럽인들에게 사냥은 전통이었을지 모르지만, 동물일지언정 목숨을 취미로 앗는 행동이 이렇게 고급 문화의 아이콘으로 지금까지 내려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과연 사냥이 고급 레저문화를 대표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누군가의 생사를 뺏는 우월감을, 사람에게서 느끼기 어려워서 ‘슈팅’이 그리운 걸까요?
이런 의문은 사실 유럽에서 먼저 제기했어야 할 사안입니다. 걸핏하면 아시아권, 특히 한국에서 이미 소수가 된 개 식용 문화를 한국 식생활의 대부분인 것처럼 인식하고 떠벌리는 유럽 기반 동물보호단체들은, 누군가의 목숨을 앗는 일을 평화로운 휴식으로 포장하는 이유에 대해 왜 따져묻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네시스가 야심차게, ‘아웃팅브레이크(OUTING BRAKE)’라는 장르명으로 이런 아젠다까지를 던졌다면 어땠을까요? 독일차 워너비라는 이미지도 조금 덜어내고 환경, 동물보호라면 불에 덴 듯 반응하는 유럽인들의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후려갈겼을 수도 있는데, 아쉽습니다.
지인 중 사냥을 취미로 삼았다가 끊은 분이 있습니다. 노을이 흐르는 저녁, 여느 때처럼 새를 한 마리 쏘았더랍니다. 새가 떨어진 자리에 갔는데, 감지 못한 눈에 피 같은 노을이 번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단지 그 모습이 가엾어서가 아니라, 하늘을 날던 목숨을 앗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땅에 떨어진 그 목숨을 하늘로 되돌려놓는 것은 자기가 신이 되더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떤가요? 슈팅브레이크라는 이름을 버리는 것이 죽은 새를 살리는 것보다는 쉬운 일일 것 같은데요.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