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Jeep)라는 브랜드는, 브랜드명을 넘어 거의 보통명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60대 이후 고령층은 SUV라는 말을 알기 전에 ‘찝차’라는 한국식 용어로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다목적 차량을 접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프는 전 세계인에게 알려진 영광스러운 브랜드지만 그만큼 파란도 많이 겪었다. 2차 대전에서는 군용차로 연합군에 봉사했으나 적국의 차량이던 피아트와 형제가 되어 FCA그룹의 한 가족으로 살고 있기도 하다. 지프의 75년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본다.
전쟁이 잉태한 명차
1939년 발발한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은 상당 기간 동안 나치 독일에 비해 열세였다. 특히 육군은 전력과 전술 모든 면에서 그랬다. 포격과 비, 주검으로 얼룩진 도로는 또 다른 위협이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속한 기동성을 발휘했다. 그 비결은 군용차였다.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가 버티고 있던 독일군의 기술진은 장거리를 주행할 수 있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일반 군용 차량은 물론 수륙양용차인 쉬빔바겐까지 갖고 있었다.
그에 비해 연합군의 차량은 보잘것없었다. 독일군에게 선제공격을 당해 많은 군수시설이 파괴됐고, 그나마 남아 있던 연합군의 트럭은 전장의 혹독한 사정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연합군 군수지원의 핵심이던 미군은 자국 내 자동차 기업과 제조사들에게 ‘경량 정찰 차량’ 입찰 공고를 냈다. 기존의 포드 T-150 트럭을 대체하는 것이었지만 요구 사항은 단순하지 않았다. 최소 600파운드(약 272kg)를 적재 공간, 75인치(1,905mm) 이내의 휠베이스, 1,300파운드(약590kg) 미만의 중량 그리고 무엇보다 4륜과 2륜을 교환할 수 있는 디퍼런셜 기어의 장착 등이 발주 조건이었다.
윌리스 MA, ‘지프’로 다시 태어나다
130여 군데 제조사를 대상으로 한 이 까다로운 입찰에 윌리스–오버랜드와 아메리칸 밴텀 자동차 두 군데가 응찰했다. 그러나 포드도 여기에 뛰어드는 바람에 결국 미군의 차세대 전투 차량 사업에는 세 회사가 각축전을 벌이게 됐다. 세 회사는 각각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안을 내놓았다. 윌리스가 선보인 쿼드(Quad)는 4륜과 2륜 변환이 가능한 기어박스를 탑재하고 있었다. 밴텀은 블리츠 버기(Blitz Buggy)라는 기종을 내놓았는데 250마일(약 402km)의 비포장 도로 포함 3,400마일(약 5,471km)의 내구성 테스트를 거친 기종이었다. 블리츠 버기는 이 내구성을 인정받아 후에 러시아 전선에 투입됐다. 한편 포드는 퍼거슨 트랙터를 개조한 GP(General Purpose)를 선보였다.
세 회사는 각각 다른 포인트에서 미군을 만족시켰다. 기술적으로는 윌리스의 쿼드였고, 무게로는 밴텀이었다. 그리고 포드는 양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어느 한 회사의 장점도 버리기 아까웠던 미군은 결국 윌리스가 주도하고 두 회사가 협력하도록 제안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미군의 군용차가 탄생했다. 이것이 바로 MA이며 지프의 전신이다.
지프의 이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매우 미국적인 전설로, <뽀빠이>에 나오는 가상의 동물 지프에서 착안해 기자회견 때 말했다는 이야기다. 또 한 가지 설은 포드에서 나왔을 법한 이야기로, 포드의 GP 발음이 늘어져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됐든 나름의 설득력과 흥미가 있는 셈이다.
민간 차량 시대의 첫 지프, CJ-2A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자, CJ-2A가 지프의 민간차량 시대를 열었다. 2차 대전의 전장에서 독일군의 G-5에 전혀 뒤지지 않았던 지프의 활약 덕분에 미국인들의 지프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그런데 왜 최초의 민간 기종이면서도 기종명에 숫자 ‘1’이 아닌 ‘2’가 들어갔을까? 원래 CJ-2A이전 ‘Civilian Jeep the First Model of Army’라는 긴 영문명을 축약한 CJ-1A가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이 차량은 군용이었다. 따라서 최초의 민간 지프는 그 뒤를 이은 기종이기 때문에 숫자 2가 붙은 것이다.
CJ-2A의 파워트레인은 134입방인치(약 2.2리터, 2,199cc) 직렬 4기통 엔진과 T90A 수동변속기의 조합이었다. 특히 차축이 자동차의 중량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풀 플로팅 액슬을 적용했다. 이 방식은 타이어를 분리하지 않고도 축을 분해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차축의 설계는 후대로 이어지는 지프의 표준이 됐다.
한국전쟁과 지프, Jeep CJ-5
지프와 한국의 인연, 그 시작은 아팠다. 첫 선을 보인 기회가 한국전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은 미국 자동차 제조사에 최대의 호기였다. 윌리스 MB를 개조한 M38A1은 험로가 많은 한국 지형에서 주요 화기를 얹고 한반도 주요 전장을 누볐다. 예비역 중에서도 K-111 차량과 90mm 무반동총 임무를 수행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자동차가 조금 더 특별할 텐데, 바로 이 화기를 장착한 자동차의 원형이 M38A1인 까닭이다.
M38A1은 전장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앞쪽 펜더의 곡선이 유려했다. 이를 채용한 차량이 CJ-5다. Jeep CJ-3B(1953-1968)보다는 전장과 전폭이 조금씩 더 크고 넓었다. 특히 이 차량은 취미로서의 오프로드 드라이빙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누렸다. 지프는 이 차를 무려 15년 동안 무려 30만 대 이상을 생산,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성과는 또한 미국 자동차 발전사의 성과이기도 했다.
다양한 기종 거느린 브랜드, 지프
이 시기는 세계 경제의 고도 성장을 주도한 미국의 자신감이 각계에 반영된 때다. 사람들의 경제력 상승은 소비재의 다양화를 불러왔다. 지프가 차의 이름에서 다양한 하위 기종들을 거느린 브랜드 명으로 자리잡은 것은 필연적이었다. 최초의 풀타임 4륜 구동이자 자동변속기가 결합된 지프 웨거니어(Wagoneer, 1963~1983)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기종으로 도심형 SUV의 시대를 열어젖힌 차로 평가받고 있다. 이 차는 후에 그랜드 웨거니어(1984~1991)라는 럭셔리 SUV로 연결되었다. 그랜드 웨거니어의 V8엔진은 해당 세그먼트 최고 사양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외관의 우드 트림 장식, 당시로서는 최신형 음향시스템을 장착한 것이 화제가 됐다. 특히 이 우드 트림 장식은 과거 왜건이 처음 등장했던 시대, 승차 칸을 고급 목재로 만들었던데 대한 향수를 구현한 것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차가 바로 2도어의 체로키(SJ, 1974~1983)다. 1970년대 중반으로 들어오면서 여가 목적의 SUV 차량 구매층이 젊은이들까지 넓어졌다. 이들의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체로키는 오프로드용이나 레저용 차량으로서 오히려 웨거니어보다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뒤를 이은 체로키(XJ, 1984~2001)은 최초로 로봇 공정을 통해 조립한 기종이자 전륜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한 차였다. 여기에 2륜과 4륜을 전환할 수 있는 디퍼런셜 기어는 기본이었다. 차체는 500kg이나 가벼워졌으면서도 적재공간은 이전 체로키의 90%에 달했다. 새로운 체로키는 큰 인기를 누렸으며, 1988년에는 4.0리터 V6 엔진을 탑재한 리미티드 에디션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후 출시된 그랜드 체로키(ZJ/WJ, 1993~2004)는 SUV 최초로 측면 에어백을 설치한 차량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 후 그랜드 체로키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생산되며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크라이슬러 시대의 총아 랭글러
지프는 1987년 크라이슬러 그룹의 지프/이글 부문으로 편입됐다. 이 시기에 탄생한 차가 바로 랭글러(YJ, 1987~1996)다. 한국에서도 고유의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랭글러는 최초의 지프인 CJ 시리즈처럼 오픈 바디를 기본으로 했다. 하지만 설계 면에서는 체로키와 공유한 부분이 더 많았다. 되돌아보면 이 시기는 미국 경제의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당시 소비자들은 도시와 아웃도어를 함께 누빌 수 있는 유틸리티 능력, 디자인 측면 그리고 좀 더 많은 동승자를 편안하게 태울 수 있는 기능까지도 원했다. 랭글러는 그런 요구를 만족시켰다. 참고로 이 랭글러는 지프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형이 아닌 사각 헤드램프를 채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뒤이은 랭글러 TJ(1997~2006)은 CJ7을 기본으로 하긴 했지만 80퍼센트 이상이 새롭게 디자인된
차였다. 이 차량은 국내 오프로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고 현재도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의 랭글러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루비콘이다. 참고로 이 루비콘은 시저가 건넌 루비콘 강이 아니고, 네바다 주에 있는 악명 높은 산악도로에서 따온 것이다. 4:1 비율의 부변속기와 32인치 타이어를 장착한, 그야말로 오프로드 차량의 원형이기도 하다. 보닛의 곡면을 따라 씌어진 ‘RUBICON’이라는 대문자도 이 차의 특징이다.
75년 전의 적이 한 식구로, FCA 시대의 지프
2014년 피아트와 크라이슬러는 완전히 하나가 되면서 지프는 지난 세기 전쟁에서 만났던 숙적, 피아트와 한 이불을 덮게 되었다. 피아트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것이기에 지프는 피아트와 플랫폼을 기반으로 생산되는 운명을 맞았다. 당장 지프 레니게이드는 피아트 500X와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하게 됐다. 현재의 플랫폼도 기원은 피아트 쪽에 있다. 물론 지프의 정체성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유럽적 감각을 입은 지프의 앞날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도 기대를 모은다. 이렇듯 자동차 브랜드의 역사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는 세계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