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을 갓 면하니 눈에 들어오는 차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 자동차 정보와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디자인도 좋고 가격까지 착하다. 이미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에도 호평이 많다. 이런 자동차를 알아본 자신의 안목을 또 한 번 칭찬하며, 볼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 자동차를 잘 안다는 ‘남자사람 친구’에게 물어보니 ‘제원’을 클릭해보란다. 아뿔싸, 뭔가 열어선 안 될 것을 연 기분이다. 최고출력? 최대토크? 과급 방식? 모르는 단어들의 역습에 머릿속이 까마득해진다. “예쁘다고 다 좋은 게 아니야.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알고 사야지.” 제원을 클릭해보라던 남자사람 친구의 얄미운 모습이 떠오르지만 이제 와서 창피하게 물어볼 수는 없다면? 속앓이 하지 말고 다음과 같이 제원표의 ‘해독법’을 익혀 보자.
트림을 알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같은 차종인 줄 알았는데, 세부 분류를 보니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문과 숫자가 조합된 이름은 때로 암호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같은 모양의 차가 조금씩 다른 이유를 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트림의 구분법은 자동차에 적용된 다양한 옵션들이다. 트림은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는 기능들에 자신이 원하는 옵션을 추가하거나 필요 없는 옵션은 뺄 수 있도록 한 것이지만,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처럼 최고급 자동차가 아니라면 그들이 선호할 만한 옵션들을 묶어 적용한다. 이때 옵션의 분류기준은 몇 갈래로 분류한 고객군을 분석하고 그들이 선호할만한 기능을 묶어놓는 방식이다. 이 때 기본적으로 주행 및 안전과 관련되는 기능들은 기본 옵션으로 두고, 편의 장비나 부가적인 엔터테인먼트 및 외관 장식 장비를 별도 선택사양으로 하여 트림 별 가격을 차별화한다. 때에 따라서는 특정 옵션들을 묶은 트림을 ‘취향 저격용’ 에디션을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제조사마다 트림 전략은 상이하다. 그러나 통상 주차보조 시스템이나 무선충전기능 등 운전자와 동승자의 편의를 돕는 기능들은 기본적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조건에 맞게 트림을 선택하려면 우선 운전자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운전 습관이 중요하다. 옵션이 많이 붙을수록 편의성이 좋아지지만, 가격도 높아지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들을 챙겨 자신에게 맞는 트림을 골라야 한다.
자동차의 심장, 엔진을 알자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동차의 에너지는 엔진에서 나온다. 연료에 따라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으로 나뉜다. 두 연료 모두 흡입–압축–폭발–배기 4단계를 거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연소실에 공기를 흡입해 압축한 후 폭발시킨 에너지를 내보내는 것이다. 단, 가솔린과 디젤은 폭발을 유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가솔린 엔진은 공기와 연료를 섞은 혼합기를 압축 한 후 ‘점화’ 플러그를 이용해 폭발을 유도한다. 디젤 엔진은 고압, 고온의 공기 속에 연료인 경유를 분사해 자체폭발을 유도하는 ‘착화’ 방식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두 유종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휘발유는 불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신 열에 대한 반응성은 낮다. 반대로 경유는 불꽃에 대한 반응성은 낮지만 휘발유보다 주위 열에 반응하는 성향이 강하다.
엔진과 관련된 제원 중 배기량은 자동차의 엔진의 실린더 내부 부피다. 배기량이 클수록 자동차가 낼 수 엔진의 크기와 힘은 커진다. 배기량은 최고 출력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인이다. 출력을 표기하는 방법은 마력이라고도 하는 ‘hp’ 단위와, 75kg의 물체를 1초 동안 1m 들어올리는 데 필요한 힘을 나타내는 ‘ps’ 단위로 구분된다. 제조사마다 표기가 다르지만 이 출력 단위는 1ps=0.986hp로 대략 환산할 수 있다. 가끔 포털 사이트의 자동차 출력 정보가 제조사와 약 2 정도의 수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오류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선택한 출력 표시 단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대 토크는 연소실 내 연료의 폭발로 실린더를 한 번에 밀어낼 때의 힘이다. 엔진의 토크가 크면 그만큼 회전 운동으로 바뀌는 힘도 크다. 따라서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 가속이 좋아 연료 소비 효율이 높다. 단위는 kg·m, Nm(뉴턴미터) 등을 사용한다.
엔진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면 자동차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특히 동일 기종 중에서도 ‘등급’의 개념을 알고 선택할 수 있다. 자동차의 등급과 트림은 제조사 홈페이지나 기사에서 다소 혼용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배기량이나 퍼포먼스, 사용 연료에 차이가 있는 엔진으로 ‘등급’을 분류하고 그 하위에 ‘트림’을 두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자동차 생활 있어 연비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연비는 일정 연료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 혹은 일정 거리를 주행하는 데 필요한 연료의 양을 측정한 값이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연비의 공인 단위는 ‘km/l’다. 하지만 유럽 제조사들의 경우 제원표에 ‘l/100km’ 즉 100km를 운행하는 데 필요한 연료의 양을 표기하기도 한다. 물론 해외 제조사라 하더라도 한국 법인이나 딜러로 개설한 홈페이지에는 한국식의 연비 표기가 나오지만, 자동차 계기반이나 카탈로그에 l/100km로 표기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는 자동차 자체의 세팅 기능을 통해 전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미국 자동차의 경우는 ‘mpg(마일 퍼 갤런)’ 즉 1갤런의 연료로 갈 수 있는 거리를 마일로 표시한다.
최고속도는 말 그대로 얼마나 높은 속도까지 올릴 수 있는가를 뜻한다. 가속성능은 자동차가 속도를 높일 때 지정된 거리를 달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가속성능(0-100km/h) 라고 되어 있다면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속도를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편안한 운전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 제조사의 세단 차량들이나 실용적인 목적의 자동차들은 대부분 9초에서 10초 내외의 가속성능을 보인다. 하지만 조금 실용성을 지키는 선에서 더 파워풀한 주행 성능을 원한다면 7초대의 가속성능을 보이는 자동차도 있다. 만약 운전 스킬이 늘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스피드를 즐기게 된다면, 4, 5초대의 가속성능을 보이는 자동차도 있다. 다만 이 가속성능에 쓰인 숫자에 눈떠 갈수록, 그 숫자와 가격은 반비례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자동차의 신체사이즈, 섀시 수치
섀시는 자동차를 이루는 뼈대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의 외적인 크기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실내의 공간 크기 및 적재공간을 만든다. 여기에 동력과 구동 계통 장비와, 전륜과 후륜의 서스펜션, 제동장치 및 조향 장치, 그리고 각종 전자제어 장비를 탑재할 수 있는 틀이 되기도 한다.
섀시는 여러 가지 수치로 표현된다. 자신의 목적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자동차를 고르기위해서는 이 수치를 통해 차체의 크기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나 제조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만으로는 실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해당 자동차에서 특징적인 면이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크게 보여주는 까닭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크기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제원표 중 치수 부분을 유의해 읽을 필요가 있다. 해외 제조사들의 경우에는 ‘디멘젼(Dimension)’으로 표기하기도 하므로, 해외 제조사의 자동차 구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섀시의 치수에는 전장, 전폭, 전고, 축거, 공차중량, 승차인원, 타이어 치수 등이 있다. 전장은 자동차의 전체 길이를 나타내주는 단위로 자동차 앞의 가장 튀어나온 부분부터 뒤의 가장 튀어나온 부분까지의 총 길이를 말한다. 전폭은 자동차의 너비로 자동차의 문을 닫고 중심에서 직각으로 쟀을 때 가장 큰 폭을 말한다. 이때 양쪽의 사이드미러는 포함시키지 않는데, 제조사에 따라 이 사이드미러 포함 전폭을 별도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전고는 접지면에서 가장 높은 부분까지의 높이, 즉 자동차의 키라고 할 수 있다. 축거는 앞 뒤 차축의 중심에서 중심까지의 수평거리로, 휠베이스라고도 한다. 이 휠 베이스의 길이는 자동차 실내 공간의 넓이를 결정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공차중량은 사람이 승차하지 않고 물품(예비부분품 및 공구 기타 휴대물품을 포함)을 장착하거나싣지 않은 상태의 중량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가 완전히 ‘빈 속’일 때의 중량인 것은 아니다. 연료, 냉각수 및 윤활유는 가득 차 있는 상태이며, 또한 예비타이어(예비타이어를 장착한 자동차만 해당)를 설치하여 측정한 차의 무게다. 이 중량이 무거울수록 안정감은 있지만 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처음 화장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나의 피부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피부를 알고 개별 제품의 특성을 알면서 각자에게 맞는 화장품으로,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는 단계라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자동차의 특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된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차를알아야, 추천해주는 사람도 올바른 가이드를 제시할 수 있다. 자동차의 제원을 알면 나의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글 김은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