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생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닐 만큼 기대수명은 길어졌다. 이에 따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스트롱 시니어(strong senior), 뉴 시니어(new senior) 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고령층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은 피해갈 수 없는 법. 이와 같은 고령 운전자의 경우 둔해진 반응속도는 자칫 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아직 운전대를 놓을 수 없거나 놓기 싫은 고령운전자는 물론 현재 운전대를 잡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지켜야 할 사항들을 정리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고령운전자의 비율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의 운전면허소지자 현황 통계를 보면 60~65세 인구의 비율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건수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도로교통공단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11년(221,711건), 2012년(223,656건), 2013년(215,354건) 2014년(223,552건), 2015년(232,035건)으로 큰 변화가 없지만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11년(13,596건) 2012년(15,190건) 2013년(17,590건) 2014년(20,275건) 2015년(23,063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65세 이상 운전자들의 법규 위반 별 교통사고의 비율은 안전의무불이행(12,200건), 신호위반(2,879건), 안전거리 미확보(2,075건),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1,597건)으로 안전의무불이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신체 노화가 진행되면 유효시야(안구운동만으로 정보를 주시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다.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사물이나 사람도 조금 옆으로 벗어나 있으면 보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여러 대상을 한꺼번에 보면서 판단해야 할 때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교차로에서는 더욱 위험하다. 감각 기관이 받아들인 정보들을 뇌의 중추신경이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작스런 상황에서 어찔할 줄 몰라 허둥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도 위험에 빠트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고령운전의 증가추세가 우려되는 이유는 지금 당장의 문제 보다는 다가 올 미래에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 조사에 따른 중위연령(전체 인구연령을 반으로 나누었을 때 가장 중간에 위치한 연령) 변화를 보면 2010년 38.1세에서 2015년에는 41.2세로 연령대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청년층의 인구는 거의 변화가 없거나 감소하는 추세인데 노령층의 인구만 꾸준히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노령운전자의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고령운전자들의 사고유형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한 안전의무의 불이행이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고령운전자들은 기본적인 안전운전 요령을 초보일 때처럼 재 숙지해야 한다. 우선 안전거리 유지는 필수다. 50km/h 정도의 시내주행에서는 약 40m, 80km/h 정도의 고속 주행 시에는 90m 정도의 안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교차로나 횡단보도 진입 전에는 감속하고,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진통제, 신경안정제, 근육이완제 등)을 복용하고 있다면 운전을 삼가 해야 한다.
하지만 신체기능 저하로 인한 주의력 감퇴는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고령 운전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회사들은 끊임 없이 안전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예컨대 닛산은 골격이 약한 고령운전자들이 에어백의 압력으로 더 큰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듀얼 스테이지 에어백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탑승자의 키와 몸무게를 고려해 사고 발생 시 압력을 조절해주는 기능이다. 정면 충돌 시 운전석과 보조석의 에어백이 안전벨트와 연동되어 있어 에어백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안전벨트가 자동으로 조여진다. 이에 차량에 가해지는 충격은 물론 에어백으로 인한 2차 사고에서 운전자와 탑승객을 보호한다.
포드는 운전자의 급작스런 심정지로 인한 위험 상황에 대비한 심장 박동 모니터링을 위한 카 시트를 개발했다. 심장 박동으로 발생한 전기적 충격을 6개의 내장 센서가 감지하는 방식으로, 응급상황 시 센서를 통해 운전자의 상태를 알 수 있고 의료전문가 호출부터 안전 시스템 가동까지 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고령운전자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서 실시하는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은 만 6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3시간 무료교육이다. 속도 및 거리추정검사, 시공간 기억검사, 주의검사 등으로 고령운전자의 인지기능을 측정하여 운전자의 상태를 파악한 뒤 상황 별 안전운전 기법, 성향 자가진단 및 분석 등의 단계를 거친다. 또한 결과에 따라 개인에게 알맞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경찰에서도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을 받으면 자동차 보험료 5%를 할인하는 제도를 시행하였으나 참여율이 저조했다.
일본은 70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3년 마다 면허갱신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 결과,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2010년 1,560명에서 2014년 1,395명으로 10.6% 감소했다. 또한 각 지자체에서 다양한 혜택을 내세워 운전면허증 반납을 독려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면허를 반납한 고령운전자들에게는 대형 슈퍼마켓, 병원 등과 연계해 필요할 때 차를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지역 내 무료 버스도 늘리고 있다. 이 외에도 택시비 할인, 휠체어 구입 할인 등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
현재 경찰청은 교통안전교육에 인지기능 검사를 포함하여 최고속도 제한, 교차로 통행주의, 야간운전 제한 등의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교육을 받으면 자동차 보험료 할인과 착한 운전 마일리지와 같은 특혜점수를 부여하여 고령운전자의 안전운전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75세 이상의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적성검사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운전면허 갱신심사를 더 엄격히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올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지역 경찰청과 관할 경찰서 등 경찰 조직 비롯, 각 지자체 행정기관마다 고령운전자를 위한 ‘실버마크’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각 지자체 마다 모양이 다른데다 식별이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보다 일찍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1997년부터 70세 이상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실버마크제를 도입했다. 등장했을 당시에는 나뭇잎과 눈물 모양이었지만 2011년부터 시니어(senior)를 의미하는 ‘S’를 흰색으로 쓴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바뀌었다. 실버마크를 붙인 차량 전방으로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위협운전을 하면 기본점수 1점을 감점하고 50만 엔의 벌금도 내야 한다.
누구나 세월이 흐르면 고령자가 된다. 하지만 고령자에 대한 배려는 등한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령운전자를 위한 제도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주변 운전자들의 배려와 양보의 자세가 필요하다. 고령운전자들도 자신의 신체 상태를 인식하고 한계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글
김은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