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택시‘하면 거의 세단형 자동차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택시로 사용되는 자동차의 종류는 다양하다. 각 국가마다 택시로 이용되는 차종은 해당 국가의 산업적 배경과 교통 문화에 맞춰 발전해왔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택시들을 살펴본다.
런던의 검은 물결, 오스틴 TX1
영국에는 런던의 길거리를 대표하는 두 가지 아이콘이 있다. 하나는 빨간색의 2층 버스 ‘더블데커’이며, 하나는 영국의 국가대표 택시인 블랙캡이다. 블랙캡은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에도 등장했을 만큼 런던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블랙캡은 두꺼비처럼 육중한 차체를 가진 데다, 신사들이 쓰는 검정 모자와 닮아서 붙여진 별칭이라고 한다.
블랙캡으로 불리는 오스틴 시리즈는 런던 택시 컴퍼니(LTC)가 생산해왔으며, 현재 LTC는 중국의 지리자동차에 인수된 상태다. 블랙캡은 1947년에 탄생했고, 여러 번의 개량을 거쳐 현재는 1997년에 탄생한 TX1 기종이 사용되고 있다. 지리자동차는 블랙캡의 후속 기종을 위해 투자를 진행 중이며, 2015년 5월에는 후속 기종인 TX5의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블랙캡은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인데, 신사의 나라답게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 모자가 걸리지 않도록 배려한 제작법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블랙캡은 거리당 요금제로 계산되며 탑승자 수, 수하물 개수, 심야 할증 등에 따라 요금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이 합산된 요금의 약 10%를 팁으로 주는 것이 상례다.
미국 할리우드의 단골손님,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미국의 택시인 옐로우캡은 미국 도심을 배경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해 미국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차가 있으니, 바로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다. 현재 미국에서 쓰이는 크라운 빅토리아는 1998년에 처음 출시된 기종이다. 크라운 빅토리아는 택시는 물론 미국 경찰차의 80%에 달하는 점유율을 갖고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뉴욕의 상징과도 같았던 옐로우캡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크라운 빅토리아의 섀시는 링컨의 풀사이즈 세단인 타운카와 플랫폼을 공유하기 때문에 전장이 5,385mm에 달한다. 엔진 또한 4.6리터(4,606cc) V8로 연비가 7km/L에 불과하다. 이는 배기가스와 연비를 규제하는 친환경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 따라서 택시 업계에서도 저 배기량 및 친환경 자동차를 선호하는 추세다.
뉴욕은 옐로우캡 기사의 96%가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일부 기사도 존재한다. 옐로우캡은 거리당 요금제로 계산되며, 저녁 8시부터 심야할증이 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팁 문화가 오래 자리 잡은 미국인만큼 옐로우캡 또한 지불할 요금의 일부분을 팁으로 지급하는 것이 상례다.
일본, 자동문이 설치된 토요타 크라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소설<1Q84>를 한 번쯤 읽어봤을 것이다. <1Q84>는 수도 고속도로의 택시 안에서 시작하는데, 이 택시가 바로 토요타 크라운이다. 토요타 크라운은 1995년부터 일본 내에서 택시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택시 전용으로 출시되는 기종이 그렇듯 대형 차량임에도 내부는 원가절감을 위해 플라스틱으로 마감을 했다. 크라운 택시의 출시 당시, 일본에서는 토요타 외에도 닛산 크루, 닛산 세드릭이 택시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토요타가 택시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 택시의 특징으로는 뒷좌석 자동문을 꼽을 수 있다. 일본 택시의 자동문은 손으로 당기는 레버 방식과 진공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택시의 자동문은 일본이 서비스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추측 되어왔다(혹은 안전상의 이유로 인해). 하지만 한 일본의 TV 프로그램에서는 과거에 하차 시 문을 닫지 않는 손님이 존재했다고 한다. 택시가 소형차였을 땐 택시 기사 스스로 닫았지만, 중형차 급 이상이 보급되며 손이 닿지 않자 고안된 장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의 택시는 기본요금이 730엔(한화 약 8,000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의 택시 요금 역시 거리당 요금제로 계산되며, 288m당 요금이 증가한다. 심야할증은 밤 10시부터 익일 새벽 5시까지다.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싱가포르의 택시
아시아 금융 중심지이자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등의 휴양지로 유명한 싱가포르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형형색색의 택시 때문에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컬러의 택시는 차종이 다를 뿐만 아니라 요금까지 다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택시는 크게 빨강, 노랑, 파랑, 검정, 흰색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빨강, 노랑, 파랑은 현지에서 ‘칩 택시(Cheap Taxi)로 불린다. 칩 택시는 대부분 준중형에서 중형으로 구성돼 있으며, 특히 싱가포르 전체 택시의 60%는 현대자동차의 쏘나타가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검은색 택시는 대부분 크라이슬러 300C를, 흰색 택시는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를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싱가포르 택시는 거리당 요금에 45초 대기 시간마다 요금이 추가된다. 이 외에도 일부 도심 지역 통과 시, 평일 출근 시간대와 매일 퇴근 시간대의 피크타임, 12시 이후의 심야, 공항과 일부 호텔 및 ERP(Electronic Road Pricing)구간에서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또한 생활 질서와 관련된 법률이 엄격한 나라인 만큼 버스와 연관된 특정 지역에서는 하차도 불가능하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는 자율주행 택시도 운영하고 있다. 누토노미(NuTonomy)라는 업체가 개발한 자율주행기술 소프트웨어를 르노 조이(ZOE), 미쓰비시 아이미브(i-MiEV)택시에 탑재해 자율주행을 가능케 한다. 아직까지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운전자와 조사원이 동승하지만, 이는 미래의 택시로서 첫 시도라는 의의가 있다.
독일의 녹색 지옥을 내달리는 특별한 택시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서킷은 20.8km의 길이와 150개가 넘는 코너, 최고 300m에 달하는 고저차로 ‘녹색 지옥’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험난한 서킷이다. 놀라운 건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도 택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택시의 수준도 다르다. F타입 SVR, 닛산 GT-R, 포르쉐 GT3 컵 카 등 차종만 19가지에 이른다. 기사 역시 레이서이며, 차량에는 롤케이지, 버킷 시트, 4점식 벨트 등이 탑재돼 탑승자를 보호한다. 동승자는 레이싱 슈트, 헬멧, 목 부상을 방지하는 한스 등을 착용해야 한다. 차체 내부에는 카메라를 설치해 특별한 경험을 사직하고 싶은 손님에게는 내외부 영상을 전달해준다. 가격은 차종에 따라 249~699유로(한화 약 31~86만원)다.
택시는 국적을 불문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운송수단이다. 해외 여행을 간다면 한번쯤은 그 나라의 문화와 배경에 따라 성장한 특성 있는 택시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미리 국가별 요금계산법을 알아둬야 바가지 요금의 위험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