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심리는 자동차에도 반영된다. 이에 몇몇 자동차 제조사들은 한 사람만을 위한 자동차를 제작하거나, 특별한 편의 사양을 적용하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한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나만의 자동차를 갖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자동차
원–오프(One-off) 자동차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원-오프란, 유일한 제품의 견본, 혹은 한 개 뿐인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단어를 자동차 시장에 적용하면, 세상에 단 한 대 뿐인 자동차라는 뜻이 된다. 즉, 자동차의 오너도 단 한 명이 되는 셈이다. 주로 이런 자동차의 제작은 슈퍼카 혹은 최고급 세단 제조사와 셀러브리티 고객 간의 거래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의 슈퍼카 제조사인 페라리는 주문자가 자신만의 페라리를 만들 수 있는 ‘원–오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휠, 외관, 색상, 인테리어는 물론 세세한 사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선택 가능하다. 물론 이와 같은 선택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페라리의 테일러 메이드 시스템이 있지만, 그보다 몇 단계 더 디테일 한 고객의 요구도 반영할 수 있다.
원–오프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예로, 일본 부동산 재벌이자 페라리 클럽 재팬의 회장인 히라마츠 준이치로의 페라리 SP1이 있다. SP1은 스페셜 프로젝트(Special Project) 넘버 1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라리 SP1은 2008년, F430을 베이스로 제작됐다. SP1의 디자인은 피오라반티가 맡았으며 바디의 소재로는 알루미늄과 탄소섬유가 채택됐다. 프론트 부분은 날카로운 디자인의 범퍼와 카본 프론트 립을 장착한 것 외에는 일반 F430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리어 부분은 스페셜 기종답게 여느 페라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리어 램프와 리어 디퓨저 등을 채택했다. 자세한 엔진 제원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자동차 산업 관계자들과 미디어들은 기존 F430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파가니는 슈퍼카 중에서도 희귀한 자동차다. 도로 위의 예술품으로도 불리는 와이라의 경우는 100대 한정, 와이라 BC는 20대 한정으로 생산했다. 그런데 파가니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지난 5월, 단 한 대만 생산하는 파가니 와이라 펄 에디션을 선보였다. 와이라 펄 에디션의 외관에서는 과거 존다S에서 선보였던 두 갈래로 나뉜 리어 스포일러를 장착한 것이 눈에 띈다. 또한 루프의 상단에 엔진으로 이어지는 공기 흡입구가 새롭게 자리 잡았다. 섀시 곳곳에 쓰인 카본은 탄소섬유의 원단 사이에 티타늄 섬유를 꼬아 특별 제작한 카보타니움(Carbotanium)이란 소재가 적용됐다. 이 소재는 일반 카본보다 강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실내의 하얀 시트에는 도장 색상과 동일한 파란색의 스티치가 돋보인다.
엔진은 기존 와이라에 적용됐던 V12 6.0리터(5,980cc) 트윈 터보 엔진을 기반으로 한다. 정확한 출력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와이라 BC가 75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만큼, 와이라 펄 에디션의 최고 출력도 이에 근접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럭셔리의 끝판왕, 개인 맞춤 프로그램
자사의 차량에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제조사들도 있다. 럭셔리 세단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롤스로이스, 벤틀리, 마이바흐, BMW 7시리즈와 고성능 스포츠카 제조사인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이 개인 맞춤형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보통 높은 가격과 출고 기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자신만의 색상과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존재한다.
영국의 왕실 차량으로도 쓰이는 벤틀리에는 자사 기종에 편의 및 외관 사양을 추가하는 뮬리너 서비스가 있다. 뮬리너의 원–오프는 또 다른 원–오프 프로그램인 페라리의 시스템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페라리의 원–오프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외관 디자인과 편의 사양일지라도 고객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데 반해, 뮬리너는 이미 정해진 수십만 종류의 사양을 기존 차량에 적용해 차별화를 두는 프로그램이다. 뮬리너는 센터페시아, 사이드 미러, 콘솔, 도어 트림 등 익스테리어의 전반적인 부분에 걸친 사양을 개별 고객의 선호도대로 채택할 수 있다. 벤틀리에 따르면 뮬리너는 약 12만 가지에 달하는 편의 및 외관 사양이 존재하며, 각 부분의 최고가 사양의 조합이 87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벤틀리는 안전과 법규에 저촉되지 않는 한 뮬리너는 고객의 모든 요구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12만 가지나 되는 사양이 있는 만큼, 기상천외한 사양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벤틀리는 자사 SUV인 벤테이가를 통해 낚시에 특화된 사양을 선보였다. 최고급 사양인 만큼 각종 낚시 장비는 최고급 가죽과 호두나무로 제작됐다. 벤테이가의 트렁크에는 낚싯대 가방과 뜰채 등을 보관 가능한 상자가 있는데, 습기를 머금은 낚시 용품을 효과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방수 및 제습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영국의 또 다른 럭셔리 세단 제조사인 롤스로이스도 개인 맞춤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맞춤형 생산, 맞춤 정장의 사전적 의미를 갖는 비스포크(Bespoke)가 그것이다. 비스포크 서비스는 외관과 실내에 비스포크 전용 색상을 적용하며, 시트의 스티치 색과 나무의 결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부분의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롤스로이스는 고객을 위해 다양한 럭셔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롤스로이스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1월 1일에는 영종도에 위치한 BMW 드라이빙 센터에도 롤스로이스 스튜디오를 오픈했는데, 이는 영국 굿우드 본사에 위치한 아틀리에(Atelier)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브랜드 스튜디오다. 롤스로이스의 다양한 기종이 전시되는 아틀리에 라운지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물론 한국의 아틀리에 라운지에서도 롤스로이스의 비스포크 서비스를 접수한다.
튜닝, 자급자족하는 셀프 비스포크
자동차 외관을 튜닝 하는 익스테리어 튜닝 또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는 에어로 다이내믹을 고려한 익스테리어부터 특수한 재질을 본뜬 필름, 도색 등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튜닝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자동차 동호회에 가면 수 십 가지의 튜닝 노하우와 후기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 원하는 물건을 제작하고 적용한다는 의미의 신조어인 ‘D.I.Y’(Do It Yourself)에 관한 글이다. 저렴하게 래커 스프레이를 이용한 자가 도색 방법부터 카본 스티커 필름과 스포일러 장착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문 튜너로는 국내 업체인 카스킨과 미국의 3M 등이 고객의 취향에 맞게 형광 및 무광, 크롬과 같은 개성 있는 색으로의 랩핑 등을 제공한다. 정션과 퍼포먼스 게러지와 같은 튜너들은 바디킷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튜닝은 자동차 제조사들의 편의 사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오너의 바람대로 튜닝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과거, 자동차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개성이 존중받는 시대가 오면서 자동차 역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자동차 제조사에서 순정 사양으로 선택 가능한 개성 있는 페인팅 및 데칼이 이를 뒷받침한다. 운전자 개개인의 개성을 살린 자동차 선택 프로그램은, 제조사 입장에서도 중요한 미래적 전략이 되고 있다.
글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