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비자들이 신차를 시승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원표를 잘 들여다보면, 해당 자동차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가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 자동차를 시승하게 됐을 때 꼭 검증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제원표 해부학은 새로운 자동차들의 제원표 속에 숨은 퍼포먼스와 감성의 비밀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코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CLS가 쿠페를 정의하는 데 있어 차체 외형과 승차인원에 관한 고정관념을 깼다면, BMW의 4시리즈는 이 새로운 세그먼트를 대중화하는 데 성공한 자동차다. 또한 차체 외형 및 엔진의 종류와 동력 성능, 구동 방식 등의 사양에 따라 30여 가지 트림을 갖춰 선택의 폭도 넓다. 그 중 마니아들만 알고 있도록 놔두기엔 아까운 매력적인 제원의 차량이 숨어 있다. 바로 435d X 드라이브다. 국내 시판 기종이지만 전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까닭에 제원표 해부가 필수적인 자동차이기도 하다.
435d X 드라이브 그란 쿠페의 제원표를 찬찬히 읽어 보면 마치 스무고개가 연상된다. 쿠페다운 유려한 디자인과 안락함을 동시에 갖추었는가? 디젤 엔진답게 강력한 최대 토크에 기반한 효율을 갖추었는가? 가솔린 엔진이 기회비용이 되지 않을 만큼 최고 출력도 충분한가? 합리적 가격과 연비는? 4륜 구동 방식을 택하고 있는가? 적어도 제원표상에서의 435d X 드라이브는 ‘그렇다’라고 답하고 있다.
전장은 4,640㎜로 그리 길지 않지만 휠베이스가 2,810㎜에 달한다. 그만큼 오버행이 짧아 길고 유려한 한편, 날렵한 인상을 제시한다. 또한 휠베이스가 긴 만큼 4인승 차량에서 비교적 여유로운 뒷좌석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로 휠베이스는 4시리즈의 디젤 기종 중 엔트리급인 418d가 2,825㎜로 15㎜ 길다.
여기에 국내 출시 435d X 드라이브의 경우, M스포츠 서스펜션 및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컨트롤, M의 이미지를 강조한 에어로파츠와 스포티한 감성의 인테리어가 적용된 M스포츠 패키지가 기본이다. 그럼에도 가격은 8,800만 원대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BMW 435d X 드라이브에 장착된 3.0리터(2,993cc) 엔진의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는 각각 313hp(4,400rpm), 64.3kg∙m(1,500~2,500rpm)이다. 엔진회전수의 고저에 따라 다른 배기가스 유속에 대응해 터보랙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트윈 터보 차저를 장착했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4.8초만에 가속 가능하다.
435d X 드라이브에 장착된 엔진의 재미는 100km/h 가속보다 그 이상에 있다는 것이 이 자동차 유저들의 증언이다. 그 진위 여부는 토크 밴드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끝까지 밟는다면 계기반의 바늘은 계속 4,000~5,000rpm을 오가게 된다. 이는 최대 토크의 한계 영역을 지난 범위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50kg∙m대의 토크가 발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외 유저들의 자체 제작 영상을 참고하면 100~200km/h까지의 가속 시간은 평균적으로 12~13초 정도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성능에는 4,400rpm에서 발휘되는 최고 출력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참고로 BMW 내에서 435d와 동일한 배기량과 최고 출력 및 최대 토크의 세팅을 갖고 있는 엔진으로는 X5와 X6의 X 드라이브 40d를 꼽을 수 있다. 다만 공차 중량의 차이로 인해 가속 성능과 연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사실 유럽의 프리미엄 제조사에서 3.0리터 디젤 터보 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드물지 않다. 메르세데스 벤츠에는 350d(2,987cc), 폭스바겐과 아우디, 포르쉐에는 3.0리터 TDI(2,967cc) 엔진 등 내로라 하는 디젤 엔진이 있다. 각 엔진은 제조사의 성격을 반영하므로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각 세그먼트로 범위를 좁히면 비교 구도가 형성된다. 그 중 최고 출력 면에서만 보면 아우디 A7의 3.0리터 TDI 기종 중 최상위 등급이 326hp(4,000~4,500rpm)으로 약간 앞선다. 하지만 최대 토크는 66.3kg∙m(1,400~2,800rpm)로 435d의 최대 토크가 더 강하다. 최대 토크 발휘 구간은 A7 3.0 TDI 쪽이 더 넓지만, A7은 공차 중량이 1,925kg으로 435d X 드라이브보다 약 240kg 더 무겁다. 따라서 A7은 0→100km/h까지의 가속 시간은 5.1초로 0.3초가 더 걸린다. 물론, 이 역시 나무랄 데 없는 성능이며, 만약 435d와 비슷한 휠베이스에 더 가벼운 공차중량을 지니고 있는 A5였다면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는 실재하는 자동차끼리의 일이다.
BMW의 435d의 엔진은 위와 같은 퍼포먼스를 구현함에도 국내 기준으로 14.2km/L(도심 12.4km/L, 고속 17.2km/L)의 복합 연비를 구현한다. 유럽 기준의 복합연비는 5.6L/100km에 달한다. 게다가 139g/km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동급 배기량의 가솔린 엔진과 맞먹는 수준으로, 디젤 엔진의 환경 영향 논란을 무색케 한다. 압축 착화하는 디젤 엔진의 특성상, 효율화를 위해 연료 분사 압력을 2,000바로 높게 설정하고, 압축비도 16.5:1에 달하지만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은 유로 6를 만족시킨다.
이러한 효율화에는 변속기와 연동한 시스템의 스마트화가 더욱 크게 작용했다. 토크컨버터 기반의 8단 변속기는 높은 효율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내비게이션상에 나타난 경로의 지형과 교통 흐름을 미리 분석해, 변속 시점을 미리 알고 대응하는 시스템을 적용해, 변속 시 발생하던 불필요한 연료 소모를 대폭 줄였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성은 약간의 우려도 낳는다. 특히 인터넷에 기반한 커넥티드 기능이 트랜스미션과 직접 연결되면서, 다양한 전기 부품들 간의 신호도 복잡해지는 경향이 생겼다. 이는 ECU의 오류 가능성 증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BMW 뿐만 아니라 전장 분야의 신기술을 채용하고 있는 각 제조사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4 시리즈의 서스펜션은 와인딩과 고속 주행을 모두 즐기는 이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전륜 서스펜션은 스트럿을 기반으로 하되 경량화된 알루미늄 조인트로 구성되었다. 또한 횡방향의 힘에 의한 움직임을 보상하는 구조 및 감속 시 차체 앞쪽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는 안티 다이브 시스템을 적용했다. 후륜 서스펜션은 5링크 시스템으로 역시 알루미늄 부품을 활용해 경량화를 꾀했다. 특히 후륜 서스펜션은 크로스멤버(틀 모양의 구조물)의 앞쪽을 아치형으로 만들어 차체의 무게중심을 낮추었다. 4시리즈의 뒷좌석 승차 공간의 여유는 이 크로스멤버의 구조 덕분이기도 하다.
구동 방식은 X 드라이브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4륜 구동이다. 전장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온 BMW답게, 선회 중 브레이크를 밟을 때 궤도 이탈을 막아 주는 코너링 브레이크 콘트롤(CBC), 브레이크 온도에 따라 압력을 최적화하는 페이딩 보상 기능 등과 디퍼런셜을 통합 섀시 매니지먼트(ICM)시스템 안에 유기적으로 연결하였다. 여기에 차량의 속도에 맞게 스티어링 휠의 조향각도를 제어해주는 서보트로닉 기능이 장착되었다. 이러한 장치들의 결합이 자칫 운전자가 코너링의 매력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동차의 설계가 염두에 둔 코너링은 일상 영역보다 여러 가지로 큰 부하가 걸리는 조건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435d X 드라이브 그란 쿠페의 제원표는, 다양한 능력과 많은 즐거움의 가능성이라 요약될 수 있다. 또한 이 자동차의 제원표는 한국에 입국하지 않은 쿠페와 컨버터블이라는 두 친구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만든다. 묵직한 디젤 엔진이 얹힌 하드 톱 컨버터블의 차체 밸런스는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컨버터블과 비교해 어떤 감각을 전할까? 또한 쿠페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3도어 섀시에 더할 날렵함은 어떤 느낌일까? 두 차종 모두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