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잘 알려진 자동차 생산 국가로는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자동차 제조사의 국적은 훨씬 다양하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자동차 생산국 및 해당 국가의 자동차 제조사들에 대해 알아본다.
축구 마니아들에게 스페인은 무적함대라는 별칭과 명문 축구 구단 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국가다. 스페인 태생의 자동차 제조사가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에는 소위 ‘국민차’ 제조사는 물론, 스포츠카 제조사도 있다.
세아트(Seat)는 소형차부터 해치백, 세단, SUV, 미니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제작하는 스페인의 자동차 제조사다. 세아트는 1919년 피아트의 스페인 지사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해, 1950년 ‘투리스모 자동차 스페인 회사(Sociedad Espanola de Automoviles de Turismo)’라는 국영기업으로 독립했다. 세아트라는 명칭은 이 명칭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이후 1953년에 자사의 첫 번째 자동차인 ‘세아트 1400’을, 1957년에는 세아트 600을 출시했다. 특히 세아트 600은 전장 3,322mm, 배기량 633cc의 소형차로 합리적인 가격과 유지비용을 자랑해 스페인에 자동차 붐을 일으켰다. 세아트 600은 스페인의 국민차로 불리며, 1973년 단종까지 80만대 가 생산됐다.
하지만 1978년, 정부가 수입차에 유화적인 정책을 펼치자 세아트의 판매량은 급감했고, 적자폭이 증가했다. 한때 세아트의 점유율은 26%수준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아트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차를 출시하는 한편, 폭스바겐과 협력 관계를 맺어 기술 발전에 힘썼다. 이후 1986년 중순, 세아트는 지분의 51%를 폭스바겐에게 양도하고, 1986년 말에는 75%의 지분을 넘겨주며 폭스바겐의 자회사가 되었다. 현재 세아트는 폭스바겐 산하에서 70개국 이상에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다.
또한, 스페인에는 소규모의 스포츠카 제조사도 있다. 이탈리아와 지중해 서북 방향 산악지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일컫는 트라몬타나라는 이름의 제조사가 그것이다. 트라몬타나는 2005 제네바 모터쇼에서 F1 머신을 콘셉트로 한 트라몬타나 R을 선보였는데, 휠&타이어가 그대로 드러난 오픈 휠 디자인과 프론트 및 리어 스포일러, 전투기처럼 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 캐노피 방식 등의 독특한 외관이었다. 슈퍼카 제조사로서는 다소 낯선 스페인의 신생 자동차 제조사인 점도 주목의 요인이 되었다. 트라몬타나는 최고 출력 710hp(5,250rpm), 최대 토크 112.2kg·m(4,000rpm)를 발휘하는 거대한 V12 5.5리터(5,513cc)트윈 터보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보디에 탄소섬유를 적극 채용해 공차중량이 1,268kg에 불과하다. 또한, 가격은 38만 5,000유로(한화 약 4억 7,000만 원)며, 1년에 단 12대만 생산한다.
풍차와 튤립, 무역의 나라로 꼽히는 네덜란드에도 100년 역사를 가진 제조사가 있다. 또한, 부가티처럼 폐지와 부활이 반복된 기구한 운명의 스포츠카 제조사도 있다.
상용차에 관심이 있거나 <유로 트럭 시뮬레이션>과 같은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프(DAF)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다프는 1928년에 설립된 상용차 제조사다. 초기에는 세미 트레일러 제작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이후 버스와 트럭의 섀시를 1959년부터 1975년까지 600, 44, 55, 66이라 불리는 승용차를 제작하기도 했다. 1975년에는 볼보에 인수되며 대형 트럭과 버스 분야가 분리되었다. 1996년에는 미국의 트럭 그룹인 파카(PACCAR)에 인수돼, 캔워스, 피터빌트, 볼보 등 다양한 상용트럭 제조사와 함께하고 있다. 현재 다프는 대형 트럭의 섀시와 엔진, 변속기 등을 직접 제작하며 유럽을 대표하는 상용트럭 제조사다.
네덜란드 스파이커는 1880년에 설립된 수제 스포츠카 제조사다. 설립 당시 스파이커는 자동차와 왕실용 마차를 동시에 생산할 정도로 안정된 규모를 갖고 있었다. 스파이커는 각종 내구성 테스트와 최고속도 테스트에서 기록을 세울 정도로 자동차 관련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1912년, 창업자 한 명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스파이커의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네덜란드의 항공기 공장인 NV에 합병돼, 비행기 엔진을 제작하며 연명했지만 1925년에 파산한다.
하지만 파산한지 74년 후, 과거 스파이커의 업적을 높이 산 투자자가 나타나 스파이커를 부활시켰다. 이후 스파이커 C8과 라비올레트, 더블12, D8 콘셉트카 등을 공개하고, GT2클래스 레이스 참가하는 한편, F1팀인 미드랜드를 인수하는 등의 업적을 보였다. 물론 부활 후 승승장구하는 것만 같던 스파이커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오기도 했다. 스파이커보다 규모가 컸던 사브가 도산 위기에 처하자, 이를 인수한 것이다. 엄청난 적자에 시달려온 사브의 부채를 스파이커가 감당하기엔 벅찼다. 결국 사브는 파산했는데, GM이 사브의 파산 책임을 스파이커에게 물면서 30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 배상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스파이커는 2014년에 파산신청을 했지만, 2015년 7월에 다시 재기에 성공하며 신차를 준비하고 있다.
멕시코는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고, 수출이 용이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공장이 대거 몰려있다. 또한, 연간 340만대에 달하는 자동차 생산대수로 세계 7위, 중남미 지역에서는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멕시코는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멕시코 토종 제조사는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1987년에 설립된 마스트레타(Mastretta)는 멕시코 태생의 스포츠카 전문 제조사다. 마스트레타(창업자의 이름이 다니엘 마스트레타)는 멕시코의 로터스라 불리는데, 경량 소재를 적용한 1,000kg 이하의 차체에 작은 엔진을 탑재한 점이 닮은 까닭이다. 대표적인 차종으로는 마스트레타 MXT가 있는데, 중량이 900kg에 불과하다. 엔진은 포드의 직렬 4기통 2.0리터 터보 차저 방식을 적용해 최고 출력 240hp를 발휘한다. 엔진 레이아웃은 미드쉽이다. 가격은 5만 8,000달러로, 유럽과 미국에 100대 가량 수출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는 유럽 중남부 국가로서, 한국 면적의 56%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드리아 해에 인접한 절벽을 따라 이어진 도로와 14세기 중반에 건축한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 등이 아름다운 관광국가이다. 나라가 작다 보니 2010년 한 해 동안 크로아티아에서 판매된 차량은 3만 8,587대에 불과했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월 평균 판매량 대비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이러한 까닭에 크로아티아의 자동차 시장은 규모 면에서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에는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 스포츠카 제조사인 리막(Rimac)이 있다. 라페라리와의 드래그 레이스에서 승리한 유튜브 동영상과 스웨덴의 스포츠카 제조사인 코닉세그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납품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리막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리막의 배터리는 가속 시 최대 1,000kW의 힘을 발휘하며, 회생제동 시스템을 통해 400kW의 힘을 흡수한다. 리막의 콘셉트 원(Concept one)은 시스템 최고 출력 1088hp, 최대 토크 163.2kg·m를 발휘한다. 콘셉트 원은 공차중량이 1,850kg에 달함에도, 2.6초 만에 100km/h, 14.2초에 최고 속도인 355km/h에 도달한다. 리막 콘셉트 원은 88대가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계획을 수정해 8대만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당 가격은 98만 달러(한화 약 11억 2,200만 원)다.
이처럼 세계 곳곳으로 눈을 돌려보면 다양한 국가에 자동차 제조사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닌 자동차들을 제작한다. 잘 몰랐지만 글로벌 제조사 산하에서 의외로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차종도 있고, 특정 유저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독특한 기종을 생산하기도 한다. 물론 국내에서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확실히 있다면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국도 불과 반 세기 전에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신기한 나라였다.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세계적 위상을 생각한다면, 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들의 제조사들 역시 쉽게 볼 대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글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