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독일과 미국, 일본,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가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발표되는 자동차 판매량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동차 강국에는 잘 알려진 메이저 제조사 이외에 숨겨진 제조사도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브랜드 전략에 실패했거나 지나치게 강한 개성으로 인해 시장에서 크게 조명 받지 못하는 자동차 강국의 숨은 제조사를 알아본다.
독일은 최초의 자동차를 선보인 국가인 만큼, 자동차 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이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아우디, 폭스바겐은 자국에서도 판매량 1~4위를 휩쓴다. 하지만 독일 태생의 오펠은 ‘독일 4사’의 그늘에서 오랜 시간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독일 전체 판매량에서 유럽 포드에게 밀리기까지 한다. 현재 유럽시장 판매 순위 20위 중 오펠의 차량으로는 아스트라와 코르사가 전부다.
오펠은 1863년 재봉틀 제조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1886년에 자전거, 1899년에 자동차로 분야를 변경했다. 오펠이 자동차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24년, 대규모 투자로 유럽 최초로 자동차 대량생산 시설을 갖추면서부터다. 1928년에는 독일 내 시장 점유율이 37.5%에 달하기도 했다. 1929년, GM이 2,6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의 80%를 인수한 것도 대량생산 시설의 가치를 높게 본 까닭이다. 2년 후인 1931년, GM은 나머지 20%의 지분마저 사들여 오펠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후 오펠은 오랜 기간 동안 승용차와 상용차를 두루 제작하며 입지를 다져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펠은 다른 제조사가 아닌, 같은 GM산하의 브랜드인 복스홀과 경쟁하는 구도가 펼쳐졌다. 이에 더해 같은 급의 차종에 동일한 플랫폼과 엔진을 적용해온 GM의 정책은 자사 내에서 카니발 현상(Cannibalization, 자기시장 잠식 효과)을 일으켰다. 시쳇말로 ‘팀 킬’이라고도 불리는 현상이다.
한 예로, 독일에서 오펠 인시그니아라는 명칭으로 불린 세단은 복스홀 인시그니아, 뷰익 리갈, 쉐보레 말리부와 동일한 디자인과 파워트레인을 장착했다. GM은 과거에 이를 중복해 판매한 바 있었다. 모습은 같았지만 가격이 다른 탓에, 제조사 내에서 판매량에 간섭이 일어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카니발 현상을 겪은 후, 현재는 각 국가마다 차종이나 제조사가 겹치지 않도록 분리해 운영한다.
뷰익은 1899년, 내연기관 엔진을 제작하는 ‘뷰익 오토빔 앤 파워 컴퍼니’로 시작해, 1903년 뷰익이라는 명칭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에 데뷔했다. 뷰익의 창립자인 데이비드 던바 뷰익(1854~1929) 은 1904년, 자사의 첫 자동차인 모델 B 투어링카를 판매하며, GM의 설립자이기도 한 윌리엄 듀란트를 영입했다. 이후 1906년, 뷰익의 지분을 인수하게 된 윌리엄 듀란트는 1908년에 GM을 설립하며, 뷰익을 GM산하에 뒀다. 뷰익은 커다랗고 웅장한 차체 디자인과 섀시 크기, 편안한 승차감, V8 오버헤드밸브(OHV)엔진 등을 장착하고 고급 브랜드를 지향했다.
하지만 고급차 시장에서 뷰익의 포지션이 애매했다. 같은 GM 산하에는 동일한 고급차 브랜드인 캐딜락이 있었고, 이 둘은 캐릭터가 겹쳤다. 뷰익은 미국 대통령의 의전 자동차로 알려진 캐딜락의 이미지를 넘지 못했다. 또한 주 고객인 여유 있는 노인들의 취향에 맞춘 뷰익은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오히려 캐딜락이 시대마다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오며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해오고 있는 것과는 비교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새옹지마 격으로, 뷰익은 2008년에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GM의 파산 보호신청과 맞물려 극적으로 살아났다. 연방정부로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받은 GM은 폰티악과 뷰익 중에서 뷰익을 구출했는데, 이는 급격히 성장한 중국 시장에서의 영향력덕분이었다. 자국에서는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중국 시장에서 뷰익의 명성은 캐딜락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푸이와 중국인이 가장 사랑한 지도자로 알려진 저우언라이 등이 뷰익의 승용차를 탔던 영향도 있었다. 현재 뷰익은 중국 시장에서 세단과 SUV, 미니밴을 포함해 총 12대의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는데, 자국에서 판매하는 차량보다 3대나 많은 수치다. 뷰익은 중국 시장 전용으로 GL8이라는 미니밴을 공급하며, 한때 중국 내 판매량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앞의 두 사례와는 달리, 독특한 정체성을 고집해 크게 노출되는 것을 오히려 꺼리는 부티크 타입의 제조사들도 있다. 명맥을 잇기가 녹록지 않은 수제차라는 분야를 택했음에도, 5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미쯔오카가 대표적이다.
미쯔오카는 1968년에 창업해 중고차 판매와 수입차 딜러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자본을 축적한 후 1979년에야 비로소 미쯔오카라는 브랜드를 설립했다. 1982년, 미쯔오카는 50cc의 배기량을 가진 경차 부부(BUBU) 셔틀50을 공개하고, 경차인 501~504를 순차적으로 출시하며 입지를 다졌다. 이후 1990년부터 타 제조사의 플랫폼을 이용해 제작한 차량들로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의 라세드는 닛산 실비아 S13의 기본 베이스에 미쯔오카만의 디자인을 적용한 자동차로, 미쯔오카가 지향하는 카로체리아(작은 자동차 제작 공방)의 첫 걸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기술력을 습득한 미쯔오카는 2006년에 타사 기종을 베이스로 하지 않은 스포츠카 오로치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후, 포드 머스탱 컨버터블을 기초로 한 가류 컨버터블, 마쯔다 MX-5를 기반으로 한 미쯔오카 히미코 등 다양한 수제 자동차를 출시한다.
미쯔오카의 제작 방식은 별도로 차체의 플랫폼과 엔진, 변속기 등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 자동차를 제작하거나 신차를 개발하는 데 리스크가 적다. 또한, 검증된 자동차의 플랫폼을 사용하므로 안정성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미쯔오카 차량들의 인테리어와 엔진, 변속기 등은 기존의 차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계기판의 클러스터, 스티어링 휠의 버튼 배열, 공조기 배치와 모양, 인테리어의 디자인은 베이스가 된 차량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미쯔오카만의 외관 디자인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 차량과 똑같은 실내 구성에 다소 높은 가격을 지불할 소비자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국에는 색다른 장르의 자동차인 3륜차를 고집하는 제조사가 있다. 바로 모건이 주인공이다. 1909년, 헨리 프레데릭 스텐리 모건은 개인적인 용도로 3륜 자동차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 자동차를 본 사람들이 제작과 판매를 요청했고, 모건은 이를 수락한 것이 사업의 계기가 됐다. 1910년 모건은 모건 모터 컴퍼니를 설립해 정식으로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3휠러(Wheeler)라 불린 이 자동차는 사이클 카 그랑프리(Cycle Car Grandprix)와 힐 클라임 레이스 등 여러 레이스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와 같은 인기에 힘입어 3휠러는 1915년, 4명이 탈 수 있는 가족용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다.
모건은 또한 나무를 이용한 차체 제작 공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순수 나무만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강철 프레임과 가공한 물푸레나무 및 알루미늄을 함께 사용한다. 섀시를 제작한다. 이와 같은 공법을 통해 만들어진 모건의 자동차는 부식을 잘 견디면서도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아직도 모건의 자동차만을 찾는 마니아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빠른 변화 속에 자신들의 입지와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구현하는가는 별개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물론 모건도 3휠러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1936년 모건은 자사 최초의 4륜 자동차인 4/4를 출시한 이후 최근까지도 4륜 자동차를 생산 중이다. 1952년에 단종하고, 4륜 자동차 생산에 집중했다. 모건의 최초 4륜 자동차는 1936년에 출시한 4/4이다. 4/4에는 1930년대의 대표적 디자인 언어인 롱노즈 숏데크와 휠을 감싸는 곡선을 그대로 반영해, 최근까지도 그대로 적용될 만큼 모건의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다. 한편, 모건 모터 컴퍼니 설립의 상징과도 같은 3휠러는 지난 2012년에 생산을 재개했다.
시대와 시장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뒤처진 제조사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의 길만을 고집하며 메이저와 다른 길을 가는 제조사도 있다. 앞서 소개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그늘에 가려져있음에도 평균 9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써내려 온 후자의 상황이다. 이는 어떤 사례든 자동차 제조업에 있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좋지 못한 결과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좋은 결과는 제조사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글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