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쿠가, 펀 SUV를 정의하다

자동차는 지극히 이성적인 고민을 거쳐 제작된 결과물임에도, 소비는 감성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자동차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신차 출시 때마다 해당 자동차의 홍보 전략에 고심한다. 특히 비슷한 동력성능과 크기를 지닌 경쟁 기종이 많은 자동차의 경우 포지션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것은 절대적인 문제다. 포드의 2.0리터 디젤 엔진의 4륜 구동SUV인 쿠가 역시 국내 시장에서 포지셔닝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던 차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승을 통해 확인한 이 자동차의 특성은, 스스로 그 포지션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최대 토크 구현의 또 다른 방법론

포드의 2.0리터(1,997cc) 직렬 4기통 디젤 엔진인 TDCi(듀라토크)를 탑재한 쿠가의 최고 출력은 180hp(3,500rpm), 최대 토크는 40.8kgm(2,000rpm~). 이는 비슷한 체급을 지닌 타 제조사 2.0리터 디젤 엔진 장착 기종의 제원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5 2.0리터(1,999cc) 기종의 엔트리 트림인 TD4는 최고 출력 178hp에 최대 토크 43.8kgm, 현대자동차의 투싼의 최고 출력은 186hp, 최대 토크 41kgm로 거의 비슷하다. PSA 그룹의 2.0리터 GT 기종에 장착되는 디젤 엔진은 엔진회전수만 다를 뿐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가 동일하다.

쿠가의 최대 토크 특성을, 같은 세그먼트의 2.0리터 디젤 엔진 자동차들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쿠가의 최대 토크 시작 시점은 2,000rpm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앞서 열거한 자동차들의 최대 토크 시작 시점을 보면 투싼이 1,750rpm, 디스커버리5 TD4 1,500rpm부터다. 최근 디젤 엔진들은 효율을 위해 최대 토크 시작 시점을 낮추는 추세인데, 이는 일상 주행영역에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디젤 엔진에서 토크의 크기, 즉 폭발력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는 연료의 분사다. 고압으로 압축해 뜨거워진 연소실에 연료를 분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때 연료의 입자를 최대한 미세하게 만들어 연료가 뜨거운 압축 공기와 닿는 면적을 높이는 방법, 그리고 연료의 분사량 자체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 쿠가는 주행 중, 엔진 회전수가 최대 토크 영역에 가까워질 때의 연료소모량이 동일한 2.0리터 디젤 엔진 자동차들보다 다소 많은 편이다. 즉 최대 토크를 얻는 데 연료 포말의 미세화보다는 연료 분사량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충분한 폭발 효율을 일으키기 위해 연소실의 온도와 압력이 더 필요해진다. 따라서 압축 행정의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 듀라토크 엔진의 최대 토크가 2,000rpm대에서 시작되는 것도 이러한 까닭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독일 제조사들의 디젤 엔진 자동차들은 사실 반대의 방법론을 보이고 있다. BMW와 같은 제조사는 디젤 엔진을 생산하는 제조사들 중 가장 높은 연료 분사 압력을 보이고 있다. 실제 이를 통해 강한 최대 토크와 높은 연비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자동차 가격은 물론 유지 및 정비에서의 비용도 상승할 여지가 된다. 즉 타깃 소비자군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포드의 연료 분사 방식은 비용 면이나 유지, 수리 비용 면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효율과 가속력, 게트락 6단 듀얼클러치

그렇다면 4륜 구동 차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쿠가의 연비는 나쁜 편일까? 쿠가는 12.4km/L(도심 11.3km/L, 고속도로 13.1km/L)의 복합 연비를 보인다. 앞서 열거한 기종들과 대동소이할뿐만 아니라 4륜 구동 기종에서는 비교 기종들보다 나은 면이 있다. 시승을 통해 살펴본 바, 그 비결은 트랜스미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쿠가에 장착된 6 DCT는 게트락 사의 것이다. 이 자동차의 변속 시점은 대부분 1,800rpm대에 세팅되어 있었다. 변속이 이루어지면 엔진회전수는 신속히 떨어진다. 최대 토크가 발휘되는 엔진회전수는 높지만 트랜스미션의 세팅을 통해 불필요한 엔진 회전수는 줄이는 방법으로 연료 소모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넓은 기어비를 택해 구동력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쿠가의 자동변속기 변속시점은 최대 토크가 발생하기 이전 시점에 변속을 이루어 변속기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한 공간에 있는 자동차들은 ECU나 액추에이터 오작동 등의 고장에 취약하다. ECU 고장 등으로 트랜스미션의 탈거 수리를 진행하게 되면 최소 2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운전자가 추후 해당 제조사 차량을 연속해서 구매하게 하려면 이런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쿠가의 변속기는 매력적이다.

그렇다면 200rpm 정도의 여유는 무엇에 쓸까? 이에 대한 답은 고속 가속 구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최고 단인 6단에 이른 후 가속이 여유로운 것은 아껴놓은 엔진 회전수 덕분이었다. 최대 토크는 3,300~3,400rpm까지 지속되는데, 3,500rpm에서는 180hp열일하는 네 개의 피스톤 덕을 볼 수 있다. 즉 엔진과 이루는 밸런스가 좋은 변속기인 셈이다. 사실 이러한 밸런스라면 최고 4,500만 원대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는 볼 수 없다.

기민한 구동력 배분 시스템과 유연한 기계적 구조

포드는 쿠가에서 서스펜션의 세팅이 이 자동차의 타깃 소비자군 설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와인딩 구간에서 조향성을 높이는 한편 선회 시 차체 바깥 방향을 견고하게 지지함으로써, 차체는 물론 운전자의 자세도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자동차의 전륜 서스펜션은 맥퍼슨 스트럿, 후륜은 멀티 링크 방식이다. 참고로 시승행사에 나온 쿠가의 트림은 트렌드였다. 이 트림에는 17인치 휠이 장착된다.

 

시승 구간인 경기도 파주에서 연천 구간은 급격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속도를 유지한 채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있었다. 속도를 60~70km/h 정도로 유지한 채 S자로 휘어지는 코스를 통과할 때 차체 바깥쪽으로 형성되는 지지력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구동력 배분 시스템의 기민함과 차체의 강성이 만들어내는 조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댐퍼나 코일 스프링의 지지력이라고 느끼기엔, 요철이 많은 구간을 통과할 때 좌석에 전달되는 노면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깔끔하게 걸러지는 느낌이 강한 까닭이었다. 즉 댐퍼와 코일 스프링의 세팅이 기대만큼 단단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견고한 균형 감각은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 링크를 택한 동급의 다른 자동차들보다 앞선다.

사실 노면 정보가 상당히 정제된 상태로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댐퍼나 코일스프링보다 멀티링크 방식으로 연결된 각 기계 부품의 움직임이 그만큼 유연한 까닭이라고 볼 수 있었다. 미디어 통합 시승 행사를 위해 일렬로 달리던 중 앞선 쿠가의 하체 구조를 보니 노면 상황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는 부품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비교적 높은 턱을 넘을 때도 차체의 상하 진동은 적었다. 이를 통해 네 바퀴는 안정적으로 마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포드코리아 측은 30대 이상, 매니저급의 직무를 수행하는 모험 지향의 남성들을 타깃으로 한다고 밝혔다. 우선 그 타깃 설정은 비교적 정확하다. 해당 타깃의 남성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도 하지만 대신 합리적, 절충적으로 자동차를 선택하는 경향도 강하다. 그러면서도 가장 우위에 놓는 것은 자동차의 주행 감성이다. 이들이 원하는 주행 감성은 고배기량 자동차가 주는 고출력의 퍼포먼스보다는, ‘한끗의 차이로 일상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정도의 동력 성능이다. 하지만 레저 활동에 적극적인 경우가 많은 까닭에 자연스럽게 그러한 장소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와인딩 구간을 자주 만나기에, 서스펜션에 대한 요구는 까다롭다.

포드는 쿠가에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 다만 이 자동차가 추구하는 효율과 재미의 접점을 정확히 이해할 마니아들은 확실히 잡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국산차라면 몰라도, 비슷한 제원의 수입자동차들과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효율과 재미라는 가치의 균형을 원하는 유저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