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머슬카, 포니카라는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 스포츠카의 장르를 이르는 용어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에 대한 기원과 구분은 다소 모호하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이 두 장르의 기원 및 역사적 배경을 통해 장르명의 의미를 살펴보고, 대표적인 차종도 함께 알아본다.
흔히 머슬카와 포니카로 불리는 미국식 스포츠카의 원류를 알려면 20세기 초중반 미국의 자동차 장르이자 문화인 ‘핫로드(Hot Rod)’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0년대부터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방치된 공군 활주로를 이용한 1마일(약 1.6km) 내외의 단거리 경주가 성행했다. 즉, 드래그 레이스의 시초인 셈이다. 이 드래그 레이스용으로 기존 차량에 보다 큰 배기량의 엔진을 얹어 개조한 차량이 바로 핫로드다. 따라서 핫로드는 요즘 식으로 이해하면 튜닝 분야 중 엔진 스왑(교환) 차량에 해당한다.
초창기 핫로드 제작은 주로 포드의 모델 A, T 등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자동차들의 보닛 공간은 제한적이었고, 여기에 대형 엔진을 장착하다 보니 엔진 덮개도 없는 모습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은 다소 흉측한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차체를 화려한 컬러로 도색하거나 다양한 문양들을 그려 넣었다. 이런 핫로드의 독특한 외양은 이후의 머슬카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당시 핫로드 제작자들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공군 엔지니어 출신이다 보니, 엔진에 대한 이해는 있었지만, 항공기와는 다른 자동차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했다. 또한 무리하게 높은 배기량의 엔진을 얹다 보니, 차량의 수명과 내구성은 치명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 미국의 기존 제조사들은 기술적으로 안정된 핫로드를 선보일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1950년대, 머슬카의 시작을 알린 대표적인 자동차로 올즈모빌의 로켓 88(1957)이나 허드슨 호넷(1950~1957)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로켓 88의 경우, 6리터(6,075cc) V8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는데, 최고 출력 277hp(4,400rpm), 최대 토크 55.3kg∙m(2,800rpm)을 발휘했다. 변속기는 3단이었으며 기어비의 폭이 매우 넓어, 1단 기어에서도 80km/h가 넘는 주행이 가능했다. 이러한 파워트레인으로 0→100km/h까지의 가속은 10.6초, 최고 속력은 180km/h를 기록했다. 약 400미터를 달리는 드래그 레이스에서의 기록은 약 17.7초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장은 5,288㎜, 휠베이스는 3,099㎜에 달했고 전폭은 1940㎜였던 로켓 88은 당시 머슬카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제원성능과 체구를 가진 만큼 연료의 효율성은 최악으로, 고속도로에서의 연비도 5km/L에 채 미치지 못했다. 도심구간에서는 심지어 2km/L 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 대형 트럭과 맞먹는 연비다.
1960년대 초중반이 되면서 성능과 디자인 면을 보다 강화한 새로운 세대의 머슬카들이 등장한다. GM 산하의 폰티악에서는 368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6.4리터(6,373cc) V8엔진을 장착한 GTO, 닷지는 590hp의 최고 출력을 내는 전설적 7.0리터(약 6980cc) V8 헤미(Hemi, 반구형 실린더 헤드를 일컬음) 엔진의 차저를 1년 간격으로 선보였다.
GM 산하의 쉐보레도 미국 머슬카 문화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제조사로 개성 강력한 머슬카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들의 엔진은 ‘빅 블럭’이라 불리며 머슬카의 흐름 안에서도 쉐보레가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통상 빅 블럭은 6.5리터 이상의 V8 엔진을 가리킨다. 쉐빌 SS 396의 경우 6.5리터(약 6,489cc)의 V8 엔진으로, 36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했다. 빅 블럭 엔진의 매력은 웅장하고 박력 있는 배기음으로 꼽힌다.
머슬카는 미국 자동차 산업과 문화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제시했지만 젊은 소비자들이 접근하기에는 가격이 높았다. 이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머슬카보다 작은 차체와 배기량을 가진 스포츠카를 출시한다. 이러한 장르의 자동차가 바로 포니카다. 비록 크기와 배기량은 줄었지만 무게 당 마력비가 우수해 곧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장르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동차가 바로 1964년에 등장한 포드의 머스탱이다. 애초 머스탱은 ‘소형’인 팰콘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므로, 이와 비슷한 4,760㎜의 전장과 2,743㎜의 휠베이스를 갖게 되었다. 머스탱의 장점은 최고 출력 101hp를 발휘하는 2.8리터(2,761cc) 직렬 6기통부터, 335hp를 발휘하는 7.0리터 (6,997cc)의 V8까지 다양한 엔진 라인업이었다. 애초 포드는 머스탱의 판매량을 10만대에 조금 못 미칠 것으로 생각했지만 8개월만에 30만 대 이상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미국 스포츠카의 한 장르가 됐다. 당시 머스탱은 그야말로 미국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특히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전설적 싱어 짐 모리슨(더 도어즈)의 ‘애마’로, 그의 이미지와 동일시되면서 머스탱은 미국 대중문화사에 있어서도 상징적 아이콘이 됐다.
그런데 왜 포니카라는 명칭이 붙었을까? 이는 우선 머스탱의 이름과 관계 있다. 머스탱은 미국 서부와 중부에 걸쳐 분포하는 야생마의 일종으로, 포드의 디자이너 필립 T. 클락의 마음을 사로잡은 동물이기도 하다. 그는 학생시절, 집이 있는 테네시 주 내쉬빌에서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로 가던 중에 이 말들을 보았고 이를 오래 간직해 오다 포드의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머스탱이 한 장르를 차지할 만큼 입지를 굳히자 ‘포니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한 장르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뜨거운 라이벌 관계다. 특히 포드와 GM의 라이벌 관계는 이러한 스포츠카 장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머스탱의 독주를 두고 볼 수 없었던 GM은 야심작인 카마로를 내놓는다. 특히 1966년 기자회견은 당시 자동차 공업의 성지였던 디트로이트의 스타틀러 힐튼 호텔에서 진행되었으며, 동시에 14개 도시 주요 언론사와 직접 전화연결로 진행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카마로’라는 이름이 무슨 뜻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GM의 담당자는 ‘머스탱을 잡아먹고 사는 사악한 동물’이라고 표현한 일화는 GM과 포드의 라이벌 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쉐보레의 포니카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자동차가 콜벳이다. 1953년부터 미국식 럭셔리 스포츠카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콜벳은 모터스포츠에서 경기 종료를 뜻하는 체커기와 쉐보레의 기존 엠블럼을 마치 날개처럼 구현한 독자적인 로고를 갖고 있을만큼, 브랜드 안의 브랜드로 독보적 위치를 점했다. 특히 콜벳은 성능뿐만 아니라 당시 BMW 등 유럽 자동차들이 가진 유려한 디자인 감각으로, 부유한 스피드광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가치관과 취향도 바뀌어갔다. 특히 오일 쇼크 이후에는 큰 배기량의 머슬카 및 포니카의 인기가 급락했다. 판매량을 비롯한 기존 입지에 타격을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포드가 이러한 시대변화에 적응해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에 적절한 변화를 가한 데 반해, GM은 과거의 머슬카와 포니카가 주는 가치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결국 카마로가 2002년 단종되는 아픔도 맛보았다. 물론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범블비’ 캐릭터로 부활을 알렸지만, 그 부활의 키워드 역시 진화보다는 향수의 자극이었다.
무엇보다 포니카나 머슬카 분야에서 두 제조사의 라이벌전이 화제를 모으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고 갈 길도 달라졌다. 포드의 스포츠카는 소재의 경량화와 다운사이징이라는 유럽적인 방법으로, 유럽차들과 경쟁하고 있다. GM은 유럽의 주요 브랜드를 PSA에 넘긴 뒤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미국 스포츠카 문화에 있어 중요한 두 키워드이자 장르인 머슬카와 포니카 구분의 기준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역사적 흐름을 통해 살펴보면 비교적 이를 구분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지점이 발견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지점엔 해당 차종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숨어 있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자동차 장르는 이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흥미로운 이야기를 끝없이 뿜어내는 샘이라 할 수 있다.
글
김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