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사라지다! 국내 제조사의 단명한 자동차들

통상 아무리 인기가 없는 자동차라 해도, 출시 6개월에서 1년에 이르기까지는 판매량이 상승하는 신차 효과를 누린다. 하지만 일부 자동차들은 그 신차효과 마저 누리지 못하고 단종되기도 한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된 비운의 국산 자동차들과, 해당 기종들이 단명했던 까닭에 대해 살펴본다.

최단수명에 이름을 올린 기아자동차의 파크타운

단명한 자동차로는 역시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왜건 장르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크레도스 파크타운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5년에 출시한 기아자동차의 세단인 크레도스는 당시 마쯔다의 크로노스를 베이스로 한 섀시에, 엘란으로 인연을 맺은 로터스의 기술을 적용한 엔진을 장착해 우수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한 디자인 면에서도 당시 통상산업부 주최의 ‘95 우수산업디자인평가에서 중형차 최초로 GD마크를 획득하는 등 전문가와 소비자들 모두를 만족시켰다. 이러한 인기는 1998 2월에 출시된 크레도스2로 이어졌다.


바람처럼 사라지다!
국내 제조사의 단명한 자동차들
초기형 크레도스

이런 인기를 기반으로 기아자동차는 1998 7, 크레도스의 왜건형 차량인 파크타운을 선보였다. 기아자동차는 5인승과 7인승 2가지 종류로 출시해 점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던 레저 인구를 공략한다는 계산이었다. 이를 위해 기아자동차는 파크타운에 자전거나 스키 등을 적재할 수 있는 루프랙은 물론 수납공간을 최대화하기 위한 뒷좌석 폴딩 기능도 적용했다. 엔진은 최고 출력 130hp, 최대 토크 17kgm를 발휘하는 직렬 4기통 1.8리터 자연흡기 방식과 최고 출력 146hp, 최대 토크 19kgm를 발휘하는 직렬 4기통 2.0리터 자연흡기 방식을 적용했다. 물론 판촉에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기아자동차는 에어백을 포함한 45만 원 상당의 옵션패키지를 무료로 제공했으며, 첫 할부금을 6개월 유예해주는 할부 프로그램과 무이자 할부 혜택, 귀성 및 귀경길 시승차량 지원 등 다양한 마케팅을 내세웠다.


바람처럼 사라지다!
국내 제조사의 단명한 자동차들
크레도스2를 기반으로 제작한 파크타운

그러나 중형 왜건이라는 장르에 낯설어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뛰어넘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장의 차량과 닮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파크타운이 점했던 레저용 차량이라는 포지션은 카니발의 출시로 무색해졌다. 특히 LPG 엔진의 카니발은 파크타운 가솔린 엔진의 1년 연료비 ( 1,500km기준)보다 140만원 가량 저렴했고, 세금 역시 연 45만 원정도 쌌다. 어떤 면에서도 메리트가 없어진 결국 파크타운은 1999년에 단종되었다. 그리고 기아자동차를 살린 것은 크레도스 파크타운이 아닌 카니발이었다.

야무지지 못해 단명한 삼성상용차 야무진

삼성은 1994년에 자동차 사업 분야에 진출한 후, 브랜드를 삼성자동차와 삼성상용차의 2개 사업부문을 운영했다. 당시 삼성은 닛산과의 기술협약을 통해 품질의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이 중 삼성상용차는 1998 11월에 닛산의 아틀라스 100을 기반으로 한 SV110을 선보였다. 이 자동차는 당차고 빈틈없는 이미지를 원하던 삼성상용차의 바람에 따라 1999 9월에 야무진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당시 삼성상용차는 자본력과 닛산의 기술력을 앞세워, 현대자동차의 포터와 기아자동차 봉고가 장악하고 있던 1톤 트럭 시장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했다. 야무진은 불과 1년 사이에 10%에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1999년에는 상반기 히트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삼성상용차는 이러한 기세를 이어 2000 1, 적재량 1.2톤 기종을 출시하기도 했다. 삼성상용차는 당시 증가하던 자영업자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85hp의 최고 출력과 18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던 닛산의 직렬 4기통 2.7리터 자연흡기 디젤 엔진의 동력성능과 안정성도 높은 평가를 받은 만큼 자신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야무진은 결정적으로 섀시 강성이 야무지지못했다. 과적이 잦은 국내 물류, 화물운송업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야무진이 채택한 케이블 파킹 브레이크는 구세대 방식으로 많은 화물차 운전자들이 선택을 꺼렸다. 여기에 20006월에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야무진은 불과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단종되었다.

4년 만에 2종 단종, GM대우의 플래그십 잔혹사

GM대우는 대우자동차로 불리던 시절부터 로얄 시리즈와 임페리얼, 브로엄 등을 무기로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후반까지 고급자동차 시장에서 소리 없는 강자로 군림해왔다. 또한 1994년에는 혼다와 기술협약을 맺어 레전드를 국내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1998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고, 이듬해 레전드의 뒤를 이어 체어맨을 출시하기도 했다. 체어맨은 2000년대 초반 고급차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바람처럼 사라지다!
국내 제조사의 단명한 자동차들
체어맨이 출시되기 전까지 대우의 기함이었던 아카디아 (출처: 쉐보레 블로그)

그러나 대우자동차와 쌍용은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김우중 회장은 대우자동차의 유통망에 쌍용차를 결합시키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상 쌍용은 어려운 살림을 더욱 어렵게 하는 화근이었다. 여기에 애초 김우중 회장의 목적이 쌍용을 살리는 데 있기보다는 대우자동차와 쌍용을 결합한 후 이를 GM에 넘기는 데 있었다는 것이 그 당시 사정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자동차가 2002 GM에 인수되자, 플래그십 기종에 공백이 생겼다.

2005GM이 이를 메우기 위해 들여온 기종이 홀덴의 카프리스였고, 이것이 스테이츠맨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해 국내에 데뷔했다. 스테이츠맨은 전장이 5,195, 전폭이 1,845, 전고가 1,44, 휠베이스가 2,940㎜로 리무진 버전을 제외한 국산 세단 중 전장과 휠베이스가 가장 길었다. 넓은 뒷좌석의 레그룸과 1열 시트 뒤편에는 후석 모니터를 장착해 첨단 럭셔리카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최고 출력 210hp, 최대 토크 27kgm를 발휘하는 V6 2.8리터(2,792cc)자연흡기 엔진과, 최고 출력 258hp, 최대 토크 34.7kgm를 뿜어내는 V6 3.6리터(3,564cc)엔진은 여유로운 거동을 구현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쉐보레 카프리스로, 호주에서는 홀덴 카프리스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글로벌 차종으로서의 높은 완성도와 인지도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카프리스에서 좌/우 운전석 위치와 엠블럼만 바꾼 스테이츠맨의 OEM방식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물론 기계적인 완성도는 높일 수 있었으나 카프리스는 애초부터 미국과 호주 시장을 겨냥했기에, 기존의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사양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국내 수입 시 사이드 미러 폴딩 기능을 뺀 것이 대표적이다. 광활한 미국과 호주에서는 필요 없는 기능이었지만 한국처럼 골목이 많고 주차장이 좁은 곳에서는 꼭 필요한 사양이었다. 인테리어에서도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46개의 복잡한 버튼, 중앙 콘솔박스와 조수석 시트의 사이에 위치한 구식의 주차 브레이크 등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원인이 됐다.


바람처럼 사라지다!
국내 제조사의 단명한 자동차들
주차브레이크가 동승석 시트에 위치해있다

스테이츠맨의 포지셔닝도 문제였다. 현대자동차의 에쿠스와 그랜저 사이의 틈새시장을 공략했지만, 가격은 에쿠스와 맞먹었다. 게다가 2005년에 출시한 현대자동차 그랜저 TG의 인기는 결정타였다. 스테이츠맨은 월 평균 100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판매량과 2007 1월에는 단 한대만 판매되는 수모를 겪으며 2007 3월에 단종되었다

이후 GM대우는 2008 9월에 스테이츠맨의 후속인 베리타스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베리타스는 스테이츠맨과 전장은 거의 동일했으나 3,009㎜라는 긴 휠베이스로 압도적인 실내공간을 구현해 이를 경쟁력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베리타스는 2010 10월에 단종될 때까지 불과 2,561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제네시스의 2주치 사전계약 대수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세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쿠페

2010년 부산모터쇼에서 등장하며 주목 받은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MD(4세대)는 당시 패밀리 룩이었던 헥사고날 라디에이터 그릴과 쿠페를 연상케 하는 유연한 루프 라인, 퍼포먼스가 강조된 파워트레인 등으로 무장해 눈길을 끌었다. 기대대로 아반떼 MD 2012년까지 매년 1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러한 아반떼의 라인업을 확장하고자 했다. 프로젝트명 JK라는 쿠페 장르 차량의 추가가 그것이었다. 결국 JK2013 4월에 아반떼 쿠페라는 명칭으로 탄생했다.

아반떼 쿠페는 외관 면에서도 스포티한 감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앙부에 블랙 하이그로시 스타일로 처리한 헥사고날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하고, 전용 17인치 휠과 트윈 머플러 팁을 장착했다. 그리고 쿠페의 유려한 라인을 뽐내기 위해 전장을 10㎜가량 늘리기까지 했다. 이에 더해 아반떼 쿠페는 i40에 탑재하던 것과 같은 최고 출력 175hp, 최대 토크 21.3kgm의 직렬 4기통 2.0리터 직분사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해, 세단과는 다른 퍼포먼스와 상징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바람처럼 사라지다!
국내 제조사의 단명한 자동차들
아반떼 MD 세단이 아니다. 쿠페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반떼 쿠페의 외관은 세단과 차별화에 실패했다. 재질을 달리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휠, 머플러 팁만으로는 세단과 차별화된 인상을 주기에 부족했다. 물론 2도어라는 확실한 차별점이 존재했으나, 쿠페의 상징 같은 프레임리스 도어가 아니었다. 게다가 퍼포먼스 강화를 의도한 직렬 4기통 2.0리터 직분사 자연흡기 엔진은, 유저 입장에서 세금 문제와 기존 아반떼 대비 나쁜 연비가 매력적이지 못했다. 물론 최고 출력이 25hp, 최대 토크가 4.4kgm 증가했지만 이것만으로는 퍼포먼스의 강화를 보장할 수 없었다. 결국 이 자동차는 300만 원 더 비싼 아반떼일 뿐이었다.


바람처럼 사라지다!
국내 제조사의 단명한 자동차들
아반떼 MD 세단과 큰 차이점이 없는 실내

아반떼 쿠페는 출시 당시인 4월에는 35, 5월에는 95, 6월에는 48대가 판매되었으며, 그나마도 2014 9월과 11월에는 단 한대도 팔리지 않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후 아반떼 쿠페는 연간 5,000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영원한 꿈으로 남긴 채 출시 2년만인 2015 4월에 단종되었다.
 
 
자동차의 개발에는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 성공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실패는 쉽다. 차량의 상품성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니즈와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면 기업의 차원에서는 단종시키는 것이 순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렇게 단명한 자동차들은 자동차 제조사에겐 흑역사이지만, 쓰디쓴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