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한 자동차는 국내 제조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의 차량 중에도 야심찬 계획과 막대한 개발비가 무색하게, 출시 후 얼마 못 가 단종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단명한 해외 자동차 제조사들의 차량과 다양한 실패의 원인에 대해 분석해본다.
1969년에 첫 출시한 닛산의 GT-R 시리즈는 2017년 현재 6세대를 생산하고 있으며, 오는 2018년에는 7세대가 공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세대와 3세대 사이, 그리고 5세대와 6세대 사이에는 십 수년의 공백이 있었으며, 그 중 2세대는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단종되었기 때문이다.
닛산의 고성능 스포츠카인 GT-R에는 ‘불패의 GT-R’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이는 1969년에 탄생한 초대 GT-R인 스카이라인 2000GT-R의 모터스포츠 업적 덕분이다. 당시 스카이라인 2000GT-R은 이후 닛산에 합병되는 프린스 사의 R380의 엔진을 장착했다. 이 엔진은 1966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포르쉐 906을 제친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를 기반으로 스카이라인 2000GT-R은 JAF GP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에서 통산 58승, 49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결과물은 2세대 GT-R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2세대 GT-R은 1972년 도쿄모터쇼에서 공개된 후, 1973년에 공식 출시됐다. 닛산은 유저들의 기대치에 부응하기 닛산 GT-R에 다양한 시도를 적용했다. 세단과 쿠페로 나뉘던 1세대와 달리, 2세대는 루프가 트렁크의 끝부분까지 완만하게 떨어지는 형태인 패스트백 쿠페 디자인을 적용했다. 또한, GT-R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한 원형 리어 램프와 트렁크 끝부분의 리어 스포일러도 이 때 등장했다. 엔진은 158hp(7,000rpm)의 최고 출력과 18kg·m(5,6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던 1세대의 직렬 6기통 2.0리터(1,989cc)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디스크 브레이크를 사용해 우수한 제동 성능을 제공했다. 이외에도 CF에 켄(지미 지나이, 러시아계 일본인)과 메리(다이앤 크레이, 미국의 여배우)라는 10대 배우 2명을 등장시켜 ‘켄메리’라는 별명을 얻는 등 2세대 GT-R은 공개와 동시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불패의 GT-R에게 뜻밖의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의 일본은 스모그 경보가 발령될 정도로 환경오염이 심각했다. 이에 1973년, 일본 정부가 엄격해진 배기가스 규제 정책을 발표했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많은 자동차들이 생산을 중단해야만 했다. 고성능 자동차였던 2세대 GT-R역시 규제 대상이었다. 2세대 GT-R이 생산을 시작한지 불과 4개월만의 일이었다. 이에 더해 1973년 10월에는 제 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까지 찾아왔다. 이 상황에서는 2세대 GT-R이 배기가스 규제를 충족시킨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고성능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2세대 GT-R은 단 197대만 생산된 채 단종을 맞이해야 했다.
예전부터 메르세데스 벤츠는 F1과 DTM(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즈), GT 챔피언십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에 도전해왔으며, 대부분의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에 더해 2019년에는 전기차 포뮬러카 레이스인 포뮬러 E 출전도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모터스포츠의 강자인 메르세데스 벤츠에게도 버거운 분야가 있었다. 바로 르망 24시 내구레이스가 그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유독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라 사르트 서킷과 악연이었다. 1955년에는 300SLR 차량이 다른 차량과 충돌한 뒤 관중석으로 날아가 폭발하는 바람에 8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마저 발생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메르세데스 벤츠는 곧바로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은퇴했다. 오랜 자숙 기간을 갖던 메르세데스 벤츠가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복귀한 것은 1985년의 일이었다.
1998년에는 FIA GT1을 정복한 CLK GTR을 르망 규정에 맞게 손본 CLK LM을 투입했다. 그러나 CLK LM은 CLK GTR과 같은 기록을 내지 못했고, 이에 메르세데스 벤츠는 1999년 CLK LM의 후속인 CLR GT1을 선보였다. CLR GT1의 외관은 CLK GTR과 유사했으나, 100kg가량 경량화에 성공했고, 에어로다이내믹에 의한 다운포스를 증가시키는 등 여러 부분들을 개선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CLR GT1을 1999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 즉각 투입했다.
하지만 악몽이 재현되려는 듯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마크 웨버가 운전하던 CLR GT1이 예선전 중 돌연 하늘로 솟구친 것이다. 그럼에도 메르세데스 벤츠는 기권하지 않고, 에어로다이내믹 설계를 급히 수정했으며, 드라이버에게 상대 차량에 너무 근접하지 말 것을 지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피터 덤브렉이 운전하던 CLR GT1역시 고속주행 중 15m 높이로 솟구쳤고, 펜스 바깥으로 날아가버렸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메르세데스 벤츠는 나머지 CLR GT1을 철수시켰고, 남은 경기의 출전을 포기했다. CLR의 기록은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에조차 남겨두지 않고 있다. 물론, 1989년 자우버 C9으로 우승을 거두긴 했지만 CLR의 악몽을 지우긴 역부족이었고, 결국 메르세데스 벤츠는 르망에서 철수했다.
쉐보레는 2000년 북미오토쇼에서 SSR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슈퍼 스포츠 로드스터라는 명칭의 약어인 SSR은 쉐보레의 도전정신이 엿보이는 자동차였다. 전체적 디자인은 1950년대에 출시한 어드밴스드 디자인 시리즈라는 트럭의 외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 프론트 펜더가 전면그릴 좌우까지 연장된 형태였고 원형 헤드램프가 이 위에 장착된 특이한 형상이었다. 또한 보닛은 높게 솟아 미국 핫로드의 향수를 느끼게 했다. 라디에이터 그릴에도 복고풍의 긴 크롬 바를 적용했다.
무엇보다 SSR이 눈길을 끈 부분은 딱히 한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묘한 개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쉐보레가 이 콘셉트카를 선보인 의도는 스포츠카의 성능과 로드스터의 오픈 에어링을 픽업트럭 운전자에게도 제공한다 것이었다. 따라서 SSR에는 쿠페나 로드스터처럼 2개의 시트만 장착했고, 하드톱 방식으로 루프를 개폐할 수 있었으며, 톱을 연 상태로도 트렁크에 짐을 실을 수 있었다. 당시 자동차 관련 매체와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에 쉐보레는 2003년 12월 31일, SSR을 정식으로 출시하고 판매에 돌입했다.
성능도 준수했다. 초창기 SSR은 300hp의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 V8 5.3리터 엔진을 탑재했으며, 2005년식에는 최고 출력 390hp의 V8 6.0리터 엔진을 장착하기도 했다. 특히 6.0리터 엔진은 콜벳에도 장착된 것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SSR은 6단 수동변속기 적용 시 0→60mph(96km/h)까지 불과 5.5초만에 도달했으며, 100mph(161km/h)까지는 14.1초를 기록했다. 또한, 미국의 대표적인 모터스포츠인 인디 500에서 페이스카로 활약하는 등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SSR의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다. 공식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2004년, SSR은 고작 9000대가 판매되었다. 같은 기간, 포드 F시리즈가 93만 9,500대를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심지어 스포츠카인 머스탱 판매량의 7%수준에 불과했다. 실패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었다. 우선 SSR이 구현하고자 했던 스포츠카, 컨버터블, 픽업트럭 세 가지의 가치 중 어느 한 가지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160kg에 달하는 SSR의 중량으로 인해 스포티한 드라이빙과 거리가 멀었으며, 톱을 개방했을 때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많이 유입되었고, 픽업트럭으로 사용하기에는 적재공간이 협소했다. 가격 또한 문제였다. SSR의 기본가격은 약 4만 1,000달러, 일부 사양 추가 시 4만 4,000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2004년식 F-150의 최고 등급보다도 1만 1,000달러나 비쌌다. 이와 같은 이유로 SSR의 판매부진은 계속되었고, 결국 2006년까지 2만 4,000대가 판매되는 데 그치며 단종을 맞이했다.
1988년 애스턴마틴은 영국 버밍엄 모터쇼에서 V8(자동차 명칭)의 후속인 비라지(Virage)를 공개했다. 비라지는 애스턴마틴 특유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난 전면 디자인과 강력한 V8 5.3리터 엔진 덕분에 대형 그랜드 투어러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판매량이 많지는 않았으나, 애스턴마틴은 르망 레이스카에 사용한 V8 6.3리터 엔진을 도입하고, 왜건형인 슈팅브레이크까지 라인업을 확장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1988년에 출시했던 비라지가 단종된 후, 애스턴마틴 라인업에서 비라지가 다시 등장한 것은 2011년의 일이다. 애스턴마틴은 2세대 비라지 역시 1세대처럼 라인업간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고자 했다. 비라지가 비집고 들어가야 할 틈은 DB9과 DBS의 사이였다. 이에 애스턴마틴은 비라지의 헤드라이트를 보다 길고 날카롭게 디자인했으며, LED타입의 DRL을 추가했다. 또한, 프론트 범퍼에는 굴곡을 통해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리어 램프는 DBS처럼 클리어 타입(헤드라이트처럼 투명한 리어 램프)을 적용했다.
애스턴마틴은 비라지의 정체성을 디자인 면에서만 아니라 동력 성능 면에서도 DB9, DBS 사이에 안착시키고자 했다. V12 5.9리터(5,935cc)엔진의 최고 출력인 490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