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엔진의 세로배치와 가로배치 개념은 크랭크샤프트의 방향으로 구분된다. 크랭크샤프트가 차축과 평행한 방향 즉 자동차의 진행 방향이라면 세로배치, 이에 직각으로 구현되면 가로배치인 것이다. 현재 세로배치 엔진과 가로배치 엔진은 각각 후륜 구동과 전륜 구동 방식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적 흐름에 벗어나는 세로배치 전륜 구동 차량도 개발 및 생산되기도 했다. 이런 레이아웃은 왜 탄생했으며 어떤 차종에 적용되었을까?
전륜 구동의 넓은 실내를 있게 한
가로배치 레이아웃
1934년부터 1957년까지 생산된 시트로엥의 트락숑 아방은 그 이름부터 ‘전륜 구동’이라는 뜻을 가지고 태어났다.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는 후륜 구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트락숑 아방은 혁신이었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데카베(DKW: 아우디의 전신 중 하나)에서 만든 F1이 있었던 만큼 최초는 아니었지만, 양산차로서의 전륜 구동 레이아웃을 대중화시킨 것은 트락숑 아방이었다.
이후 전륜 구동 자동차는 차츰차츰 영역을 넓혔으며, 20세기 중후반에는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전륜 구동 레이아웃은 후륜 구동에 비해 조향 성능의 명확성이 다소 부족하고, 전륜 쪽의 무게가 무거워 고출력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월등히 넓은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적인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다.
전륜 구동 레이아웃에서 엔진의 배치를 가로방향으로 구현하는 것은 동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트랜스미션과의 연결 구조를 최대한 간단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직렬 3기통 이상의 엔진은 크랭크축 방향의 길이가 더 길 수밖에 없으므로, 엔진을 가로로 배치하면 1열의 레그룸은 자연스럽게 넓어졌다. 초기 트락숑 아방의 경우 전륜 구동축보다 엔진이 뒤쪽에 있었으므로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는 어려웠으나, 자동차들이 진화하면서 가로 배치 전륜 구동 차량의 1열 공간은 더욱 넓어졌다.
다이내믹한 전륜 구동차에 대한 갈망,
세로배치
세로 배치 전륜 구동 레이아웃의 개념은 2차대전 직후 프랑스의 제조사인 파나르의 자동차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레이아웃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다. 당시 동력성능이 강한 대배기량 엔진을 전륜 구동 레이아웃과 결합하면서도, 전륜 구동의 단점인 조향 성능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 1966년, 미국 올즈모빌의 토로나도는 최고 출력 385hp를 발휘하는 6,964cc의 V8 엔진을 세로로 배치했다. 이른바 전륜 구동 머슬카였던 셈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후 1990년대에도 크라이슬러 LHS 1세대(1994), 2세대(1999), 1997년 출시된 닷지 인트레피드 등 1990년대에서 세로배치 전륜 구동 방식의 차량이 다수 등장했다.
알파로메오는 보다 콤팩트한 차량에 세로배치 전륜 구동 레이아웃을 적용했다. 1970년대에 개발된 알파수드의라인업 중 패스트백 모델인 알파수드 스프린트 벨로체는 전장이 3,900㎜, 휠베이스가 2,450㎜ 남짓한 콤팩트한 자동차였다. 여기에 최고 출력 78hp의 1.3리터(1,350cc) 엔진, 최고 출력 84hp의 1.5리터(1,490cc) 엔진을 세로배치로 장착했다. 그런데 이 엔진은 수평대향이었다. 즉 알파수드는 전륜 구동이면서도 무게중심을 낮춘 세로배치 레이아웃을 통해 최대한의 조향 성능을 발휘하고자 했던 것이다.
세로배치 전륜 구동의 강자,
혼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부터 약 10년간 이어진 일본 최대의 경제 호황기는 자동차 역사에 있어서도 수많은 실험적인 일제 자동차가 나온 시기였다. 길거리 레이서들의 열정을 다룬 다수의 자동차 관련 만화도 주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혼다는 이 분야에 있어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했다.
우선 레전드를 빼놓을 수 없다. 레전드는 당시 트랙션 콘트롤 시스템, 현재의 ABS라 할 수 있는 ALB(Anti Lock Brake), SRS 에어백 등 다양한 안전 기능을 갖추었던 최고 세단으로, 일본 중년층의 로망이었다. 이 자동차는 뱅크각 90º의 최고 출력 213hp(215ps)의 V6의 엔진을 세로 배치로 장착했다. 트랜스미션은 전자제어식 4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흥미롭게도 가속 시 기어를 하향 변속할 수 있도록 하는 킥다운 스위치가 별도로 장착되어 있는데, 이는 세로배치 전륜 구동이라는 레이아웃에서도 기계적인 충격이나 마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라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자동차는 한국의 대우자동차가 라이선스를 획득해 아카디아라는 차종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1994년 2월에 출시된 이 자동차는 비록 시장 성적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명차로 각인되어 있다. 참고로 당시 김우중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씨가 갓 데뷔해 청춘스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이병헌을 특별히 아껴 이 자동차를 선물했다는 설이 퍼지기도 했다. 후에 이병헌 본인은 사실무근이라 일축했으나, 그만큼 이 자동차가 고급 차종으로 알려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인 1989년에 출시된 혼다 인스파이어 역시 세로배치 전륜 구동의 대표적인 사례다. 원래 어코드의 한 트림으로 등장한 인스파이어는 최고 출력 163hp의 2.5리터 직렬 5기통 엔진을 세로로 배치했다. 여기에 역시 전자제어로 작동하는 4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되어 파워트레인을 형성했다. 레전드와 마찬가지로 기존 자동변속기 대비 명확한 변속 성능을 가진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좌우 무게 중심 배분이 우수해 선회 성능도 뛰어났다. 역시 당시 일본 남성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자동차다.
세로배치 전륜구동이 사라진 이유
사실 세로배치, 전륜구동의 경우, 조향을 담당하는 드라이브 샤프트와 트랜스미션이 직각을 이루기 때문에, 트랜스미션 내부의 디퍼런셜에서 출력을 90도로 바꿔줘야 하는 추가적인 구조가 필요했다. 이는 곧 제조 단가 상승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져왔고, 이렇게 약 30년 전 등장하며 주목 받았던 세로배치 전륜 구동의 구조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마 비교적 최근까지 남아 있었던 세로 배치 전륜 구동 레이아웃은 폭스바겐 그룹의 일부 차종이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생산된 스코다의 슈퍼브의 1세대인 B5는 최고 출력 160hp의 1.8리터 가솔린 터보, 190hp의 2.8리터 V6, 그리고 1.9, 2.0, 2.5리터 디젤 엔진 등 다양한 엔진을 세로배치로 장착했다. 변속기는 5단 수동과 5, 6단 자동으로 다양했다. 이 레이아웃은 플랫폼을 공유한 폭스바겐의 중국형 파사트에도 적용된 바 있다. 그나마 이마저도 이후 등장한 2세대에서는 가로 배치로 바뀌었다.
소재의 경량화와 섀시 설계의 정교화로 인해, 전륜 구동 차량은 더 이상 세로 배치라는 어려운 레이아웃을 사용하지 않고도 우수한 조향 성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과급에 의한 배기량 다운사이징과 출력 강화가 가능해지면서 굳이 엔진이 무거워져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전륜 구동 차량에 엔진을 굳이 세로로 배치해야 할 이유를 한 번 더 없애는 것이었다.
모든 발명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는 필요가 없어지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의 자동차 역시 그 필요성이 적어져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차량이 되었다. 하지만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면서까지 찾으려 했던 운전의 재미는 이후 전륜 구동 차종을 개발하는 데 있어 엔지니어들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무리하고 쓸모없는 시도라 하더라도, 그 후대의 사람들은 이 시도의 혜택을 입고 있다. 하물며 분명 각광받았던 세로배치 전륜 구동의 경우야 더 말할 것이 없다.
글
양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