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다시 반추하고, 그 시절을 달콤하게 감상하는 레트로 경향은 21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다. 마케팅의 측면에서 이런 흐름은 자동차 제조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레트로와 아날로그의 가치를 자사의 마케팅에 유효 적절하게 활용 중인 자동차 제조사의 사례들을 살펴본다.
LP 열풍에 올라탄 시트로엥, ‘범피 바이닐’
영국 유력 일간지 ‘더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2016년의 전세계 바이닐 음반(LP) 판매량은 32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는 1991년, 영국 출신의 세계적 소울 그룹 심플리 레드의 <스타(Star)>앨범의 발매 시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또한 전년도 판매량 대비 53% 성장한 양이기도 하다.
시트로엥은 이런 열풍을 C4 칵투스 페이스리프트의 마케팅에 접목했다. 시트로엥은, 턴테이블에서 재생될 때 어떻게 해도 약간의 꿀렁거림(웨이브)이 발행할 수밖에 없는 LP와 니들의 관계에 주목했다. C4 칵투스의 TV광고 ‘범피 바이닐(Bumpy Vynile)’은 이 개념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쇼팽의 녹턴으로 시작한 광고는, 잠시 노이즈와 함께 다양한 노면 충격 상황을 보여 준다. 그러나 C4 칵투스의 프로그레시브 하이드로릭 쿠션(PHC) 서스펜션은 블록으로 된 도로, 과속방지턱, 포트홀 등 그 어떤 충격도 부드럽게 걸러낸다. 그리고 LP위를 달리는 듯한 모습으로 구현된 소형 C4칵투스의 모습을 클로즈업한다. 차체 아래의 턴테이블 니들은, LP면의 꿀렁거림에도 일정한 깊이와 강도로 LP의 홈에 접촉하며, 녹턴의 차분한 선율을 다시 들려준다.
시트로엥 C4 칵투스는 SUV 붐이 본격화하던 2014년에 등장한 자동차로, 같은 PSA 그룹 내 푸조 208, DS3 등 소형차들과 플랫폼을 공유한다. 전장은 4,170㎜, 휠베이스는 2,600㎜이며 1.2리터 가솔린 엔진인 퓨어텍과, 1.6리터 디젤 엔진인 블루 HDi 두 종류의 엔진이 있다. 파워트레인은 이 두 엔진의 출력 사양과 변속기를 다양화해 선택의 폭을 넓혀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참고로 ‘에어범프’라는 차체보호 패드로 유명한 C4 칵투스의 전기형은 국내에도 출시되었으며 높은 연비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었다.
독일 올드 힙합에 ‘꽂힌’ 포르쉐,
‘백 투 테이프’
힙합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믹스테이프’라는 용어가 익숙할 것이다. 원래 비상업적 전달매체로, 제작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뮤지션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둔 믹스테이프의 기원은 1960년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힙합 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0년대 미국에서의 일이다. 그 이후 CD와 MP3 등의 매체 변화에 밀려 퇴조했으나, 2000년대 후반 대중음악 전반의 레트로 붐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다.
독일과 힙합은 언뜻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들의 대중음악 하면 람슈타인 같은 헤비메탈이나 크라프트베르크 등의 전자음악을 흔히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독일에도 오래 된 힙합 씬이 있고 이를 다뤄 온 전문지도 있다. 포르쉐는 독일의 가장 오래 된 힙합 음악전문지 <백스핀>의 편집장 겸 발행인인 니코 휠스(니코 ‘백스핀’)과 함께 1990년대 독일 힙합 씬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는 콘텐츠 ‘백 투 테이프’를 기획해 진행하였다. 5일간, 6개 도시 2,300km의 여정 중 독일 힙합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아티스트 10인을 만나는 일정이었다.
뮌헨에서는 프리스타일 래퍼 데이빗 P를 만난다. 그는 1993년 데뷔 후 ‘메인 콘셉트’라는 그룹을 이끌며 유럽 힙합 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의사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하이델베르그에서는 올드스쿨 힙합의 상징적 인물 토니 L을 만났다. 이어 포르쉐의 고향이기도 한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독일 힙합씬의 사운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프로듀서 두안 바시가 등장한다. 현재까지 콘텐츠화하여 업로드된 일정 중 가장 마지막은 4번째 도시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이다. 이곳에서 니코 휠스는 미국계 프로듀서인 모세 펠럼, 그리고 모로코계의 젊은 여성 래퍼인 나미카와 만난다. 먼저 모세 펠럼의 부친은 소울 싱어인 모에 펠럼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유럽의 오디션 프로그램 ‘X 팩터’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나미카는 이러한 여정은 각 아티스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나미카는 독일 힙합의 전통이 현재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2013년 데뷔 후, 2015년의 발표곡인 “Lieblingsmensch(Favorite Person)”가 1위를 독일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주목받는 스타로 떠올랐다.
이러한 콘텐츠를 통해 홍보되고 있는 자동차는 최고 출력 550hp, 최대 토크 78.5kg∙m의 4.0리터(3,996cc)엔진을 품은 파나메라 터보다. 니코 휠스는, 스포츠카와 세단의 장점을 두루 갖춘 파나메라가 2,300km여정에 최적이라고 전한다. 그는 각 도시에서 만난 그의 동료 아티스트들을 파나메라에 태우고, 각 도시와 독일 힙합씬의 관계를 설명하는 주요 장소를 둘러본다. 포르쉐와 백스핀의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특정 차종을 위한 레트로마케팅이 아니라, 올히 70주년을 맞이하는 브랜드의 역사를 중요한 문화적 현상의 역사와 엮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아날로그 시계로 부활한
올드 머스탱의 영혼
포드의 6세대 페이스리프트 머스탱은 스포츠 쿠페에 대한 글로벌한 감각을 수용한 자동차로 평가받는다. 10단 자동변속기와 첨단화한 서스펜션 시스템 등을 장착한 머스탱은, 미국 스포츠카에 대한 선입견을 개선하는 데 기여 중이다. 이 자동차는 국내에도 출시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올드 머스탱에 대한 지지도는 여전하다. 일부 유저들은 머스탱의 전향적인 자세에 대해 비판적이기까지 하다. 이에 머스탱을 사랑하는 덴마크의 시계 제조사 REC가 나섰다. 이미 이들은 포르쉐의 901의 폐부품을 활용한 시계를 선보인 이력이 있다. 그러나 REC는 아무 머스탱이나 선택하지는 않았다. 기증자로부터 받은 자동차에 한하되 해당 차종의 등록 번호와, 이전 소유자에 대한 정보까지 세심하게 스터디했다. 실제 시계에는 해당 차종의 고유 등록번호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REC 측은 낡은 머스탱을 되살려 제작한 시계 모두가 유일무이하며, 모두 머스탱의 영혼이라고 전한다. 포드 측은 공식 채널을 통해 이러한 시계 제작 과정을 동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공개했다.
포드 측은 올드 머스탱의 가치가 결코 낡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기존 5.0리터 V8 5.0리터의 동력성능을 보다 강하게 튜닝했다. 불릿 머스탱의 최고 출력은 475hp, 최고 속력은 262km/h에 달한다.
대중문화에서는 아날로그나 레트로 열풍을 두고, 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가 나올 수 없는 데 대한 자기만족이라 하여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마케팅에 있어서는 과거에 지향했던 기술적, 미적 가치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거나, 혹은 발전적으로 계승될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읽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마케팅 수단의 하나로 소비되느냐,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한 시대의 대표적 캠페인으로 자리잡느냐 하는 것은 역시 자동차의 가치, 그 자체에 달려 있을 것이다.
글
한명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