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방탄차가 있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조피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 총격을 받아 사망한다.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암살’로부터 VIP를 보호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사라예보 사건’이후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방탄차에 대해 살펴보자.
방탄차를 만드는 이유는?
방탄차는 중화기나 지뢰와 같은 공격용 무기 등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는 차량을 말하며, 장갑차나 탱크와 같은 전투차량을 제외한 ‘탈 것’중 최고의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방탄차를 제조하는 초기의 목적은 국가 원수를 보호하는데 있었으며, 대표적으로 나치 독일의 히틀러, 일본왕 히로히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타던 방탄 의전차량이 시초이다. 현재는 국가원수 이외에도 유명인사와 일반인들도 신변보호를 위해 방탄 차량을 구입하고 있다.
물론 일반인들도 주문 제작이나 방탄 필름과 같은 튜닝을 거쳐 방탄 기능이 있는 차량을 소유할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의 치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방탄차 시장은 매우 작다. 하지만 치안이 불안정한 중남미의 경우 연간 1만대의 수요가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자동차 제조사가 방탄차량을 제작하는 목적은 판매 외에도 해당 제조사의 기술력 홍보가 있다. 방탄차량은 소총은 물론, 수류탄, 폭탄, 기관총과 같은 중화기에도 견딜 수 있는 만큼, 첨단 기술력이 요구되며 이는 곧 제조사의 기술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원수들이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의 방탄 의전차를 선택해, 벤츠의 첨단 기술력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자국 브랜드인 캐딜락의 ‘캐딜락 원’을 통해 미국의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캐딜락 원’은 캐딜락 프레지덴셜과 같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세단으로 ‘달리는 백악관’, ‘야수’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방탄차의 시초, 히틀러의 벤츠 770K와 루즈벨트의 링컨 컨버터블
방탄을 목적으로 만든 최초의 ‘탈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시 방탄 기능을 갖고 있던 장갑차였다. 1916년, 영국에서 개발된 Mk.1은 무장과 장갑을 갖춘 최초의 근대적 차량이었다. 하지만 군수용이 아닌 민수용으로 완전 방탄기능을 탑재한 차량이 제작된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28년 메르세데스벤츠가 출시한 뉘른부르크 460(W08)이었다.
벤츠 770K는 1930년부터 1943년까지 만들어진 벤츠의 기함이었다. 벤츠 770K는 전장 6m, 전폭 2m의 그로서 오프너 투어링 왜건(컨버터블 형 왜건)으로 7.7리터급의 8기통 엔진에 슈퍼차저를 장착해 최고출력 230마력을 발휘했고 4륜 독립 서스펜션으로 충격을 흡수해 승차감이 우수했다. 1933년, 벤츠는 이 차를 바탕으로 방탄차량을 제작했는데, 그 첫 번째 고객은 히로히토 일본왕이었다. 당연히 나치독일을 이끌던 히틀러 역시 해당 차량을 자신의 의전용 차량으로 선택했다. 그를 위해 1939년에 제작된 벤츠 770K 방탄 모델의 유리부분은 4cm의 두께로 제작했고, 하부 역시 견고하게 제작해 지뢰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었다.
훗날 이 차량은 나치 친위대(SS, Schutzstaffel)장교인 에리히 켐프카가 소장하다가 연합군에 의해 노획됐으며, 이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2009년 경매에서는 90억원에 낙찰된 바 있으며 2017년 경매에서는 150억원 가량으로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히틀러에게 벤츠 770K가 인도된 다음 해,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역시 링컨으로부터 의전용 방탄차량을 인도받았다. 루즈벨트는 1939년 12월, 벽돌공으로부터 저격을 받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방탄차량의 중요성을 의식, 링컨 방탄 컨버터블을 의전차로 선택했다.
루즈벨트의 방탄 차량은 1939년형 링컨 콘티넨털 컨버터블을 베이스로 24mm 두께의 방탄 유리와 방탄 타이어 등으로 개조한 차량이었다. 또한 경기관총도 구비되어 어느 정도의 공격 기능도 발휘했다.
방탄차를 만드는 소재, 방탄 등급과 보호력
방탄차는 보호력에 따라 세부 등급이 나뉘며 가격 또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방탄차의 등급은 크게 북미의 NJI(National Institute of Justice)와 유럽의 CEN(Comité Européen de Normalisation) 기준으로 나뉘는데, NJI의 경우 레벨 1부터 4까지 있으며, 숫자가 커질수록 방어능력이 강화된다. 유럽 CEN 기준은 미국의 NJI에 비해 더욱 세부적으로 나뉜다. 크게는 B1부터 B7등급으로 나뉘는데 그 안에서도 필러, 트렁크와 같은 불투명한 방어물은 FB1에서 FB7까지, 유리와 같은 투명한 방어물은 VR1부터 VR7까지 나뉜다. BMW 시큐리티 B4 레벨 방탄차량의 경우 기본 차량 가격보다 약 4만 달러가 더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방탄차를 만드는 소재는 크게 차체와 유리로 나눌 수 있다. 차체의 경우 세라믹과 케블라, 카본 파이버와 같은 합성 소재를 사용하는데, 앞서 언급한 등급에 따라 강판의 두께와 강도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방탄차의 강판은 보통 20~25겹으로 만들어지며, 한 장당 최소 4mm 이상인데 이는 일반적인 일반 차의 0.4mm 강판보다 훨씬 두꺼운 수준이다. 또한 총알에 대한 방호능력 이외에도 화학 가스에 의한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외부와 내부를 사이의 틈새를 모두 밀봉한다.
방탄 유리의 경우에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가 주로 사용되는데, 일반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여지도록 하는 라미네이션 공정을 거쳐 일반 유리에 접착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일반 유리에 비해 더 두껍고 방어능력이 뛰어나지만, 차체에 비해 지속적인 공격을 막는 능력은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5m 거리에서 사격할 시 3발에서 5발의 총알을 막을 수 있다.
타이어의 경우에는 일반차량에 적용되기도 하는 런 플랫 타이어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사용한다. 런 플랫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보다 사이드 월을 더욱 두껍고 단단하게 만드는데, 타이어에 펑크가 나도 사이드 월이 단단해 차량의 하중을 버텨내기 때문이다. 방탄차량의 경우 타이어 자체의 강도도 우수하지만, 타이어가 파손된 이후의 상황에도 대비되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방탄차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캐딜락 원’은 방탄은 물론 수류탄 공격과 화학공격에도 견딜 수 있다. ‘야수(The Beast)’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고강도 철판과 알루미늄, 티타늄, 세라믹이 적용된 이중구조의 차체로 로켓 공격도 막아내며 도어는 20cm 의 두께로 제작됐다. 하부는 두께 13cm의 철판으로 보호되었으며 케블라 섬유로 만들어진 런플랫 타이어는 찢어지거나 펑크가 나지 않으며, 타이어가 파손되더라도 타이어 안에 있는 드럼으로 주행이 가능하다.
‘캐딜락 원’은 야간투시 카메라가 적용된 샷건과 최루탄 발사기 등을 내장해, 일정 수준의 공격 능력 역시 갖추고 있으며, 트럼프를 위한 응급 혈액과 의료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또한 ‘캐딜락 원’의 운전은 특수 훈련을 받은 베테랑 정보요원에게만 맡겨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는 벤츠의 방탄 차량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용 중인 벤츠 ‘S600 풀만가드’는 도어의 두께만 40cm가 넘으며, 도어 하나의 무게만 100kg이 넘는다. 또한 M60 기관총, 수류탄, 로켓포를 막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량 밑에서 15kg의 TNT 폭탄이 터져도 막아낼 수 있으며 타이어가 터져도 88~100km/h의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화학무기에 대한 방호능력도 갖추고 있으며, 차량 내에 자체 산소공급장치도 갖추고 있다.
벤츠 ‘S600 풀만가드’의 전장은 벤츠 S600보다 1,150mm가 더 큰 6,356mm 이며 특수합금과 강화유리를 사용해 무게가 3.8톤에 달한다. 동력 성능은 5,513cc의 배기량에 최고출력 517마력, V12 바이터보 엔진을 사용해 시속 100km 도달까지 4.5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국 방탄차의 시초와 현재
한국 최초의 방탄차량은 이승만 대통령의 경호를 위한 의전차량이었다. 해당 차량은 ‘캐딜락 프리트우드 62 세단’이었으며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기증한 것이었다. 이후 윤보선 전대통령도 같은 차종을 사용했으며,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396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캐딜락의 플리트우드 방탄 리무진(캐딜락 플리트우드 75)을 사용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벤츠 S600 리무진을, 노무현 전 대통령은 BMW 760Li 하이 시큐리티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벤츠 S600 풀만가드와 BMW 760Li 시큐리티를 사용했다.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한 방탄 차량은 박근혜의 취임식 때 처음 등장했다. 현대차는 에쿠스 리무진의 휠베이스를 1,000mm 늘리고 VR7 등급의 방탄차량을 제작해 박근혜에게 제공했다. 이 차량은 AK47 소총의 공격을 단시간 막아낼 수 있으며 15kg 정도의 고성능 폭약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가 탔던 에쿠스 스트레치드 에디션과 벤츠 마이바흐 S600 가드를 사용 중이다.(2017년10월 제네시스 EQ-900을 개조한 차량으로 재선정)
한국은 조선시대 초기,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고 조선 말, 세계 최초로 방탄조끼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K-2 차기전차(흑표)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방호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군사용 무기보다 더욱 쉽게 그 나라의 기술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방탄차 기술이다. 문재인 대통력 역시 현대차 에쿠스 스트레치드 리무진 방탄차량을 이용 중이나 이는 2009년에 개발된 기종이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방어기술을 보여준 만큼, 방탄차량에 대한 기술 개발을 꾸준히 해 ‘자력 방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해외 시장 개척에도 힘쓰는 것은 어떨까?
글
양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