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있어 디자인이란 성능만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특히 GM의 할리 얼이 1938년 공개한 뷰익의 와이–잡(Y-job)을 통해 자동차에 ‘스타일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부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성공적인 디자인은 무수히 많은 요소의 적절한 균형유지이자 강렬한 인상을 위한 포인트 또한 가지고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다양한 자동차 디자인 속에서 빛나는 포인트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살펴본다.
그릴을 통해 바라보는 자동차 전면의 중요성
자동차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라면 단연 전면부이다. 특히 정중앙에 위치하는 그릴은 차량 내부의 엔진 열 감소 그리고 이물질로부터 보호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외에도 자동차의 전면부에서 디자인적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다.
과거 디자인적 측면보다 기능적 측면이 강조된 그릴은 차량의 전면부를 모두 차지하는 사각형 혹은 아치형의 그릴 디자인을 선보였다. 오늘날과 같이 그릴에 처음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 것은 이탈리아의 자동차 브랜드인 알파로메오의 1923년 RM 스포츠카를 원조로 보고 있다. 알파로메오는 전면그릴 가운데를 가로질러 상부와 하부를 나눈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릴에 다양한 조형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릴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통상 그릴과 범퍼의 경계는 분명한 편이었다. 싱글 프레임 그릴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성립한 아우디도 처음엔 범퍼와 경계를 이룬 가로형 그릴이었다. 하지만 2000년 아우디의 전신인 아우토 유니온의 드라이버 베른트 로제마이어의 이름을 딴 콘셉트 카에서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 그릴이 처음 공개됐다. 범퍼 하단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싱글 프레임 디자인은 훗날 아우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된다.
현재 렉서스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스핀들 그릴은 과격함이 느껴질 정도의 크기와 독특한 라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2011 뉴욕모터쇼에서 렉서스 GS의 콘셉트 카였던 LF-GH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스핀들 그릴은 2012년 양산되기 시작한 GS를 통해 현실화되었다. 스핀들 그릴은 고객의 취향을 고려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고객들의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난 현재는 렉서스만의 고유한 디자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변화하는 자동차 그릴의 디자인 흐름 속에서도 묵묵히 전통적인 모습을 고수하는 브랜드도 존재한다. 이들은 이미 완성도 높은 자동차 그릴 디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지프와 롤스로이스를 들 수 있다. 지프는 1941년 2차 세계대전을 누비던 군용 차량의 그릴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세월의 흐름 동안 그릴의 슬롯(동전 투입구 같은 모양) 수가 변화하기도 했지만, 세로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모습은 변함없다. 최근 지프 차량에는 그 수가 7개로 통일되어 ‘세븐슬롯 그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자동차 중 하나이자 전통적인 디자인을 고수하는 롤스로이스도 변함없는 그릴 디자인을 선보이는 브랜드이다. 롤스로이스의 판테온 그릴 디자인은 1906년 첫 선을 보인 실버고스트부터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직사각형을 촘촘히 매운 은색 기둥과 그 위 굳건히 자리잡은 삼각형의 지붕은 강인한 모습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로마 시대부터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강인하게 지키고 있는 판테온 신전의 모습뿐 아니라 그 가치마저 녹여낸 완성도 있는 디자인이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등극한
주간주행등 디자인
최근 자동차의 그릴과 함께 디자인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는 요소 중 하나는 헤드램프이다. 특히
LED의 사용과 이를 활용한 주간주행등이 디자인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사인 볼보는 안전함과 차체의 튼튼함은 인정받았지만 유독 디자인에 관해서는 많은 변화를 주지 않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새롭게 디자인 디렉터로 영입된 토마스 잉엔라트(Thomas Ingenlath)는 볼보의 변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그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2013년 프랑크프루트 모터쇼를 통해 공개한 볼보의 쿠페 콘셉트(Coupe concept)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가득 품은 채 등장했다. 이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주간주행등(DRL)이었다.
‘토르의 망치(Thor’s Hammer)’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주간주행등은 알파벳 ‘T’를 가로로 눕힌 모습을 취했다. 지금까지 디자인적으로 큰 특징을 보여주지 못했던 볼보의 자동차로서는 매우 큰 변화였다. 이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볼보는 이후에 양산되는 차량에 같은 디자인을 적용하며 보다 완성도 높은 자동차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
일찍이 주간주행등을 디자인 포인트로 삼은 브랜드로는 BMW가 있다. ‘엔젤링’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BMW의 코로나 링은 키드니 그릴과 함께 자동차의 얼굴을 책임지는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다. 2001년 4세대 5시리즈에서 처음 선보인 코로나 링은 4개의 헤드램프를 둥글게 감싸는 형상으로 주목 받았다.
1974년 등장한 BMW 1세대 5시리즈의 헤드램프는 4개의 원형 헤드램프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키드니 그릴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되는 형태의 헤드램프는 오늘날 코로나 링의 디자인적 시초가 된다. 코로나 링의 첫 역할은 미등과 주차등 이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주간주행등의 역할로 바뀌게 된다. 초반 원형의 모습에서 이제는 상하가 평평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자동차의 등화류 트렌드는 LED로 바뀌게 된다. 이유는 LED의 반영구적인 사용과 적은 전력 소모가 장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링 또한 2009년에 들어와서는 LED로 교체되었다.
차량의 완성도를 올려주는
디자인 디테일
자동차 속 필수요소에 디자인적 가미를 더한 사례는 많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부분에 디자인 요소를 가미한 부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동차의 내부 공간을 창출하고, 견고하게 지지하는 기둥 역할을 하는 곳이 필러이다. A, B, C 필러는 그 기능적 특성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C필러에 훌륭하게 디자인 언어를 녹여낸 BMW의 호프마이스터 킨크(Hofmeister Kink)가 있다. 호프마이스터 킨크란 BMW의 자동차 디자이너였던 빌헬름 호프마이스터의 성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디자인은 C필러를 따라 내려가는 윈도우 라인의 끝부분이 안쪽으로 다시 들어오는 디자인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전방으로 나아가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과 BMW 전통의 후륜구동 이미지를 강조했다.
자동차 디자인에 특정 조형 요소로 포인트를 주는 방법은 GM의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할리 얼에 의해 최초로 시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할리 얼의 대표적인 디자인인 테일 핀(Tail-Fin)은 비행기의 꼬리날개를 형상화해 자동차에 담은 최초의 스타일링 사례였다. 자동차의 후미에 날카롭게 솟아오른 테일 핀은 디자인적 포인트를 주는 동시에 당시 미국의 호황기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대의 자동차가 완성되고 등장하기까지는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된다. 특히 차량의 외형을 완성하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고뇌는 많은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작업 속에서 하나의 포인트는 자동차의 디자인 재미를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체적인 조화 혹은 포인트 디자인은 서로 상반되는 듯 하지만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글
김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