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2016, <장한평 모터쇼>라는 행사가 처음 열렸다. 일회성으로 그칠 것으로 보였던 이 행사는 2017년에도 열렸다. 서울시가 후원하고 이곳에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자동차 업체들이 경기 부활을 외치며 기획한 지역 행사로 그 취지가 분명했다. 모터쇼의 규모나 완성도를 떠나, 이 행사는 장한평이라는 지역이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있어 인문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임을 의미했다. 이 콘텐츠는 자동차와 관련된 깊은 이야기를 가진 서울의 주요 장소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 첫 장소를 장한평으로 잡았다.

장한평과 장안평,
어느 이름이 맞을까?

Q. 동대문구 천호대로 지하 405, 지하철 5호선역의 지명을 맞는 것은?
①장한평(長漢坪)역 ②장안평(長安坪)

위의 문제를 빠른 시간에 선택하라고 하면 의외로 헛갈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지역 주민들조차 마찬가지라고 한다. 답은 1번이지만, 이 지역의 행정동명은 장안동(長安洞)이고, 오랫동안 장안평으로도 불려왔기 때문이다. 역명이 장한평으로 확정된 것은 1995년이다. 1990년대 초반 서울시 지명위원회 소속 연구자들은, ‘장안평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발음 편의를 위해 바뀐 것이라고 보았다. 당시 연구자들은 <대동여지도>장한벌표기 등을 근거로 삼았다.


[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김정호 <대동여지도>의 경조오부도(서울시 데이터베이스)

하지만 이 지역을 장안이라 부른 기록은 <정조실록> 33, 정조 15(1791) 717일의 기사에도 나타난다. 당시 정조는 국방력 증대에 힘을 쏟고 있었다. 따라서 도성 가까운 곳에 군마를 기를 수 있는 지역에 대해 하교하는데, 그 중 한 곳이 장안(長安)’이었다. 이로 볼 때 이 지역은 그 이전부터 장안으로 불려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인근의 살곶이는 조선 초기부터 왕들이 수렵과 말타기를 즐겼던 곳이다. <태종실록>을 보면,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이 있어 이를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매사냥을 즐겼다는 기록도 나온다. 건원릉의 위치는 현재 구리시 인창동으로, 살곶이까지는 약 16~17km 떨어져 있다.

도시공간은 강남처럼 과거와 달리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치는 경우도 있지만, 과거의 성격이 이어져오는 곳도 있다. 동대문 등에서 흘러들어온 길을 모았다가 또 다른 방향으로 보내는 교통 요지로서 장한평역 일대의 모습은 역사적인 것이다. 1920년대, 일제가 한국과 대만의 토지 수탈을 위해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출장소를 이곳에 세운 것도 이러한 인문지리적 조건을 반영한다.


[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2005년 경의 장안동 사거리(출처,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강남 1970> 못지 않은 느와르 영화도 가능하다?
1970년대의 장한평

이곳에 중고차 관련 상거래 장터가 자리잡은 것은 1970년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이 지역을 둘러싼 도시 개발에 관한 기사들을 살펴보면 매우 파란만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이 지역 역시 서민 주거용 아파트 건립과 상가 건설 이권 등을 둔 권력형 비리의 복마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날림공사가 자행되었고 완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에서 겨울철 보일러 동파 등의 문제가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장한평 지역 서민 주거용 아파트 건립 공사 현장(출처, 서울 열린 데이터광장)

이 당시 장안동 인근의 중고자동차 매매 시장에서도 이러한 이권다툼과 비리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범죄가 종종 발생했다. 자동차 자체가 귀했던 시절이었고 이를 이용한 신분 사기 행각이 대표적이었다. 이외에 자동차를 이용한 금품 탈취, 폭력 등도 횡행했다. 무엇보다도 당시까지는 팔려고 내놓은 차량의 운행에 대한 제재 법안도 없었다. 적어도 이러한 유형의 범죄는 5~6년 이상 횡행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중고차와 관련된 이러한 다양한 문제가 등장하자, 정부는 관련법을 개선하는 한편, 동대문구 신설동과 구로구 등에 위치한 중고차 시장을 한데 모은 중고차 시장을 197811월 착공하도록 했다. 바로 장안평 중고자동차 매매단지의 시작이었다. 이 단지는 1979년 완공되었다. 시공사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막내동생 조욱래 씨가 대표로 있던 동성종합건설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중고차매매단지 착공과 관련해, 당시 한국자동차매매협회의 회장이던 변 모씨는 장안평 지역의 땅 9,200여 평을 1(3.3)당 약 65,000(현재 가치 약 249만 원)에 정부로부터 불하받았다.


[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장한평 중고차 매매단지 정문 전경(출처, 서울연구데이터 서비스)

이 땅의 당시 가격은 평균 40만 원(현재 가치 약 1,500만 원)이니 1/6 이상 싼 가격에 인수한 것이다. 이는 도시 개발 등의 과정에서 납득할 만한 수준이라 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었다. 변 모씨는 이 중 3,000평을 시공사인 대림신공사의 대표인 이 모씨에게 평당 65,000 원에 사적으로 넘겼다. 그런데 변 모씨는 이 땅을 불하받을 때 중고자동차 상사 64개사의 대표 자격으로 받았으면서, 땅을 넘길 때는 이들과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는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1989, 상고심을 통해 사문서위조,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등의 혐의에서는 대법원의 원심파기를 얻어내며 빠져나갔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는 개장하자마자 닥친 2차 에너지 파동으로 인해 거래절벽을 맞았다. 이 무렵 앞서 문제의 땅을 헐값에 인수한 이 모 씨는 1980년에 제일은행 성수동 지점에서 약 29억 원(현재 가치 135억 원 이상)의 부도를 내기도 했다. 한동안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는 권력과 범죄조직의 이해관계가 얽힌 복마전이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 없었다.

단순 매매단지에서 자동차 전문화 단지로

초기의 어려움을 겪고 중고차 매매와 수리 등 본연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당시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만 대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대차(자동차 교체)로 인한 중고차 공급 물량이 늘어났다. 또한 마이카 열풍에 편승해 중고로라도 자가용을 마련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렇다면 당시 주요 매물과 그 가치는 어느 정도였을까? 최고 출력 85hp와 최대 토크 12.5kgm1.5리터(1,492cc) 가솔린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대우자동차 맵시의 경우 280~320만 원대(현재 가치 925~1,050만 원대)였다. 또 프레스토 등의 등장에 따라 서서히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던 현대차 포니2의 경우는 최고 출력 80hp, 최대 토크 10.8kgm1.2리터(1,238cc) 엔진 기준으로 150~160만 원대(현재 가치 490~520만 원대)였다.


[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현대자동차 포니 2

[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대우자동차 맵시나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는 보다 의미 있는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서울 각 지역의 자동차 매매단지가 시장 특성별로 전문화되는 가운데, 장안평은 상용차의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자동차를 취급하는 종합 중고차 매매단지로서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19971월에는 수입차를 전문으로 다루는 중고매장까지 들어섰다. 비록 1997년 말 외환 위기로 인한 구제금융 도입 이후 수입차를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차주들 상당수가 차량을 매각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수입차 종합전시장과 같은 모습을 방불케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중고차 시장과 애프터마켓 시장에서 수입차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된 측면도 있었다.

장한평의 변신을 위한
과제와 변수

2000년대에 들어 장안동 일대는 보다 복합적인 포트폴리오를 갖게 된다.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공식 딜러나 서비스센터가 들어서면서 주변 중고차 시장과는 시너지 효과를 이루기 시작했다. 딜러들은 대차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보다 빠른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중고차 매매상은 물론 부품 유통사나 시공업체 모두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흐름이 빨라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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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평 중고차 매매단지(출처, 서울연구데이터 서비스)

그러나 매매단지 및 업체의 밀집이 워낙 오래 전부터 이루어지다보니 지역 환경이 낙후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중고차 시장이 타지역이나 온라인으로 옮겨가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서울시는 20181, 이곳 일대를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하고 현대화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사업을 통해 현재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가 속한 성동구 용답동 234 일대 50만㎡를 애프터마켓 메카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노후화된 건물을 허물고, 재개발을 통해 판매, 업무 시설은 물론 자동차 문화 체험시설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서울시는 해당 프로젝트를 2021년까지 마무리해 장안평 중고차매매단지를 신산업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장한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JAC, 서울시 제공)

장안동, 장안평 혹은 장한평역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있어 순환기계통과 같은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성립 초기와 발전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어두운 면이 있었지만 수도권의 많은 이들이 중고차 및 애프터마켓 제품과 관련된 편의를 누렸다. 이 지역이 노후된 외관을 벗고 새로운 모습을 갖춘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야심차게 시작한 수도권의 주요 테마형 중고차 매매단지들을 둘러싼 잡음 등은 주의깊게 살펴볼 부분이다. 또한 6월 전국동시 지방선거 이후 자치단체장 교체가 이루어질 경우도 변수가 될 수 있다.


[車큐멘터리] 서울 자동차 명소의 고고학―① 장한평
장한평 자동차산업 종합정보센터(JAC, 서울시 제공)

특히 강화되는 정부의 환경 규제가 중고차 매매산업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라는 거대 지자체가 추진한다는 것은 일종의 보장은 될 수 있겠지만, 그 향후 성공과 개발 과정에서의 투명성에 대한 절대적 보증은 될 수 없다. 중고차와 자동차 산업 전체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향후 진행될 이 지역의 변화를 매의 눈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