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경차의 세계

경차는 퍼포먼스의 구현보다는 저렴한 유지비와 실용성에 장점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해외에는 운전의 재미를 강조한 고성능 경차가 있고 국내에서도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을 가진 경차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진행되어 왔다. 경차 특유의 구조를 살리되 동력 성능을 강화한 고성능 경차의 사례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퍼포먼스 튜닝 경차, 불가능은 없다!

국내 한 방송사의 자동차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쉐보레 스파크의 튜닝 차량과 미쯔비시의 랜서 에볼루션의 드래그 레이싱 대결을 진행한 적이 있다. 랜서 에볼루션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300hp 이상의 최고 출력과 40kgm 이상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자동차다. 정확한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튜닝된 스파크는 순정 제원상 큰 차이가 나는 랜서 에볼루션을 압도적인 차이로 따돌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가수 겸 카레이서인 김진표는 튜닝된 스파크로 총 길이 70미터, 높이 12미터 360도 경사로를 롤러코스터처럼 주행하는 테스트를 성공 시키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경차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은 주로 일본의 제조사들이다. 일본의 경차 규정은 한국보다 더 낮다. 배기량은 660cc미만, 엔진 출력은 64hp 이하다. 또한 전장 3,400, 전폭 1,480, 전고 2,000㎜이하라야 한다. 한국과 달리 출력에 관한 제한이 있기 때문에 모닝 터보처럼 과급에 의해 출력을 높인 자동차는 완성차 제조사에서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모터스포츠와 튜닝 문화가 발달한 만큼 이를 통해 개조된 경차는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매년 초에 열리는 아시아 최대의 튜닝 및 애프터마켓 전시회인 도쿄오토살롱에서는 모터스포츠팀 소속의 경차 튜닝카를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일본 토요타 모터스포츠의 가주레이싱팀이 2012 도쿄 오토 살롱에서 프로토타입 토요타의 경차인 IQ에 슈퍼차저를 장착해 제작한 ‘IQ 130G MT’가 대표적이다. 이 자동차는 100대 한정으로 생산, 판매되기도 했다.
 
IQ 가주 레이싱 튠 바이 민(GAZOO Racing tuned by MIN) 6단 수동변속기를 탑재하고 전용 스포츠 서스펜션과 전용 ECU 세팅으로 주행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순식간에 전량을 판매했다. 이 차량은 1.3리터급 직렬 4기통 엔진으로 최고출력 98hp, 최대토크 12.5kgm를 발휘하며 공차중량이 980kg에 불과해 무게당 마력비는 10kg/hp이다. 이외에도 도쿄 오토살롱에는 매년 뛰어난 성능의 경차 튜닝카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2015년 쉐보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튜닝카 전시회인 SEMA에서 스파크의 고성능 콘셉트 모델을 선보였다. 스파크 RS 콘셉트로 명명된 이 차량은 기존 스파크 차량에 역동적인 바디킷, 콜벳 Z06에서 영감을 받은 17인치 휠, 알루미늄 배기구 등으로 꾸몄다. 구체적인 엔진 성능과 제원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튜닝된 1.4리터 가솔린 엔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콘셉트카는 국내와 북미의 쉐보레 디자이너들이 협업을 통해 만들었다.

완성차 제조사의 도전, 고성능 경차

2015 3월 출시된 스즈키 알토 터보 RS는 스즈키 브랜드에서 처음으로 일본 내 누적 판매 대수 500만대를 달성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동차다. 스즈키 알토 터보 RS는 차체의 약 46%를 고장력 강판으로 만들었으며 16%는 초고장력 강판을 사용해 경차임에도 안정성을 확보했다. 배기량은 658cc이며 최고출력은 64hp, 최대토크는 10.0kgm로 경차 제한을 만족시키는 수준이다. 하지만 공차중량이 670~720kg에 불과해 경쾌한 주행이 가능하다. 구동방식은 풀타임 4륜 구동과 전륜 구동 방식 중에서 택할 수 있으며, 연비는 무려 24.6~25.6km/l에 달한다.

201610, 혼다의 모터스포츠 및 튜닝 디비전인 무겐은 S660의 컴플리트카인 혼다 S660 무겐 RA 660대 한정으로 발매했다. 이 차량은 S660을 기반으로 BBS사의 절단 단조 알루미늄 휠로 공차중량을 5.8kg 감량했다. 또한 빌스테인 사의 서스펜션을 적용해, 차고가 25㎜의 낮아졌다. 또한 무겐 전용의 듀얼 머플러팁을 리어 범퍼 하단 중앙에 배치했다.

피아트는 세계 경차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기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피아트의 백미는 고성능 버전인 아바스라 할 수 있다. 레이서이자 엔지니어, 테스트 라이더였던 카를로 아바스가 창립한 아바스 앤 C(Abarth&C)는 일찍이 전문 튜너로 자리잡았다. 아바스는 1950년대부터 피아트 자동차의 아바스 튜닝 버전으로 유명했다. 1958년에는 피아트 500에 장착되는 479cc 엔진의 압축비를 높여 13~26hp의 출력을 높이고도 18,186km의 거리를 평균 108km/h의 속도로 완주하는 내구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영 사정의 악화로, 1971년 피아트에 합병되었다. 이후 아바스는 랠리 경기용 차량 및 고성능 버전의 제작에 매진하며 명맥을 잇고 있다.
 
현행 3세대 피아트 500을 베이스로 한 아바스500 1.4리터의 엔진을 기반으로 터보를 장착하고 보닛 부분을 조금 늘려 엔진룸 공간을 확보했다. 최고 출력은 160hp, 최대 토크는 23.5kgm에 달한다. 여기에 경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풀 커스터마이징 LSD(차동제한 장치), 서스펜션을 통해 기민한 선회 성능도 구현했다.

또한 아바스의 열정은 슈퍼카 제조사인 페라리의 협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피아트와 페라리는 페라리 430 스쿠데리아의 외관을 모티브로, 2단 듀얼 머플러와 17인치 페라리 스타일의 휠을 더한 특별한 500을 제작했다. 타이어는 205/40 ZR17, 앞바퀴에는 브렘보 4피스톤 캘리퍼를 탑재했으니 말 그대로 슈퍼 경차였던 셈이다. 이 자동차는 피아트 695 트리뷰토 페라리라 명명되었다.

695 트리뷰토 페라리의 엔진은 16밸브의 직렬 4기통 1,368cc이며 허니웰 가렛 사의 1446 터보차저를 장착했다. 이를 통해 구현된 최고 출력은 180hp, 최대 토크는 23.5kgm에 달했다. 트랜스미션은 5단 수동변속기 기반의 자동화 변속기인 MTA를 적용했다. 이를 통해 동력 전달 효율을 높이고 무게는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0100km/h까지 7초 미만에 도달하며 최고속력은 225km/h이다. 

폭스바겐의 UP 역시유럽에서는 스포티한 경차로 인기 있는 차종이다. 폭스바겐은 이 1.0리터 엔진의 UP에도 GTI를 두고 있다. UP GTI113hp의 최고 출력을 기반으로 0k100km/h의 가속을 8.8초만에 구현한다. 또한 최고속도는 195km/h에 달한다.  

모터스포츠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경차 레이스

경차는 출력은 낮지만 짧은 휠베이스 덕분에 코너에서 다이내믹한 운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의외로 국내외에서는 경차 레이스가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서널 서킷에서 자체적으로 주최하는 KIC-CUP 경차 레이스가 대표적이다. 이는 2018년에는 현대기아자동차가 후원하는 KSF(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의 모닝 챌린지 레이스로 대체되었다. 모닝 챌린지 레이스에 참가하는 차량은 카파 1.0 에코 프라임의 수동변속기 차종이며, 일반도로에서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의 경기 전용 튜닝이 적용된다.
 
그런데 국내 경차 레이스가 지금 갑자기 생긴 것일까? 현대기아차그룹은 KSF를 진행하기 이전, 2000년대 중반에 클릭 스피드페스티벌을 운영한 바 있다. 태백 레이싱 파크와 영암 F1 서킷에서 열린 이 대회는 1.5리터 급의 소형차량인 현대자동차 클릭을 활용한 원 메이크 레이스였다. 비록 제원상 경차는 아니었지만 당시 현대 아토스가 단종된 이후 현대에서 가장 작은 소형차량이었다는 점에서, 모닝 챌린지 레이스의 시초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차 레이스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대회는 닛산 마이크라컵으로 볼 수 있다. 이 경기에 참가하는 마이크라는 닛산의 고성능, 튜닝 디비전인 니스모에서 개발한 브레이크와 서스펜션,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탑재한다. 타이어는 피렐리에서 공급받는다. 경기 차량의 구입 비용은 17,737달러(한화 약 1,800만원)으로 진입 문턱도 낮다. 실제 경차 및 소형차 레이스는 모터스포츠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도 하고 있다.

2018 1분기 국산 경차를 대표하는 모닝과 스파크는 각각 14,400, 8,264대가 판매됐다. 각각 작년 1분기에 비해 20%, 34.6% 판매량이 감소한 것이다. 이는 소형 SUV의 인기와 점점 더 큰 차, 고성능 차량은 선호하는 경향 때문이다. 하지만 경차 역시 안정성과 힘을 키울 수 있는 잠재력은 차고 넘친다. 작고, 가벼우며, 튼튼하고 힘까지 센 경차야말로 최고의 펀카가 아닐까?


양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