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시대의 마지막? V8 자연흡기 엔진의 계보를 잇는 자동차들

자동차의 배기가스 규제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터보 차저나 48V 고전압 배터리를 활용한 다운사이징을 시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연흡기 방식의 다실린더 대배기량 자동차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트렌드 상 환영 받지 못함에도 꿋꿋이 V8 자연흡기 엔진을 고수하는 자동차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왜 V8 엔진을 고수하는지에 대한 이유와 함께, 국내에 판매 중인 V8 자연흡기 엔진 장착 기종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V8! V8! 그 이름의 매력은?

V8 자연흡기 엔진을 고수해오던 다양한 자동차 제조사들도 연료 효율과 환경문제로 엔진 다운사이징을 시도하고 있다. 부드러운 구동음이 매력적이던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 라인업 중심의 페라리와 메르세데스 AMG, BMW M 등 고성능 디비전 차종들도 터보 차저 기반의 다운사이징 엔진을 선보이고 있다.

동력 성능 면에서 터보차저를 적용한 엔진들은 기존의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을 월등히 능가한다. 실제로 4세대라 할 수 있는 M3 쿠페(E92)V8 4.0리터(3,999cc)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고 출력 420hp, 최대 토크 40.8kgm를 발휘했다. 그러나 2014년에 등장한 5세대 M3 세단(F80)은 직렬 6기통 3.0리터(2,979cc) 트윈터보 엔진으로 431hp의 최고 출력과 56.1kgm에 달하는 최대 토크를 발휘했다.

실린더 2개와 배기량 1.0리터가 감소했으나 최고 출력은 11hp가 상승했다. 또한 최대 토크가 16.1kgm 상승하고 토크 밴드 역시 넓어져, 연료 효율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4세대 M3 쿠페의 미국기준 복합 연비는 11.2L/100km(한국 기준 환산 시 8.9km/L)였지만, 5세대 M3 세단은 8.8L/100km(한국 기준 환산 시 11.3km/L)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은 V8 자연흡기 엔진을 추앙하는 데는 몇 가지의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우선 V8이라는 엔진 형식과 자연흡기 방식으로만 구현할 수 있는 배기음이다. 자동차의 배기음은 배기 레이아웃에 따라 연출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고유 주파수 등의 개성은 역시 실린더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한 실린더의 폭발 이후 바로 다음 순서로 폭발하는 실린더와의 각도 간격 때문이다. 4기통 엔진 180°, 6기통 엔진은 120°, 8기통 엔진은 90°가 된다. 이 간격이 좁을수록 폭발의 시간차가 좁아지고 보다 부드러운 음색을 구현한다. 흔히 말하는 회전 질감에 더 용적이 크고 압축비가 낮다면 저∙중속에서 정숙성도 높다.

4기통 엔진의 실린더는 크랭크샤프트가 180°회전할 때마다 하나는 폭발을 위해, 다른 하나는 흡입을 위해 2개의 실린더가 상사점에 도달해있다. 하지만 8기통 엔진은 이보다 주기가 짧아 진동을 상쇄할 수 있어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만큼 상대적으로 더욱 높은 출력과 토크를 발휘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장점을 무기로 V8 자연흡기 엔진을 고수하고 있는 자동차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V8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하고 국내에 시판 중인 차종을 모아봤다.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V8
자연흡기 엔진의 유럽스포츠카

GT란 이태리어로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 영어로는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를 의미한다. 이를 해석하면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고성능 자동차로 풀이된다. GT 장르의 자동차들은 오로지 빠르게 달리는 데만 목적을 두지 않기 때문에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적용 사례가 많은 편이다.
 
V8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한 GT 기종으로는 마세라티의 그란투리스모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미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 르반떼에는 V6 V8 터보 엔진을 적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란투리스모만은 V8 자연흡기 엔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세라티는 본사에 엔진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직원을 두고 있을 정도로, V8 자연흡기 엔진의 배기음을 잘 살리는 제조사이기도 하다. 그란투리스모는 V8 4.7리터(4,691cc)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고 출력 460hp, 최대 토크 53kg·m를 낸다. 가격은 2 1,900만원이다.

Maserati. Tales of GranTurismo

애스턴마틴도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GT 장르의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V8 자연흡기 엔진을 장착하는 기종으로는 밴티지가 있고, 국내에는 V8 밴티지 S가 수입된다. V8 밴티지 S V8 4.7리터(4,735cc) 자연흡기 엔진으로 430hp의 최고 출력과 50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특히 이 차량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배기 시스템이 장착되어 감각적인 배기 사운드를 연출한다. 비록 오는 하반기 V8 터보 엔진을 장착한 신형이 출시될 예정이지만, 자연흡기의 감성을 원한다면 현 세대의 밴티지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은 1 9,000만 원에 육박한다.

Aston Martin | V8 Vantage

미국차를 상징하는
V8 자연흡기 엔진은 건재하다

사실, ‘V8 자연흡기 엔진하면 연상되는 것은 머슬카가 시초라 할 수 있다. 미국은 타국대비 저렴한 유가와 드넓은 도로를 기반으로 8기통 이상의 자연흡기 엔진이 주를 이뤄왔다. 비록 환경규제 때문에 그 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제조사별로 1개 이상의 V8 자연흡기 엔진을 보유하고 있다.
 
포드는 머스탱과 일부 F시리즈에 V8 자연흡기 엔진을 적용하고 있다. 이 중 포드를 대표하는 스포츠카인 머스탱에는 1964년 출시 이후 단 한차례도 빠짐없이 V8 자연흡기 엔진이 적용되어왔다. 현재 국내에 판매중인 기종은 6세대 머스탱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으로 V8 5.0리터(5,035cc)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하고 446hp의 최고 출력과 54.1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6세대 머스탱은 주행 모드에 따라 배기음이 변하는 가변배기 시스템이 탑재되었다. 트랙 주행에 초점을 맞춘 트랙모드가 가장 우렁찬 배기음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V8 자연흡기 엔진의 감성을 갖춘 머스탱의 가격은 6,440만원이다.

The All-New 2019 Ford Mustang BULLITT: BULLITT is Back | Mustang | Ford

머스탱하면 빼놓을 수 없는 라이벌이 바로 카마로다. 카마로는 1세대 머스탱이 성공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작한 기종이다. 카마로 역시 출시 이래 V8 자연흡기 엔진을 매 세대마다 꾸준히 탑재해왔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카마로 역시 6세대이다. 6세대 카마로는 최고 출력 453hp, 최대 토크 62.9kg·m를 발휘하는 V8 6.2리터(6,162cc)엔진을 탑재했다. 카마로는 5,098만원이다.

Meet the Camaro Family | Chevrolet

보기 드문 일본차와
V8 자연흡기 엔진의 조화

경차의 왕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 8기통 이상의 엔진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설립한 별도의 브랜드인 인피니티, 렉서스, 어큐라를 살펴봐야 한다. 이 중 국내에 V8 자연흡기 엔진 장착 기종을 판매하는 제조사로는 렉서스가 있다. 렉서스는 국내에서 9개의 라인업 중 무려 7개의 하이브리드 버전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하이브리드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GS F, RC F, LC500등 고성능 라인업을 차례대로 런칭하며 브랜드 가치도 높이고 있다. 국내에 판매 중인 V8 자연흡기 엔진 장착 차종으로는 GS F RC F, LC500이 있다. 이 차종들은 V8 5.0리터(4,969cc)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고 출력 473~477hp, 최대 토크 53.7kg·m를 발휘한다. 가격은 GS F, RC F, LC500 순으로 1 2,080만원, 1 2,230만원, 1 7,000만원이다.

Lexus LC 500 – Exhilaration at the Goodwood Festival of Sp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