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완성차뿐만 아니라 부품과 애프터마켓 그리고 수출까지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진다. 또한 완성차 제조사는 장르별 라인업을 강화하며 해외 브랜드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탄탄한 구성력을 자랑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순수 국산 컨버터블의 부재이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컨버터블이 왜 존재하지 않는지 그리고 등장 가능성은 없는지를 국산차 제조사의 이력과 행보를 통해 전망해본다.
휴가철에는 뚜껑 한 번 열어봐야!
컨버터블의 로망
컨버터블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설령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탑을 개방한 채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드라이빙을 한번쯤은 꿈꿔봤을 터다. 실제 주요 렌터카 기업들은 성수기가 되면 주요 관광지의 지점에 컨버터블 차량을 과거 대비 확충하는 경향도 있다.
그렇다면 컨버터블의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압도적인 개방감을 들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자동차의 파노라마 선루프에 비할 바가 아니다. A필러와 전면 윈드실드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고개를 조금만 젖히거나 돌리면 외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후진 시 큰 사각지대 없이 주차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주행풍 걱정은 톱과 함께 접어두어도 된다. 바람은 전면 윈드실드에서 머리칼 끝을 간지럽힐 뿐이다. 이러한 장점들은 제원표나 사진만으로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는 매력이다.
컨버터블의 희소성 역시 로망에 기여한다. 물론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컨버터블 중 가장 저렴한 4,000만원 중반대의 미니 쿠퍼 컨버터블의 경우는 매년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C 세그먼트 이상의 차종을 기반으로 한 컨버터블의 가격은 역시 일정 이상의 장벽이다.
국산 컨버터블을 향한 시도는 없었을까?
그렇다면 세계 5~6권을 마크하는 자동차 제조사가 있는 한국에서 국산 컨버터블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일까? 우선 과거 이와 같은 시도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디자인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한다. 따라서 다양한 콘셉트카를 선보인다. 1992년 현대자동차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에서 구현한 HCD-1이 컨버터블 형태를 갖고 있는 대표적 콘셉트카였다. 또한 티뷰론 컨버터블, 투스카니의 컨버터블 버전인 CCS 콘셉트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에 오면 피터 슈라이어가 디자인한 엑씨드 컨버터블 콘셉트 등은 국산 컨버터블의 등장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 바 있다.
양산된 자동차도 있다. 1992년에는 쌍용자동차가 칼리스타를, 1995년에는 기아자동차가 엘란 그리고 2000년대의 GM 대우 G2X가 출시된 바 있다. 물론 칼리스타는 리마의 생산설비를, 엘란은 로터스 엘란의 부품 일부를 국산화해 판매한 것이었지만, 분명 국내 자동차 제조사의 이름으로 생산·판매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풀체인지는 커녕 2~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단종처리 됐다. 여기에는 소형 컨버터블임에도 국산 대형차에 맞먹는 가격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이 가격을 컨버터블의 가치와 연결시키기보다는 ‘2인승이 왜 이렇게 비싸’라는 시장의 반응도 한계였다. 역시 컨버터블은 신선함보다는 생경함과 부담감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국산 컨버터블의 등장을 가로막는 요인들
컨버터블의 콘셉트카 버전과 실제 양산으로 이어진 것을 모두 포함하면, 현재까지 국내에는 최소 10종 이상의 컨버터블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이 중 온전히 국산 기술력으로만 생산해 판매된 차량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국산 브랜드로 수입 혹은 일부 국산화를 진행했다 하더라도, 판매량이 높지 않아 일찍 단종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 자동차 제조사와 소비자들이 컨버터블을 ‘벽’으로 여기게 한 것일까?
‘썰어내면’ 다가 아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컨버터블 설계
외형상 컨버터블은 B, C 필러를 없애고, 루프와 뒷면의 유리만 트렁크에 수납하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간단치 않다. 컨버터블은 A필러와 도어 강성을 통해, 기존 B, C필러가 담당하던 충격 완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같은 차종이라도 컨버터블의 공차 중량이 무거운 이유다.
또한 컨버터블을 위한 개폐 시스템, 운전자의 불편을 없애기 위한 공력성능 연구 비용 등은 결국 가격에 반영된다. 외기에 노출된 운전자의 컨디션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 역시 고가다. 실제로 국내에 판매중인 메르세데스 벤츠 C200 세단의 가격은 4,910~5,560만원인 반면 C200 카브리올레의 가격은 6,220만원으로 E클래스의 최하위 트림보다 90만원 비싸다. 감가율도 높다.
시선이 부담스러워요
‘좋은 차’는 타고 싶지만 ‘튀는 차’는 싫은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 역시 컨버터블 개발에 우호적이지 않다. 같은 값이면 실내공간이 넓은 차를 구매한다는 ‘그돈이면’이라는 논리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보다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시선을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욕을 먹지 않을까 하는 불안심리도 작용한다. 컨버터블의 매력은 다름아닌 여유인데, ‘용기’까지 필요해서야 해당 장르의 매력을 채 느낄 수도 없다.
가능성을 점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출시되는 국산자동차들의 면면을 보면, 국산 컨버터블의 가능성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섀시 강성 구현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했고 이를 주요 차종으로 본격적으로 구현 중이다. 고성능 브랜드인 N은 동력 성능도 성능이지만 섀시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디자인 면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외장스타일링 담당 이상엽 상무, 루크 동커볼케 등은 모두 성공적인 컨버터블 자동차를 디자인한 경험이 있다. 여기에 컨버터블은 아니지만, 현대자동차의 르 필루즈 콘셉트카, 제네시스의 에센시아 등 독창적인 콘셉트카는 국산 컨버터블 역시 꿈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자동차 제조사의 차종 중 어떤 자동차가 컨버터블로 제작했을 때 ‘그림’이 가장 좋을까? 몇 가지 차종의 경우와 그 한계에 대해 잠시 간략히 짚어본다.
제네시스 G70
G70는 경쟁상대로 지목한 차종 등을 봤을 때나 제조사의 입지 등을 살펴봤을 때 컨버터블의 제작에 가장 가까이 있는 차종이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로서 독립적인 위치를 공고히 한다는 전략을 생각해서라도 컨버터블은 가능이 아닌 필요의 문제다. 애초에 세단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후미 라인이 기존 차량과 이질적인 모습을 보일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판매량 측면에서도 애초 목표인 월 1,000대 정도를 꾸준히 기록해온 만큼 시장에서의 수요가 확실한 자동차라는 점도 가능성을 높인다.
기아 스팅어
기아차 스팅어는 2,905㎜로 휠베이스가 G70보다 70㎜ 더 길다. 참고로 플랫폼이 바뀐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 컨버터블의 휠베이스(2,873㎜)보다도 길다. 따라서 컨버터블 버전의 스팅어 제작은 G70보다 어려울 수 있다. 또한 후면 윈드실드와 트렁크의 경계로 인해 쿠페나 그란쿠페처럼 유려한 측면 후미라인을 포기한 BMW 4시리즈 컨버터블을 생각하면 측면 이미지의 구현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애초에 패스트백타입으로 열리는 후면 해치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자칫 자동차의 정체성이 바뀔 수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스팅어의 유려한 외관 디자인은 컨버터블로 구현할 수만 있다면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아 씨드
FF 레이아웃 해치백 기반의 컨버터블은 이미 유럽 주요 제조사를 통해 구현된 바 있고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장르다. 이미 이 장르의 컨버터블로는 골프 컨버터블을 비롯해 미니 컨버터블 등 실용적 자동차이면서도 패션카를 지향하는 자동차의 영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아 씨드의 판매량은 2006년 유럽 시장에 선보인 후 128만 대 이상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도 가능성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컨버터블은 단지 차주의 부를 상징하는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의 플랫폼, 섀시 안정성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장르다. 충분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약간의 정체기에 이른 현대기아차는 고성능 브랜드의 출범 등을 통해 이를 탈피하려고 있다. 이러한 때 인기 차종에 기반한 컨버터블의 개발과 출시는 판매량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