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 렉서스 ES의 7세대 차종이 국내에 출시되었다. 이 자동차는 세계적인 인기는 물론, 독일차 편중이 심한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 왔다. 등장 후 30년 동안 숱한 경쟁과 위기를 넘기는 가운데, 중형 세단급에서 렉서스만의 독특한 기준을 세운 ES의 어제와 오늘을 간략히 살펴본다.
ES, 렉서스 브랜드의 시작
ES 시리즈의 역사는 렉서스 브랜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요타는 1989년, 북미 시장에서 보다 고급 자동차 수요자들을 만족시킬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설립된 브랜드이며, ES의 역사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렉서스 브랜드 출범으로부터 6년 전인 1983년, 당시 토요타의 회장이었던 에이지 토요타 회장은 연구진들에게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말이 질문이지 특명이나 다름없던 이 말에, 코드명 F1(Flagship one)이라는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자동차를 넘어서 고급 브랜드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F1 프로젝트에는 약 10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또한 60명의 디자이너와 1,400여 명의 엔지니어를 동원해 450여 대의 프로토타입 제작이 진행되었다. 첫 성과는 1989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 렉서스는 기함급인 LS 400과 함께 미드사이즈 세단 ES 250도 함께 공개했다.
최초의 렉서스 ES인 ES 250은 1988년에 나온 2세대 토요타 캠리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엔진 역시 캠리에서 가져온 156hp의 2.5리터 V6 엔진을 사용했다. 또한 전자 제어 4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파워트레인을 구성했다.
고급차답게 편의사양도 다양하게 적용했다. 크롬 몰딩과 프레임리스 윈도우를 기본으로 하고 고급 가죽 시트를 선택사양으로 적용했다. 여기에 운전석 전동 시트, 오디오 부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파이오니어사의 6채널 사운드 시스템도 적용됐다. 이러한 우수한 사양에도 당시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2만2,000달러로 판매되었으며 1991년 단종 될 때까지 약 1만 8,000대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ES 250이 이런 우수한 사양을 갖춘 것은 혼다 북미 법인의 고급 브랜드인 어큐라와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기도 했다. 참고로 어큐라와의 경쟁은 초창기 ES의 성장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어큐라 역시 1990년 신형 레전드를 출시했고, 렉서스는 1991년 도쿄 모터쇼를 통해 한 템포 빠른 세대교체를 단행한 ES를 공개했다. 3세대 캠리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2세대 ES는 전체적인 실루엣과 전, 후방 램프 디자인이 전 세대 보다 매끄러워진 모습이 특징이었다. 파워트레인 면에서 기존의 2.5리터 V6 엔진은 ES의 일본 내수용 차종인 토요타 윈덤에만 적용하고 미국 시장에는 새로운 3.0리터 V6 엔진을 얹어 이름도 ES 250에서 ES 300으로 바꿔서 출시했다.
새로운 캠리와 동일한 플랫폼으로 제작된 ES 300은 길어진 휠베이스로 인해 레그룸이 확장되어 실내 공간이 한층 여유로워졌다. 또 전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사용해 안전성을 강화하고 훨씬 더 안락한 승차감을 자랑했다. 새로 도입한 최고출력은 185hp의 3.0리터 V6 엔진 역시 발군의 성능을 자랑했는데, 0→60mph(97km/h)까지의 도달 시간이 7.9초에 불과했다. 또한 1994년에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출력이 소폭 향상되었다. 이러한 2세대 ES 300은 1996년 단종될 때까지 북미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렉서스 신화의
본격적 시작
1996년에 발표된 3세대 ES는 4세대 캠리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내실을 다졌다. 전장이 60㎜ 길어지며 오버행이 긴 고급 세단의 면모가 강조되는 한편, 실내 공간도 확장되었다. 엔진의 출력도 기존 188hp에서 200hp까지 끌어올린 3.0리터 V6 엔진과 197hp의 힘을 내는 새로운 2.5리터 V6 엔진을 탑재했다. 이 시기 가장 특징적인 점은, 렉서스 최초로 노면 적응형 가변 서스펜션을 장착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도로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깔끔하게 거르는 한편 고속 주행 시의 안정성도 함께 구현했다.
3세대 ES 300은 미국에서 약 3만 달러에 판매되었으며 5만 8,000여 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9년에는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그리고 범퍼 등 전면 디자인의 변화를 꾀했다. 또한 당시로서는 드물던 눈부심 방지 룸미러를 장착해 화제가 되었다. 3.0리터 V6 엔진의 출력도 210hp으로 향상시켰다.
4세대 ES는 5세대 캠리 플랫폼으로 제작되었다. 출시 첫해인 2001년, 7만 대 이상 판매되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중형 세단으로 등극했다. 또한 이 자동차는 한국 시장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는데, 막 확장되기 시작한 수입차 시장에서 가격의 합리성과 정숙한 실내, 부족함 없는 주행 성능 등이 입소문을 타며 단숨에 인기 수입차 반열에 올랐다.
특히 4세대에는 당시 물리적인 연결 없이 전자 신호로 스로틀 밸브의 개폐를 제어하는 드라이브 바이 와이어 스로틀을 적용해 동력 성능의 향상과 효율성을 모두 잡았다. 또한 새로운 5단 자동변속기로 파워트레인의 쇄신을 이루었다. 여기에 크롬 도어 핸들과 후방카메라, 빗물 감지 와이퍼, 전동 블라인드 등 다양한 장비들을 탑재해 플래그쉽 세단인 LS 430 수준의 고급스러움을 구현했다.
안전과 내구성에서도 인상적인 결과를 낳았다. 2003년 미국 연방 고속도로 안전관리국에서 실시한 충돌 테스트에서 별 5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2003년에는 최고 출력 225hp의 3.3리터 V6 엔진을 투입해 경쟁력을 더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 내수형인 토요타 윈덤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판매량이 급감한 윈덤은 그 이름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ES의 내수 버전이 되었다. 이후에는 일본 내수시장에서도 렉서스 ES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영광과 오욕의 교차
그리고 부활
렉서스와 토요타 그룹 전체에 있어, 2000년대 중반은 영광과 오욕이 교차했던 시기다. 2006년 시카고 모터쇼에서 선보인 6세대 캠리 플랫폼의 5세대 ES는 꽃길을 걸었다. 50㎜ 더 길어진 전장, 새롭고 날카로운 디자인의 헤드램프와 테일램프가 고급스러움과 스포티함을 동시에 드러냈다. 엔진 역시 최고 출력 272hp의 3.5리터 V6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해 파워트레인부터 다른 차임을 강조했다. 명칭도 ES 350을 추가했다. 대배기량의 자동차였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우수한 도심 9km/L, 고속도로 12.8km/L라는 연비를 구현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또한 텔레스코픽 스티어링휠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탑재해 운전자의 편의를 극대화했다. 여기에 14채널 마크 레빈슨 사운드 시스템, 파노라마 선루프 그리고 최상급 럭셔리 세단 못지않은 화려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 같던 렉서스 ES 350은 2009년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망사고로 인해 운명이 뒤바뀐다. 사고의 원인은 서스펜디드 방식의 페달(일반 페달처럼 계기반 쪽 패널에 매달려 있는 방식)이 아래로 처진 후 바닥에 걸려 올라오지 않은 것이었다. 조사 결과 상당수의 렉서스와 토요타 차량에 이런 결함이 있다는 걸로 판명돼 대규모 리콜이 시행됐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사과로 사건이 일단락됐고, 전체 판매량 면에서 ‘선방’했으나 이 사건은 잘 나가던 토요타의 발목을 잡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시없을 반성의 기회이기도 했다.
5세대 ES 350은 2012년을 끝으로 단종되고, 같은 해 4월 뉴욕 국제 모터쇼에서 완전히 새로워진 6세대 ES가 공개됐다. 6세대 ES는 ES 시리즈 최초로 토요타의 대형 세단인 4세대 아발론의 플랫폼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따라서 휠베이스가 기존 보다 크게 늘어났다. 또한 지금은 렉서스의 시그니처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모래시계 모양의 스핀들 그릴이 적용된 첫 번째 ES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