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위한 고성능의 재조명, 제네시스 G80

출근하면 박보검, 퇴근하면 송중기가 기다린다며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는 송혜교는 현재 출연 중인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블레이징 레드 컬러의 G80를 타고 있다.  10년 전 이맘때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도 빨간 제네시스 쿠페가 눈길을 끌었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송혜교가 극중에서 탄 10년 간격의 두 제네시스 차량은 강렬한 존재감을 보이기보다, 각기 극중 인물의 일상에 차분히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이 닮아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그런 일상을 위한 고성능 제네시스 G80에 대해 살펴본다.

브랜드 분리의 상징적 기종, G80

제네시스 브랜드의 플래그십은 G90( EQ900)이고 오롯한 적자는 G70이다.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자동차는 G80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월 3,000대가 넘는 평균 판매량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15 12월에 분리된 후 만 3년간 제네시스 브랜드에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차종이다.
 
그러나 항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등 수입 E 세그먼트의 경쟁자들에게 너무 많은 추격을 허용한 것이 아니냐며 위기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선 가격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3.3리터 자연흡기 엔진의 경우 중간 가격이 5,500만 원대, 3.8리터 자연흡기 엔진이 평균 6,000만 원대 그리고 3.3리터 트윈터보 엔진이 적용된 스포츠가 단일 트림으로 6,700만 원대에 달한다. 이 정도의 자동차는 가성비를 따지는 내구재가 아니라 가격 자체가 유저의 자존심이 되는 베블런재다. 이를 감안할 때, G80은 주요 경쟁 수입차들과 그 가치에서 핸디캡을 받을 이유는 없다. 따라서 1대가 더 팔리더라도 그만큼의 가치는 인정받을  만하다.

G80은 전신인 2013년의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2세대(DH)가 출발이다. 물론 현대자동차 시절부터 자사의 첨단 기술이 우선 적용되며 이후 고급 브랜드 전략의 선봉으로 여겨져 왔다. 대표적인 선행 기술로는 전자식 상시 4륜 구동인 HTRAC을 비롯해 주행 조향 보조 시스템, 수평 기울기 조절이 가능한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이는 향후 G80의 액티브 세이프티 컨트롤 및 다양한 편의 장비의 시초가 된다.

정숙성에 안정적 속도감을 더하다

G80은 앞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3.3, 3.8리터 자연흡기 엔진과 3.3리터 트윈터보 엔진의 G80 스포츠로 나뉜다. 이 중 자연흡기 엔진의 두 기종은 역동적인 주행보다는, 일상에서의 안락한 이동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자동차라 할 수 있다. 각각 최고 출력은 278hp(282ps, 6,000rpm) 311hp(315ps, 6,000rpm) 에 달한다. 최대 토크는 35.4kgm 40.5kgm로 모두 5,000rpm에서 발휘된다.

후륜 구동을 선택해도 각기 공차 중량이 1,900kg을 훌쩍 넘는 차종들이라 저회전 시의 차체 발진 거동이 기민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엔진의 구동음이나 배기음의 실내 유입이 현저히 적어 가속 페달을 밟아 회전계가 높이 올라가도 실내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다. 따라서 실제 운전자 입장에서는 큰 불편 없이 차가 움직이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오히려 G80의 주 구매 계층인 40대 후반 이상의 고객들 사이에서는 트윈터보 엔진의 강한 견인력으로 인한 이질감보다 자연흡기 엔진의 주행감을 선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행 성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G80 3.8리터 자연흡기 엔진 장착 차종은 후륜 구동을 기준으로 약 6.3초대의 0100km/L 가속을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변속기는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된다. 기어비는 1단에서 3.665, 5단에서 1, 8단에서 0.556, 종감속비는 3.538이다. 저단에서의 각 단 기어비 폭이 넓고 종감속비도 보다 가속에 유리한 편이다. 급가속 시에는 통상 3단에서 100km/h를 넘기는 만큼 마음 먹고밟으면 굼뜨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물론 그러한 가속 와중에도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은 미미하다. 구동음 중 아주 기분 좋은 영역만이 살짝 들리는 정도다.  

공차중량이 무거운데다, 휠베이스의 거리가 3,010㎜에 달하는 자동차인만큼 운동성능을 단순히 격한 선회 성능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G80는 쇼트 트랙 선수가 아니라 빙속, 그것도 장거리 선수에 가깝다. 사실 G80 오너의 일상에 험준한 와인딩 코스가 차지할 비중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램프웨이처럼 긴 선회구간에서는 탑승객의 몸이 크게 요동치지 않고 강한 듯 부드럽게 버텨주는 힘이 돋보인다.

자존심과 정체성 담은
실내 인테리어

G80의 인테리어에서는 은근한 고집과 자존심 느껴진다. 최근 주요 기종에 적용되고 있는 플로팅 타입의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매립형을 택하고 있다. 무려 9.2인치로 어지간한 태블릿의 크기에 해당하는 사이즈다. 사실 이 정도 크기의 내비게이션을 굳이 플로팅으로 구현하는 것도 안정성 면에서 유리한 선택은 아니다. 따라서 G80의 이러한 고집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가죽 시트의 밀착감도 우수하다. 특히 나파 기법으로 처리된 가죽 시트의 부드러운 질감은 장거리 운전시 피로감을 덜어줄 만한 부분이다. 버킷 시트처럼 몸을 꼭 조이진 않으나 두툼한 사이드 볼스터가 선회 시 몸이 쏠렸을 때 부드럽게 지지해준다. 추후 알칸타라를 부분적으로나마 선택할 수 있게 해 선택의 폭을 넓힌다면 더욱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NVH 성능은 E 세그먼트의 어떤 수입 명차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단지 렉시콘이라는 오디오 브랜드의 이름값이 아니라, 해당 오디오 시스템이 최적의 가치를 발휘할 만한 차량의 NVH 튜닝이 돋보인다. 특별히 어떤 음역대가 강렬하게 강조된다기보다 전체적인 조화와 선명함이 장점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선명함은 자동차 오디오에서 쉽게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워낙 간섭음이 많은 까닭이다. 이를 통해 전혀 다른 성격의 음악들이 가진 각각의 질감이 충분히 살아났다.

예컨대 1980년대 아날로그로 녹음된 실황 앨범의 질감과 2000년대에 디지털 악기로 녹음되고 후작업을 거친 스튜디오 음반의 질감이 각각의 성격에 맞게 구현되었다. 사실 최근에는 CDP가 없는 자동차가 더 많지만, 제네시스의 구매층이라면 CD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제네시스 G80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신만의 귀르가즘을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많지 않은 대안 중 하나인 셈이다.

80년대에 아날로그로 녹음된 실황 음반(왼쪽), 2000년대에 디지털 악기로 녹음된 스튜디오 음반(오른쪽)

모든 고성능차가 트랙을 지향할 필요는 없다. 고성능의 의미는 다양하게 정의되며, G80의 두 자연흡기 엔진 기종이 지향하는 고성능의 무대는 바로 일상이다. 일상(日常)이란 한자어는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그 삶의 시공간을 의미한다. 어느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사건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의 기본 바탕이다.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자동차는 어떤 특별한 자동차라도 삶을 먼저 특별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G80은 일상 지향의 고성능차라는 기준을 견고하게 구축해나가고 있다. 곧 맞이할 세대 교체에서 과연 G80에 담긴 철학이 어떤 식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