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사고로 숨진 유명인 ―①음악가부터 배우까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는 주위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상실감을 준다. 특히 유명인들의 교통 사고와 그로 인한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미친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파장이 컸던 각계 유명 인사들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 사례 중 음악가, 배우 등 유명인들의 사례에 대해 살펴본다. 부디, 흥미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연말 연시 조금이나마 경각심을 느끼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

부주의가 낳은 불행,
드러머 코지 파웰

레인보우, 블랙 사바스, 게리 무어, 잉베이 맘스틴 등 20세기를 호령한 기라성 같은 록 그룹과 뮤지션들의 무대 정중앙에는 항상 이 남자가 있었다. 야수와 같은 드러밍으로 20세기 록 역사를 수놓은 영국 태생의 드러머 코지 파웰(1947. 12. 29~199845)이다. 살아 있었다면 71세 생일을 맞았을 그의 죽음은, 운전자로서 가장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들의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드러머 코지 파웰. 자신의 베스트 앨범 표지 재킷(왼쪽)과 솔로 앨범 <오버 더 톱>의 앨범 재킷(오른쪽)(출처 : Allmusic.com)

코지 파웰은 유부녀와 연애 중이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상대 여성은 사고가 있었던 199845, 파웰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와달라고 했다. 파웰은 자신의 사브 9000으로 M4 고속도로를 달렸다. 코지가 브리스톨 인근을 지날 때 이 여성은 코지에게 휴대 전화를 걸었고, 코지는 지금 가는 중이야라고 답했다. 그러나 곧이어, 이 여성은 이런 젠장!”이란 외침과 큰 충격음을 들었다. 당시 BBC의 보도에 따르면 코지는 차량 밖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안전 벨트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혈중 알코올 농도가 규제 수치 이상이었다. 물론 추후 경찰이 발표한 공식적인 사고 원인은 후륜 타이어 펑쳐로 인해 차량이 통제 불능이었는데 사고 당시 167km/h로 과속한 것도 사고의 한 원인이었다.


자동차사고로 숨진 유명인
―①음악가부터 배우까지
사브 9000

당시 그가 몰았던 사브 9000은 최고 출력 210hp(5,700rpm), 최대 토크 27kgm3.0리터(2,962cc) 엔진과 4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된 차량이었다. 전자식으로 스티어링을 제어하는 스티어 바이 와이어를 비롯해 다양한 안전 장치가 적용됐다. 하지만 안전 벨트 미착용과 과속 음주운전 그리고 심리적 불안상태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빌 에반스를 폐인상태로 몰아간 죽음,
스캇 라파로

재즈의 초상이라고도 불렸으며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 등의 명곡을 남긴 재즈 피아니스트, 작곡가 빌 에반스는 주로 트리오로 활동했다. 그의 트리오를 거쳐간 이들은 모두 명 연주자들로 재즈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베이시스트 스캇 라파로(1936. 4. 3~1961. 6. 6) 역시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25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역시 자동차 사고였다.


자동차사고로 숨진 유명인
―①음악가부터 배우까지
왼쪽에서 두 번째가 스캇 라파로, 그 오른쪽이 빌 에반스(출처 : Allmusic.com)

스캇 라파로는 미시간 주 플린트 인근 20번 고속도로에서 주행 중 나무를 들이받고 일어난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차량은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어, 사고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너무 심하게 일그러진 데다 당시 차량에 대한 기사 자료가 부족해 어떤 차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당시 트렁크 도어 양쪽에, 1950년대 미국 자동차에 유행한 테일핀 타입 디자인이 보이는 점이나 후미 루프의 둥근 라인 등을 봤을 때는 1950년대의 포드 크라운 등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라파로는 포뮬러원을 포함해 당시 모터스포츠의 광팬이기도 했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운전에 미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도로 인근의 나무를 들이받은 이유는 미스터리이다. 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동물을 피하려 했다는 설, 혹은 공연을 마치고 이동하다가 피로를 이기지 못해 졸음운전을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실제 그는 또 다른 재즈 대가인 스탄 게츠와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공연을 마친 후 이동 중이었다.


자동차사고로 숨진 유명인
―①음악가부터 배우까지
빌 에반스가 긴 머리와 텁수룩한 수염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라파로의 죽음 이후였다(출처 : Allmusic.com)

라파로의 죽음으로 빌 에반스는 한동안 음악 활동을 접었다. 함께 연주했던 드러머 폴 모션은, 당시 빌 에반스가 유령과 다름없었다고 전할 정도였다. 그만큼 빌 에반스는 라파로를 아꼈다. 조지 거쉰 원곡으로 에반스 트리오가 연주했던 아이 러브즈 유, 포지(I Loves You, Porgy)”는 재즈 마니아들에게 스캇 라파로의 명연으로 꼽힌다. 이런 실력에 수려한 외모로 스타성까지 겸비했다. 그런 베이시스트를 잃었으니 빌 에반스가 좌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미완으로 삶을 마감했고 에반스는 물론 그를 사랑한 많은 사람들을 실의에 빠뜨렸다.

졸음운전이 앗아간 헤비메탈의 신성,
메탈리카의 클리프 버튼

장르는 다르지만, 교통사고로 사망한 또 다른 베이시스트가 있다. 바로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였던 클리프 버튼(1962. 2. 10 ~ 1986. 9. 27)이다.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아도 현재 메탈리카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드물다. 사운드스캔 사가 음반 판매를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그룹도 메탈리카다. 그런 메탈리카의 상징적인 곡은 단연 마스터 오브 퍼펫(Master of Puppets)”이라 할 수 있다. 1986년에 발매된 동명의 앨범은 현재도 빌보드 카탈로그 앨범(발매 18개월 이상 음반)차트 15위 내에 랭크되어 있으며, <롤링스톤>지가 꼽은 대중음악 명반 500선에도 선정된 바 있다.

클리프 버튼의 사망사고는 바로 이 앨범의 유럽 투어를 진행하던 도중에 일어났다. 스웨덴 남부 크로노베리주의 한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투어버스의 전복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투어버스 운전 기사는 갑작스런 노면의 블랙아이스로 인해 차량이 미끄러졌다고 진술했다. 클리프 버튼은 이 때 버스 밖으로 튕겨나갔고 버스가 그 위를 덮쳤다. 9월 말이지만 스웨덴은 노면 온도가 0에 가까이 내려가기에 처음에는 모두 이 말을 믿었다. 그러나 이후 멤버들의 장비를 싣고 뒤따르던 운전사의 진술에 의해, 멤버들을 태운 버스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메탈리카의 클리프 버튼(왼쪽사진 맨 왼쪽)과 그가 참여한 메탈리카의 3집 <마스터 오브 퍼펫>(출처 : Allmusic.com)

멤버들의 상실감은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는 그 이후 가입한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에게도 스트레스였다. 히트 앨범을 내는 데 기여한 그였지만 멤버들은 클리프 버튼에 대한 그리움이 컸고 제이슨을 정식 멤버라기보다는 장기 계약한 세션 멤버 정도로 대했다는 후문도 있다. 어쨌든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주목받는 밴드의 일원이었던 클리프 버튼은 2009년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성인영화의 전설,
린다 러브레이스

성인영화가 현대 미디어 시스템 속에서 강력한 서브컬처로 자리잡은 것은 1970년대 미국에서부터였다. 그리고 그 역사를 바꾼 작품은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가 있다. 그 여주인공인 린다 러브레이스(본명 린다 수잔 보어먼, 1949. 1. 10 ~ 2002. 4. 22). 내용은 자체심의 상 삭제하되 관심있는 독자들이 찾아보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

린다 러브레이스는 교통사고를 두 번 당했고 후유증도 길었다. 1970년 자동차 사고를 당했고, 원래 간염도 있어 수혈과 간이식 등 여러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란제리 모델로서의 활동과 작품 활동 및 미디어 활동에 매진하였다. 러브레이스는 1990년대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2002년 일어난 콜로라도 덴버에서의 교통사고 후유증은 견디지 못했다.

린다 러브레이스의 전기를 쓴 작가 에릭 댄빌(왼쪽 사진)과 책 표지의 린다 러브레이스(오른쪽 사진)

포르쉐와 함께 떠난 배우들,
제임스 딘과 폴 워커

3편의 영화만으로 20세기 미국 영화의 아이콘이 된 제임스 딘(1931. 2. 8 ~ 1955. 9. 30) <분노의 질주>의 주인공 폴 워커(1973. 9. 12 ~ 2013. 11. 30)는 분위기와 성향은 다르지만 모두 포르쉐를 사랑했던 배우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르쉐와 함께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제임스 딘은 포르쉐 550 스파이더, 폴 워커는 2005년식 911 카레라 GT를 마지막으로 탔다.

제임스 딘이 탔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는 1950년대 유명 인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자동차였다. 위대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물론 많은 유명인들이 이 자동차를 사랑했고, 제임스 딘도 그 중 한명이었다. 1953년 파리모터쇼를 통해 공개됐던 550 스파이더는 당시 최고 출력 108hp, 최대 토크 12kgm를 발휘하는 1.5리터(1,498cc) 엔진을 리어에 배치한 후륜 구동 스포츠카였다. 공차 중량도 약 550kg에 불과했다. 이런 면모는 제임스 딘의 작은 거인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루머도 많은데, 그가 사망한 시각이 오후 550분이고 여기에 그의 시계가 멈춰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자동차사고로 숨진 유명인
―①음악가부터 배우까지
제임스 딘과 그의 포르쉐 550 스파이더

폴 워커의 죽음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의 일이므로 그러한 전설과 같은 이야기는 없다. 워커는 친구이자 프로페셔널 카레이서인 로저 로다스와 함께 타이푼 재해 유족을 위한 자선 행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사고 장소는 드래그 레이스 명소로 알려진 곳이어서 경찰은 그러한 혐의점에 대해 조사했으나 그러한 정황은 없었다. 두 사람의 혈액에서 알코올이나 약물에 대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과속을 하긴 했다. 80km/h가 규정 속도인 도로에서 130~150km/h로 달린 사실은 파악됐다. 그러나 경찰은 그보다 노후한 타이어의 펑쳐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혔다. 이 자동차는 5.7리터(5,733cc)V10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고 출력 603hp, 최대 토크 60kgm를 발휘했다. 따라서 이 사고는 고성능차에서 일어나곤 하는 갑작스런 마찰력 변화로 인한 차량 제어 불능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사고로 숨진 유명인
―①음악가부터 배우까지
포르쉐 카레라 GT. 폴 워커도 레드 컬러의 카레라 GT를 탔으며, 사망 몇 시간 전에 차량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