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SUV 시장을 이렇게까지 폭발시킨 기폭제는 콤팩트 SUV라 할 수 있다. 2010년대 초중반, 고리타분했던 SUV의 이미지를 바꾸고 구현해낸 새로운 이미지지는 상위 세그먼트의 변화도 이끌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소형 콤팩트 SUV들의 움직임이 다시 심상치 않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세계 각 자동차 제조사의 B세그먼트큽 소형 SUV의 고급화에 대해 살펴본다.
차종 간격 너무 좁다고?
수요는 확실하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소형 SUV 베뉴(Venue)의 렌더링 이미지를 공개했다. 현대자동차 SUV의 패밀리룩으로 자리잡은 분리형 헤드램프와 캐스케이딩 그릴을 적용하되 보다 스포티하고 역동적인 디자인이 포인트다. 인테리어에서도 군더더기를 없앤 심플한 조작 버튼 등이 눈길을 끈다. 이 자동차는 오는 4월 17일(현지 시간) 뉴욕 오토쇼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 자동차는 국내 출시도 확실시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미 코나가 SUV 라인업의 엔트리 역할을 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그 역할을 다시 쪼개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지적이다. SUV 라인업의 간격이 너무 좁아 결국 자사 차종 잠식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은 예상 가능한 현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B세그먼트급의 SUV는 성장하는 영역이다. 시트로엥의 C3 에어크로스의 경우 2017년 1월 출시이후 3개월여만에 10만 대가 팔렸다. 2018년 공식 출시된 렉서스의 UX 역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UX는 일본 시장에서 월 판매 목표 900대를 980% 상회하는 8,800대가 판매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참고로 UX는 전장이 4,495㎜로, B 세그먼트로 보기는 약간 애매하나 B 세그먼트 SUV인 아우디 Q2 등과 경쟁 차종으로 비교되고 있다.
이러한 인기 차종들의 선전을 기반으로, 전세계적으로 해당 세그먼트의 2018년 성장은 거의 20%에 달한다. 가히 세계 경제의 저성장 국면을 극복한 장르라 할 수 있다.
1~2인도 고급차를 탈 권리 있다
이 세그먼트는 돋보이는 성장률 외에도 ‘고급화’라는 현상이 주목된다. 렉서스의 UX는 크기만 작을 뿐 LS에 사용되는 가죽 시트 등 상위 기종의 사양을 적용했다. 토요타의 최신 전륜 구동 피플랫폼인 GA-C 기반의 첫 차인 UX는 합산 최고 출력 181hp를 발휘하는 2.0리터 앳킨슨 사이클 엔진과 구동 모터의 하이브리드 시스템 및 4륜 구동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 차가 강조하는 것은 상위 기종 못지 않은 스포티한 주행 감각과 고급스러운 실내외 디자인의 조화다.
PSA 그룹의 럭셔리 브랜드인 DS는 DS3크로스백을 나란히 선보였으며 2019 서울모터쇼에서도 공개했다. 특히 DS3 크로스백은 프래그런스 키트 등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옵션과 고급 가죽 시트 등을 장착했던 DS3의 SUV 버전이다. 파워트레인은 1.2리터 퓨어텍 가솔린, 1.5리터 블루 HDI를 비롯해 1회 충전으로 최대 430km를 주행할 수 있는 전동화 파워트레인의 E-텐스가 있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만큼 파워트레인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 자동차 역시 전장 4,118㎜로 콤팩트한 사이즈이지만 실내 요소요소의 디자인과 편의 사양 등이 강점이다.
이처럼 소형차가 고급화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유럽에서도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EU)의 공식 통계 기구인 유로스탯(Eurostat)에 따르면 이미 2017년 EU 회원국의 1인 가구 비율은 1/3을 넘어섰다. 이는 자동차 생활의 변화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에는 1인 가구의구성원은 생애주기상 소득이 적은 젊은 층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1인 가구 구성원들도 많다.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위해 지나치게 큰 차량 공간과 주차의 불편을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요 고급 사양들이 4인 가족 이상이 탈만한 D세그먼트 이상의 차량에 집중되는 데 아쉬움을 표해 왔다. B세그먼트 SUV의 고급화는 이러한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구매력을 갖춘 새로운 유저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한국도 경제적 여유를 갖춘 1인 가구가 늘면서 럭셔리 B세그먼트 SUV의 수요는 조금씩 늘어갈 것으로 전망해볼 수 있다.
대중적 브랜드의 B-SUV 고급화 전략, 그 길은?
소비자들의 니즈도 있지만,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도 해당 세그먼트의 고급화 요구가 반갑지 않을 리 없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차종인 까닭이다. 한 제조사의 입문 차종이기도 한 B 세그먼트 차종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럭셔리 B 세그먼트 SUV를 만들더라도, 출발선이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와 대중적 브랜드의 타깃은 묘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우선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가격 책정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는 생산지역에서건 수입 지역에서건 크게 다르지 않다. 박리다매 전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최선의 제품 품질을 구현하고 그에 맞는 값을 책정한다. 실제로 UX의 가죽 시트소재는 플래그십인 LS와 동일하다.
한국 시장에는 아직 수입되지 않았지만 BMW X2나 아우디의 Q2는 고성능 버전인 M35i와 SQ2를 운영하고 있다. 상위 기종에서 보이는 역동성을 무기로 프리미엄 전략을 발휘하는 기종들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젊은 세대나 1인 운전자들을 타깃으로 한다. 역시 가격 면에서의 타협은 없다.
그러나 대중적 브랜드가 이 체급에서 고급화를 시도하는 경우라면 조금 계산이 복잡해진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고급 내장재, 첨단 ADAS를 적용하더라도 해당 브랜드의 가치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존 인식을 전환시키는 작업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가 양산을 전제로 서울모터쇼에서 선보인 SP 시그니처 콘셉트 SUV 역시 이러한 과제를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확실한 답안을 작성하지 못한다면 향후 양산차로 나올 SP 시그니처의 타깃군도 자칫 모호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브랜드는 PSA의 DS이다. 모 브랜드인 시트로엥은 2019년 설립100주년을 맞이했으며, 유럽 자동차 산업계에서 강한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DS19 등 1950~1960년대의 명차들은 고급차의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2015년 브랜드 독립 DS가 자리잡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DS는 이에 대해 E-텐스와 같은 혁신적인 성능과 디자인의 콘셉트카, 포뮬러 E 머신 등을 통해 먼저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DS의 전략 역시 아직 과정이라는 점에서 모범 사례라기보다 참고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은 둔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젊은 소비자들은 아직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희망이다. 특히 구매력 있는 젊은 유저들에게, 부가가치가 높은 자동차를 파는 것은 향후 성장 동력을 지속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다. 비싼 가격에 작은 차체, 기존의 관점으로는 매력을 끌 수 없어 보이지만 분명 세계 시장에서는 주목받고 있는 것이 B 세그먼트의 고급 SUV들이다. 한국도 젊은 층의 소득 양극화 속에서 확실한 구매력을 가진 젊은 자동차 소비자들이 있는 만큼 이 시장의 잠재력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장르의 활황을 이끌 소비자들이 시장에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등장할지는 미지수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