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토)은 대한민국 장애인의 날이었다. 비슷한 시기, 매년 일본에서도 장애인과 고령자를 위한 복지 페어인 <배리어프리> 행사가 진행된다. 여기에는 일본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도 앞다투어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볼수록 선진적인 일본의 장애인∙고령자 모빌리티의 현주소를, 18일(목)부터 20일(토)까지 오사카 인텍스 전시장에서 열린 <배리어프리 2019> 주요 참가 제조사들과 차량을 통해 살펴보았다.
최고 인기차 N박스로
장벽 없는 즐거움 전하는 혼다
혼다는 장애인, 고령자 등 교통 약자를 위한 모빌리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로보틱스 아시모 연구를 통해 쌓은 노하우로 보행 보조 기구는 물론 다양한 이동 보조 기구를 선보인 바 있다. 이런 첨단 디바이스뿐만 아니라 혼다는 양산차 기반의 휠체어 수납용 차량과 장애인 스포츠용 모빌리티를 제작하고 있다.
혼다는 4년 연속 일본 내 최다 판매를 기록한 N박스를 이용한 휠체어 슬로프 차량이 강점이다. 전장 3,395㎜, 휠베이스 2,520㎜, 엔진 배기량 660cc의 경차이지만 안정적인 균형감을 통한 선회 안정성, 충돌 저감 시스템과 보행자 충돌 회피 등 혼다 센싱의 장착이 가능하다 안전성이 돋보이는 자동차다. 이를 기반으로 한 휠체어 슬로프 차량은 N박스 슬로프는 간편한 승차 모드, 원터치 설치 방식의 난간 등 조작과 이용에 있어서의 편의성도 돋보인다. N박스 슬로프는 2017년 도쿄 모터쇼에 선보인 이래, 2018년 4월 출시되었으며, 일본 장애인 및 거동이 불편한 노령자가 있는 가정에 큰 발이 되어주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2015년 서울모터쇼를 통해 기아자동차 레이를 이용한 휠체어 슬로프 차량이 선보인 바 있지만 크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혼다는 이번 배리어프리 행사에서 장애인 육상 경기용 휠체어 ‘카케루(翔)’를 선보이기도 했다. 일본어로 ‘날다’라는 의미의 이 육상용 휠체어는 견고하고 경량화된 섀시를 통해 장애인 육상 선수들의 경기력을 배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혼다는 배리어프리에서 그들이 자랑하는 보행 어시스트, 자동차 안전 운행 시뮬레이션인 ‘세이프티 나비’ 등을 전시했다.
장애 가족들의
자유로운 자동차 생활을 돕는 닛산
닛산 역시 장애인 모빌리티 분야에서 상당한 입지를 갖고 있다. 혼다 N박스와 동급의 경형밴인 NV100이나 내수용 차량인 데이즈 등을 활용한 장애인용 차량이 인기리에 판매 중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 출품차량 중 눈에 띄는 것은 전장 4,770㎜, 휠베이스 2,860㎜의 중형 미니밴 세레나 기반의 장애인용 차량이다. 이 자동차는 3열에 휠체어를 수납할 수 있는 슬로프 차량인 ‘체어캡’과 휠체어를 필요로 하진 않지만 차고가 높은 미니밴 승하차가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회전식 리프트업 시트인 ‘슬라이드업’ 시트 차량으로 나뉜다.
체어캡은 3열 후미 해치를 열고 슬로프를 전개해 휠체어를 끌어올리는 방식의 차량이다. 왼쪽 테일램프 근처에 있는 버튼들 중 차고(車高) 버튼을 눌러 후륜 지상고를 80㎜까지 낮춘 후 갈고리가 있는 내부 벨트를 연장하여 휠체어에 걸고, 벨트를 당기는 기계의 힘과 인력을 더해 사람이 탄 휠체어를 3열에 안착시킬 수 있다.
2열의 슬라이드업 시트의 경우 다양한 각도로 조작 가능하다. 차체로부터 760㎜ 떨어진 공간까지 전개 가능하고 시트 바닥면의 지상고는 170㎜까지 낮게 내려올 수 있다. 이 때 무릎의 높이는 약 460㎜로 노인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기에 불편함이 없는 정도의 높이다. 위에서 보았을 때 시트의 회전 각도는 80° 수준이다. 참고로 이 슬라이드업 시트는 1열 조수석에서도 설치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라인업에
장애인 운전자 편의를 구현한 토요타
토요타는 폭넓은 장애인용 차량 라인업인 ‘웰캡’을 두고 있다. 특히 다양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한 차량의 장르도 다양하다. 한국에는 프리우스 C로 알려져 있는 아쿠아 하이브리드부터 프리우스 PHEV, 휠베이스 3,000㎜대의 최상위급 미니밴인 알파드, 벨파이어 하이브리드 등으로도 장애인용 차량이 생산된다.
배리어프리 2019에 출품한 토요타의 차량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장애인 운전자의 편의를 최대화하는 프리우스 프렌드매틱이라는 자동차다. 언뜻 보면 프리우스 위에 루프랙이 얹혀 있는 차로 보인다. 그러나 이 루프는 전동으로 휠체어를 수납할 수 있는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또한 장애인 운전자가 휠체어에서 운전석으로 최대한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전동으로 조작 가능하다. 또한 휠체어를 탄 운전자가 자유롭게 트렁크를 여닫을 수 있도록 트렁크 내의 로프를 활용하게 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이 보다 즐거운 드라이빙의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 프리우스 프렌드매틱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
장애인 모빌리티에 적극적 관심 보일 때
한국에서도 규모는 적지만 장애, 복지 관련 전시회는 진행하고 있다. 마침 22일(월)부터 23(화)까지 양일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는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도 함께 진행된다. 고용노동부와 장애인 고용공단이 함께 진행하는 이 행사에는 휠체어 접근, 탑재 차량을 제작하는 특장 기업을 비롯해 장애인 모빌리티 제조사들이 참여한다.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는 벌써 올해로 14회째를 맞이한다.
그러나 해당 전시에는 국내 주요 자동차 제조사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일본의 배리어프리 전시와 비교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엄연히 장애인용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고, 다양한 모빌리티 제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해당 전시 자체가 해당 분야의 전문 기업과 산학 각 분야 연구진들의 교류장이라는 한계는 있다.
따라서 향후 열릴 자동차 관련 주요 전시에서 장애인 관련 모빌리티 분야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자동차 제조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명분이 있고 그러한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앞서 언급한 각 일본 제조사의 주요 장애인용 차량 중에는 2017년 도쿄 모터쇼에서 선행 공개된 차종이 상당수다. 도쿄모터쇼에서 혼다와 닛산은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 장애인용 모빌리티를 선보이고 있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 교통 약자를 위한 모빌리티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자, 자동차 제조사의 또다른 성장 동력이다.
최근 며칠 사이, 장애인의 이동 권리에 대한 미디어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아직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누려야 할 이동의 자유나 즐거움에 대한 고민은 미진하고 소극적이다. 이러한 미디어 보도조차 특정 시기의 일시적 관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혹은 살면서 누구나 뜻하지 않게 일로 신체의 불편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과의 소통을 막는 일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애인들과 고령자 등 교통 약자의 이동을, 사회적 배려를 넘어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본과 같이 완성차 제조사들의 적극적인 역할도 요구된다.
글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