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자동차의 파워트레인 성능은 갈수록 평준화되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주행 성능 차별화의 포인트는 공력 성능의 향상이다. 공력 성능은 차체 디자인을 통해 1차적으로 해결하지만 부가적인 장치를 통해 이를 개선하기도 한다. 그 중 스포일러는 주행 시 공기의 흐름이나 저항을 잘 이용하여 바퀴의 마찰력을 높이는 장치다. 따라서 고성능 자동차를 제작할 때 디자이너들과 공학자들은 경쟁 차종보다 더 우수한 공력 성능을 가지고 있으며 남다른 디자인을 가진 스포일러를 제작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라 할 만한 독특한 스포일러들을 모아봤다.
람보르기니의 혼이 담긴 ALA
람보르기니는 페라리, 포르쉐와 함께 세계 3대 슈퍼카 제조사로 꼽히지만 같은 이탈리아 출신 페라리나 독일의 정밀함으로 무장한 포르쉐에 비해 어딘가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지난 2017년 우라칸 퍼포만테를 선보이며, 경쟁사들에게 ‘한 방’이 있음을 알렸다.
우라칸 퍼포만테는 등장과 동시에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6분 52.01초만에 주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람보르기니는 이러한 기록의 비결로, 자사의 최신 에어로다이내믹 기술인 ALA를 꼽았다. ALA는 ‘Aerodinamica Lamborghini Attiva’의 이니셜다. 일반적인 가변형 스포일러와 달리 ALA은 공기 흐름을 보다 정밀하게 제어하는 방식이다.
일반 주행 시에는 전방 2개의 가변식 플랩이 달린 포지드 컴포지트 프론트 스포일러와 2개의 플랩이 달려있는 포지드 컴포지트 카본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를 모두 연다. 이는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저항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다운포스가 필요한 상황(급제동, 선회)에서는 프론트 스플리터의 플랩과 리어 윙의 플랩을 닫아 순간적으로 저항을 크게 하고 공기를 위쪽으로 흐르도록 한다. 또한 고속 선회 시 코너의 방향에 따라 오른쪽 플랩과 왼쪽 플랩의 개폐를 조절해 좌우 다운포스를 다르게 구현할 수 있다.
맥라렌 세나, 조금은 독특한 스포일러
맥라렌은 과거 맥라렌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F1 선수 아일톤 세나를 기념하기 위해 맥라렌 세나를 출시했다. 이는 맥라렌의 플래그십을 담당하고 있는 얼티밋 시리즈 P1의 후속 차량으로 최고출력 789hp, 최대토크 81.6kg·m의 강력한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또한 무게가 1,198kg에 불과해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2.8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성능에 비해, 맥라렌 세나의 스포일러가 특별한 기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 스포일러 마운트 위에 올려져 있는 일반적 스포일러들과 달리, 세나는 스포일러가 마운트에 매달려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다른 차량들 보다 스포일러의 움직임이 자유롭다. 그래서 250km/h에서 최대 800kg이라는 엄청난 다운포스를 발생시킨다. 이는 도로를 합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양산 자동차들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때문에 고속으로 코너 선회 시 마치 도로와 자동차가 한 몸인 것처럼 붙어 있도록 도와 준다.
스포일러도 화려함의 극치, 파가니 와이라의
파가니는 1992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27주년을 맞이했다. 파가니는 처음부터 다른 슈퍼카 메이커들을 압도하는 퍼포먼스와 디자인으로 단숨에 정상급 슈퍼카 메이커로 자리잡았다. 1999년 존다 C12를 시작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양한 존다 시리즈가 나왔고 2012년 존다의 후속 차량인 와이라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건제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오늘 주목할 차량을 존다의 후속인 와이라다.
와이라는 출시 당시 혁신적인 공기역학 구조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리어에 툭 튀어 나온 스포일러 대신 미드십 구조인 것을 활용해 차량의 보닛에 2개 리어 엔드에 2개 총 4개의 플랩을 달아 공기 흐름을 제어한다. 심지어 각각의 플랙은 차량의 움직임에 따라 서로 다르게 움직여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속 주행시에는 모든 플랩들이 접혀 매끈한 형태지만 제동, 선회 시에는 플랩이 일어나며 차량 상부의 유속을 나주고 양력의 발생을 통제해 차량의 안정성을 높여 준다. 하지만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게 없다는 옛말처럼 멋있고 혁신적이지만 다른 슈퍼카에 달리 있는 거대한 프론트 스플리터나 리어 윙 보다 공력성능이 떨어진다.
공기까지 디자인하는 애스턴마틴 DB11
애스턴마틴은 영국을 대표하는 슈퍼카 메이커로 우리에게는 영화 007의 본드카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난 2013에는 다임러 AG가 애스턴마틴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메르세데스 벤츠와 기술 협약을 맺었다. 그 결과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사용해오던 포드 엔진을 버리고 메르세데스의 고성능 디비전 AMG의 기술을 전수 받아 새로운 5.2리터 V12 트윈터보 엔진을 제작했다. 이 엔진은 2016년 애스턴마틴의 새로운 GT카 DB11에 사용됐다.
애스턴마틴 DB11은 이전까지 애스턴마틴이 사용하던 디자인과 부품들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된 매우 의미가 깊은 차량이다. 엔진뿐 아니라 애스턴마틴은 DB11의 아름다운 라인을 해치는 거창한 스포일러를 대신 에어로블레이드를 적용했다. 에어로블레이드는 차량의 C필러에 있는 구멍을 통해 들어온 공기가 리어에 있는 배출구로 배출되며 다운포스를 일으키는 일종의 에어스포일러다. 차량 뒤에 생기는 와류 현상을 억제해 주며 180kg의 다운포스를 생성해 어떤 길에서든 GT카 다운 안락함을 선사한다.
가변 스포일러 끝판왕, 젠보 TSR-S
젠보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다. 젠보는 앞서 언급한 파가니 보다 더욱 늦게 만들어진 덴마크의 수제 슈퍼카 제조사다. 2004년에 설립되어 15년동안 현재까지 ST1, TS1, TS1 GT, TSR, TSR-S 이렇게 5가지의 슈퍼카를 제작했다. 2009년 젠보의 첫번째 슈퍼카 젠보 ST1은 쉐보레 콜벳에 들어가는 LS7 V8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089hp, 최대토크는 145.8kg·m 이라는 엄청난 제원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가장 빠른 차, 부가티 베이론보다 최고출력이 높았지만 최고속도는 375km/h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8년에는 도로를 합법적으로 달릴 수 있는 TSR-S를 출시 했다. 출시와 동시에 마치 로봇이 변신하는 것처럼 운직이는 TSR-S의 독특한 리어 스포일러로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젠보 TSR-S의 스포일러는 여러 개의 힌지와 유압 실린더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자동차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리어 스포일러가 옆으로 기운다. 즉, 우회전시에는 스포일러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며 선회 접지력을 향상 시켜 준다. 당연히 제동 시에는 스포일러가 세워지면서 에어 브레이크 역할도 해준다.
젠보 TSR-S는 트랜스포머 같은 스포일러 외에도 성능도 우수하다. 젠보에서 자체 제작한 5.8리터 트윈 슈퍼 차저 V8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이 1,177hp의 강력한 성능으로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는 2.8초, 200km/h까지는 겨우 6.8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높은 출력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스포일러에도 불구하고 최고속도와 다운포스는 다른 슈퍼카에 비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멋을 위해 스포일러를 장착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 고성능차에서의 스포일러는 단순히 멋을 위한 부품이 아니다. 파워트레인 이상으로 슈퍼카들의 달리기 성능에 기여하는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공기 흐름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경쟁 차종보다 0.1초의 싸움에서 승패가 갈리고, 아랍 왕자 등 세계 부호들의 현금이 향하는 곳도 달라진다. 그런 만큼 슈퍼카의 스포일러 하나를 제작하는데 드는 개발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멋을 넘어선 압도적 주행성능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 구현된다.
글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