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뚜껑이 열리면 동작이 빨라지지만 자동차는 다르다. 탑이 개방되는 차량들은 탑의 개폐를 위한 장치는 물론, 부족한 강성을 도어에서 보강해야 하므로 무거워진다. 그래서 동일한 차종이라도 컨버터블은 쿠페보다 가속력 기록에서 약간 손해를 본다. 그러나 그런 제원상의 경계를 넘는 괴물 컨버터블들이 있다. 단 완성차 제조사의 현재 생산 차종 기준이며 트랙용 차종도 제외한다. 918 스파이더와 아리엘, 래디컬 등의 애호가가 있다면, 이들은 제외된다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하나, 둘, 셋!
3초부터가 시작이다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3초대라는 기록은 실험실 조건이거나 엄청난 가격을 요구하는 초고성능 차량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비교적 노려볼만한 가격대의 컨버터블들이 0→60mph(96km/h)를 3초대에 달성한다.
메르세데스 AMG GT C 로드스터 3.7초, GT R 로드스터 3.6초
지난 2016년 말 선보인 AMG GT C의 0→60mph 가속 시간은 3.7초다. 엔진 제원은 익히 알려져 있어 이제는 암기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의 AMG 4.0리터(3,982cc) V8 바이터보이다. 최고 출력557hp(5,750~6,750rpm), 최대 토크 69kg∙m(1,950~5,750rpm)를 발휘하며 변속기는 7단 DCT이다. 최대 토크가 끝나는 영역부터 바로 최고 출력이 발휘된다. AMG를 고속의 제왕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의 판매가격은 15만 8,000달러(약 1억 8,300만 원)부터 시작된다. 가격보다 어마어마한 토크를 받아내는 변속기의 클러치를 비롯해 엔진오일 등 유지비용이 더 만만치 않을 자동차다. 국내 정식 출시된 적은 없으나 직수입 업체 등을 통해 국내에 들어와 있다.
참고로 2019년에는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AMG GT 라인업의 최상위 차종인 R의 로드스터 모델도 공개된 바 있다. 750대 한정 판매로 출시된 GT R 로드스터는 공차중량 감량과 가속 시 전륜 쪽의 마찰력 강화를 통해 GT C 로드스터의 기록을 0.1초 단축했다.
아우디 TT RS 로드스터, 3.6초
엄청난 배기량의 엔진만이 재빠른 가속을 위한 답은 아니다. 이를 증명하는 자동차가 2.5리터(2,480cc)의 직렬 5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과 7단 S트로닉(DCT)의 파워트레인 그리고 4륜 구동 방식의 아우디 TT RS 로드스터다. 100km/h(62.1mph) 기준으로는 3.9초까지 밀리지만 60mph로만 하면 기록은 제법 준수해진다. 해당 엔진은 2019년 ‘올해의 엔진’에서 350~450PS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해당 엔진의 최고 출력은 400hp(5,850~7,000rpm), 최대 토크 49kg∙m(1700~5,850rpm)에 달한다. 1단 기어비가 1:3.563, 2단 1:2.526, 종감속 기어비가 1:4.059이다. 스포티한 기어비를 통해 치고 나가는 퍼포먼스가 뛰어난데, 의외로 공차중량이 1,540kg대로 가볍다고는 할 수 없다. 혹여 직수입해서 탄다면 트랜스미션의 유지 보수에 꽤 공이 들 법하다.
재규어 F-타입 SVR, 3.4초
지난 7월 13일(토)에 시작한 tvN 드라마 <호텔 델 루나>에서 사장 장만월(이지은 분)의 자동차 컬렉션 중 하나로 등장하는 기종이다. 최고 출력 567hp(6,500rpm), 최대 토크 71.4kg∙m(3,500~5,000rpm)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 강한 배기음과 5.0리터 슈퍼차저 V8 엔진과 ZF의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어 있다. 구동력을 최대 90%까지 후륜으로 보내, 후륜 구동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전자식 4륜 구동 방식을 갖고 있다. 제원상으로는 3.4초 수준이다. 참고로 온갖차는 지난 3월 이 차를 시승했다. 쌀쌀한 날씨였고, 노면에 습기가 많았음에도 0→100km/h 기준으로 3.7초를 기록했다. 지금의 날씨라면 더 우수한 기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계 너머를 꿈꾼다!
2초대 머신들
콜벳 Z06, 2.95초
카본 파이버 패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경량화를 이룬 콜벳 Z06은 유럽차가 득세하는 고성능차영역에서, 미국 머신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최고 출력 650hp(6,400rpm), 최대 토크 66kg∙m(3,600rpm)을 발휘하는 6.2리터 V8 슈퍼차저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파워트레인을 선택하면 0→60mph 2.95초의 가속력을 선물한다. 또한 이 같은 주행 성능을 발휘하는 차종들 중에는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다. 미국 현지에서 가장 비싼 트림이 9만 840달러(약 1억 714만 원)부터 시작하며, 갖가지 최고 사양을 선택해도 12만 달러(약 1억 4,100만 원) 선이면 충분하다.
아우디 R8 V10 스파이더, 2.9초
이 차량의 0~100km/h 가속 시간은 공식적으로 3.1초다. 주요 해외 매체어서 측정한 바나 계산상으로 봤을 때 0→60mph 기준으로는 2.9초 수준이 될 것이 유력하다. 이 차의 제원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V10이라는 특이하고도 상징적인 엔진 형식에 5.2리터(5,204cc)의 배기량을 가진 엔진은 동력성능보다도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 특유의 우렁찬 배기음으로 인기가 높다. 최고 출력은 611hp(8,000rpm), 59.1kg∙m(6,600rpm)이며 DCT인 7단 S 트로닉이 적용된다. 엄청난 동력 성능을 자랑하지만 정속 주행 시에는 실린더 휴지 기능을 발휘해 연료 소모량을 줄이는 면모도 있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 2.9초
지난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된 람보르기니의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 역시 2.9초의 0~60mph 가속력을 자랑한다. 최고 출력 770h(8,500rpm), 최대 토크 73.4kg∙m(6,750 rpm)을 발휘하는 6,498cc의 V12 엔진과 특유의 싱글 클러치 기반 7단 자동화 변속기를 적용한다. 여기에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는 공력 시스템인 ALA(Aerodinamica Lamborghini Attiva)를 적용해 기민한 조향성을 자랑한다. 미국 기준으로 57만 3,966달러(약 6억 7,700만 원)에 달한다. 기술과 자본, 훌륭한 연구자들의 뛰어난 재능이 이뤄내는 장대한 소모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페라리 488 피스타, 2.85초
이 영역에서는 페라리가 빠질 수 없다. 페라리의 488 피스타의 3,902cc V8 바이터보 엔진은 2019년 올해의 엔진 650PS 이상 부문을 수상했다. 이는 페라리 V8 엔진의 4년 연속 수상 기록이기도 하다. 참고로 2위 역시 812 슈퍼패스트에 장착된 6.5리터(6,496cc) V12 엔진이 차지하며, 해당 영역에서 페라리의 위세를 실감케 했다. 영광의 주인공인 488 피스타는 800hp(8,500rpm)의 최고 출력과 73.3kg∙m(7,000rp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7단 DCT이다. 빛의 속도와 같은 변속, 면도날 같은 가속 페달 및 제동 반응이라는 이야기가 허언이 아니다.
맥라렌 720S 스파이더, 2.8초
최근 국내에도 출시됐다. 맥라렌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서 가장 급성장한 럭셔리카 브랜드 중 하나이다. 타 슈퍼카 대비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유지비가 낮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독특한 디자인과 보다 경이적인 스포츠카에 대한 열망이 이러한 인기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엔지은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으로, 이름처럼 최고 출력 720ps를 발휘한다. 환산하면 710hp(7,500rpm), 최대 토크 78.5kg∙m(5,500-6,500rpm)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7단 DCT이다.
포르쉐 911(991.2) 터보 S 카브리올레 2.6초
3.8리터 수평대향 6기통의 트윈터보 엔진과 7단 PDK를 결합한 포르쉐의 7세대 911 터보 S 카브리올레는 2.6초대를 기록한다. 오픈에어링의 상쾌함과 시야가 좁아지는 스릴 모두를 만끽할 수 있는 자동차이면서 데일리카의 이미지도 갖고 있는 포르쉐는 어쩌면 이 영역에서 너무 평범한 답일 수도 있다. 국내에도 출시된 바 있으며 시작 가격은 2억 8,000만 원이었다. 그러나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를 통해 살펴보면, 시작 가격은 시작 가격일 뿐임을 알게 되고, 이 차의 가속 속력보다 빠르게 홈페이지를 닫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