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가른 슈퍼카들의 향연, 아시아 모터스포츠 카니발

지난 83()~4(), 전남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는 CJ 대한통운 슈퍼레이스, 람보르기니 슈퍼트로페오 그리고 블랑팡 GT 월드 챌린지 아시아(이하 블랑팡 GT 아시아’)가 통합된 아시아 모터스포츠 카니발이 진행되었다. 낮 최고기온 34℃ 이상의 폭염과 최고 60%에 달하는 습도 등 드라이버를 비롯한 팀관계자들과 관람객 모두에게 힘든 경기였지만,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고성능 차량들의 향연은 경기장을 찾은 6,000여 관람객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귀를 찢는 배기음,
블랑팡 GT와 람보르기니 슈퍼트로페오

영암에 위치한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은  1.3km에 달하는 직선 주로와 F1 기준에 맞춘 노면 등 고성능차와 우수한 기량을 갖춘 드라이버의 조화를 경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서킷이다. 따라서 고성능 머신들의 경쟁인 블랑팡 GT 아시아와 람보르기니 슈퍼트로페오의 무대로 이곳 외의 선택지는 한국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블랑팡과 SRO(스테판 라텔 오거나이제이션)가 함께 주관하는 블랑팡 GT는 국내에서 처음 진행되었다. 물론 해당 대회에 출전하는 아우디 R8 LMS 차량은 별도의 원메이크 레이스를 통해 국내에 선보인 바 있으나 세계 수준의 GT 대회가 한국에서 공식 개최된 것은 극히 오랜만의 일이다.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치러진 블랑팡 GT 아시아는 9, 10라운드로 각각 3, 4일에 치러졌다.

국내 모터스포츠팀으로 지난 해 처음 참가한 현대성우그룹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팀도 홈 그라운드에서 진행하는 첫 대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를 기념해 현대성우그룹은 경기 전인 2일 저녁과 10라운드가 펼쳐지는 4일 당일 ‘2019 인디고 페스타를 여는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또한 고국에서 펼쳐지는 첫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부리람(태국)과 후지(일본)에서 함께 포디움 정상에 오른바 있는 최명길 감독 겸 선수와 마누엘 메츠거(Manuel Metzger) 듀오의 환상적인 팀워크를 앞세운 쏠라이트 인디고 레이싱팀은 9라운드에서 폴 투 피니쉬(예선 1, 결승 1)를 기록했다. 내구레이스를 기반으로 60분 동안 드라이버를 교체하며 진행되는 방식의 블랑팡 GT는 팀워크와 전략이 중요하다. 최명길, 메츠거 듀오의 엔트리 넘버97번 메르세데스 AMG GT3 차량은 27랩을 돌아 2위 허브오토 코르사(#27, 페라리 488 GT3)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한편 10라운드 경기에서도 인디고 레이싱팀은 27랩을 돌며 4위에 자리했다. 최명길, 메츠거 듀오는 경기 초반 좋은 기세를 보여 주었던 트리플 에잇 레이스 엔지니어링 오스트레일리아의 메르세데스 AMG GT3 5위로 밀어내고 챔피언십 포인트도 획득했다. 이를 통해 시즌 2위 자리를 더욱 견고하게 굳혔으며, 최명길은 드라이버 포인트에서 1위를 유지하게 됐다. 인디고 레이싱팀 관계자는 “9라운드 경기는 고국에서 치르는 첫 경기라 설렘만큼 부담이 컸는데, 첫 라운드에서 1위를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 편히 경기했다며 경기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한편 블랑팡 GT 아시아는 출력이 다르지만 무게 당 출력비 등을 통해 BOP(퍼포먼스 균형)을 맞춘 차량들로, 구간마다 각 차종의 특성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전체적인 균형이 우수하지만 공차 중량이 다소 무거운 메르세데스 AMG GT3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의 긴 직선 구간에서 힘을 발휘했으며, V8 바이터보 엔진 특유의 배기음을 들려주었다. 포르쉐 911 GT3 R은 우수한 에어로다이내믹과 가벼운 무게를 바탕으로 가속 후 이어지는 급코너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이 외에 맥라렌 720S와 페라리 488 기반의 차량들 역시 트랙 지향형의 머신답게 강력한 모습을 자랑했다.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는 모두 동일 기종으로 치러지는 원메이크 레이스다. 최고 출력 620ps(8,250rpm)를 자랑하는 5,204cc V10 자연흡기 엔진은 특히 직선 구간에서 그야말로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을 자랑했다. 국내 람보르기니 마니아들과 타 모터스포츠팀 관계자들도 해당 레이스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특히 CJ 슈퍼레이스의 ASA6000 클래스로 출전하고 있는 팀 106의 류시원 감독 겸 드라이버는 “5~6년 전에 해당 차량을 타본 적이 있다“ASA 6000에 집중하겠지만 지금 보니 그 때의 기분도 살아난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폭염 뚫고 시즌 첫 우승,
서한 GP 장현진

국내 대회 역시 흥미로웠다. 2017, 2018 시즌 연속 팀 우승과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가며 공공의 적이 됐던 한국타이어 아트라스 BX가 지난 4라운드에 이어 5라운드에서도 포디움을 놓쳤다. 그리고 폴포지션을 차지했던 서한 GP 장현진(#06)이 결승에서 40 43 719의 기록으로 첫 승을 기록했다. 초반부터 격렬한 우승 경쟁을 벌이던 엑스타 레이싱팀의 정의철(#04) 2 CJ 로지스틱스 레이싱팀의 황진우(#12)3위에 올랐다. 장현진은 지난 201810 27일 용인에서 우승한 이후 오랜만에 승리를 추가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 2위 역시 정의철이었다.

이번 대회에는 그간 약세를 면치 못했던 금호타이어 사용 팀이 2위와 3위에 올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결과였다. 그간 금호타이어를 사용했던 팀의 드라이버들이 포디움과 인연이 없거나, 포디움에 오르더라도 타이어에 대한 아쉬움을 크게 전해 온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다.

모터스포츠 자체는 한국에서 큰 성장을 이루기 어려운 구조임에도 최근 용인 및 수도권과 거리가 가까워진 인제 스피디움에서 진행되는 경기들은 흥행 성장을 이루고 있다.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의 흥행은 한국 모터스포츠가 대중적 이벤트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한 마지막 과제라 할 수 있다. 국제급 대회와 일상에서 쉽게 보기 힘든 고성능차의 향연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고를 감내하고서라도 경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보다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