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이 되고 싶은 FF 여러분, 질문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FF 자동차들은 후륜 구동 쿠페의 외양을 닮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기자만의 착각일까? 그러기에는 상당수 제조사의 신차발표회에서 들을 수 있는 스피치 문구가 동일하다. ‘전륜 구동의 한계를 넘은 비례감’, ‘쿠페를 닮은…’ 식으로, 이제는 외울 수 있을 정도다. 세상의 모든 자동차 디자이너들에게 혹은 자동차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후륜 구동 쿠페의 비례감만이 자동차 미학의 절정일까?

아름답다는 덴 이견 없지만

8월 27일, 서울시 중구 신라호텔에서는 볼보가 자랑하는 D 세그먼트 세단 S60 3세대 차종의 국내 공식 출시 미디어 행사가 진행됐다. 이 행사에서는 볼보 북미 법인의 디자인 담당자인 T. 존 메이어가 참석해 디자인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그 역시 신형 S60의 디자인을 소개하며 비율의 ‘개선’을 강조했다. 특히 휠 센터에서 대시보드까지의 거리가 이전 세대보다 길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부분은 최근 세대교체를 맞이한 주요 FF(가로배치 전륜 구동) 차량의 디자인 설명에서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설명이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세로배치 후륜 구동 차량의 레이아웃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의 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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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북미 법인 디자인 센터장 T. 존 메이어

물론 이것은 훌륭한 성과다. 차량 전체에서 운전석의 위치가 가운데로 오며 무게 중심도 개선되고 자연스럽게 조향 안정성도 우수해진다. 가로배치 엔진인만큼 긴 보닛 공간은 다소 낭비일 수 있지만 우수한 방열 시스템과 안전 시스템 센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한 눈에 봐도 아름답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T. 존 메이어가 소개한 대로, 길어진 전륜 휠센터와 대시보드까지의 거리, 길어진 휠베이스, 유려한 루프라인이 그리는 선은 분명 이전 세대의 컴팩트했던 이미지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미의 개념이 크고 긴 것에 대한 인식이 문명과 함께 고도화된 것이라고 본다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잠깐 살펴본 대로, 이러한 비율에 대한 강조는 FF 레이아웃 세단을 만들어내는 각 제조사들의 메시지에서 거의 반복되듯 한다. ‘로우 앤 와이드’의 전∙후 이미지까지 한 세트로 사용되는 문구다. 표현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윤곽도 대동소이해지고 있다. 제조사마다 고유의 LED DRL(주간주행등) 디자인이 없다면 엠블럼을 바꿔 놓아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LED DRL의 ‘콘셉트 과잉’ 트렌드도 이것이 원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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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 D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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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의 508 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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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아테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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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10세대 어코드(※일본 제조사 차량이지만 전륜 구동 차량 디자인 특성 상 중요한 차량이라 삽입하였습니다)

전륜 구동의 비례감은 럭셔리하지 않다?

하지만 차가 비슷비슷해보인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실 차의 이미지를 다르게 할 방법은 많다. 등화류뿐만 아니라 캐릭터라인, 휠 등 세부 디자인 요소들을 활용하면 될 사안이다. 시기별로 차량의 이미지가 획일화되는 것도 비단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골프 1세대를 빚어냈던 무렵, 역시 그의 작품인 현대자동차 포니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자동차들이 각진 윤곽의 해치백을 쏟아냈다. 주류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전륜 구동의 비례감이 극복해야 할 한계로 인식되고 있는 데 대한 물음이 부재한다는 것은 다소 아쉽다. 특히 후륜 구동의 비례감을 통해 고급스러움을 구현했다는 메시지는 FF 레이아웃이 그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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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 DN8의 플랫폼

물론 공감할 수 없는 전제는 아니다. FF 레이아웃 자체가, 전장이 짧은 자동차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캐빈을 구현하고자 하는 공리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관점의 산물이다. 물론 후륜 구동이 지향하는 가치가 전륜 구동의 정확한 대우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FF만큼 실용성이나 공리성에 무게를 두진 않을 것이란 점은 짐작할 수 있다. 후륜 구동의 비례감이 고급스럽다는 미적 감각이 발생하는 지점은 이 부분이다. 즉 ‘짜치지 않는 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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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전륜 구동의 시초 트락숑 아방. 지난 7월 100주년 기념 행사 이벤트 주행 장면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
새로운 자동차 미학은?

후륜 구동 레이아웃의 비례감이 아름답다고 FF 차량들이 이를 탐하는 데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제는 조금 의심을 품어야 할 때다. 최근 2~3년 사이에 나온 전기차, 자율주행차 콘셉트카들의 디자인은 자동차의 디자인 미학에 대한 다른 전제를 가질 것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트로엥의 100주년 기념 전기 콘셉트카인 19_19(Dix Neuf Dix Neuf), 2017년 르노가 선보인 심비오즈, 볼보의 360C 등은 공통점이 있다. 과거 카울을 통해 분리되던 별도의 파워트레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전장과 휠베이스는 거의 차이가 없게 된다. 예컨대 시트로엥 19_19 콘셉트카는 전장이 4,655㎜에 불과한데 휠베이스는 3,100㎜에 달한다. 전장 5,462㎜인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50의 휠베이스가 3,365㎜라는 걸 감안하면 압도적인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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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 100주년 기념 전기 콘셉트카 19_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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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의 심비오즈 콘셉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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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의 360C 콘셉트카

이들 자동차의 휠베이스/전장 비율은 결국 안락한 거주성의 극대화에 있다. 해당 콘셉트카들 역시 운전자를 위한 기능은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취미활동’ 보조 수준이다. 이 단계에서 조종성을 위한 시트 포지션 등은 큰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시대가 수 년 내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자율주행의 완성도는 요원하다. 하지만 위 콘셉트카의 캐빈이 지향하는 공간성은 바로 FF 레이아웃이 지향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거주성 면에서는 FF 레이아웃의 세단들이 강점을 갖고 있다. 위 콘셉트카를 개발한 제조사들 역시 FF 레이아웃에 강점이 있던 제조사라는 점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전기차 중에도 푸조의 504 e-레전드 콘셉트카나 볼보의 폴스타처럼 과거 후륜 구동 쿠페의 비례감을 강조한 차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차들이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대의 미학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재 의례적∙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문구인 ‘긴 휠베이스, 휠센터와 대시보드까지의 거리 확장’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 볼 시기가 아닐까.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