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와 페라리의 실제로 있었던 대결을 제작한 영화 ‘포드 v 페라리’가 우리나라에서 12월 15일 개봉한다. 북미에서는 우리나라 보다 한달 앞선 11월 15일에 개봉 예정이며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기대 받고 있는 작품이다. ‘로건’으로 유명한 제임스 맨골드가 감독이며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포드와 페라리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포드는 세계 최초의 분업시스템을 통해 생산된 포드 모델 T로 자동차의 대량 생산과 보급에 성공한 자동차 제조사이고, 페라리는 말이 필요 없는 이탈리아의 슈퍼카 및 레이싱카 제조사다. 태생부터 교차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제조사들이 왜 같이 언급되고 영화로 만들어 졌을까?
그 사연을 알려면 1950년대로 올라가야 한다. 지금도 강자이지만 당시 페라리는 말그대로 모터스포츠를 장악하고 있었다. 특히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1923년 시작) 가장 거칠기로 유명한 르망 24시는 페라리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페라리는 1949년 르망 24시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54년, 1958년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 후 1960년부터 1965년까지는 6년 연속 우승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르망 24시에서 승승장구했다.
포드 역시 모터스포츠에 힘썼지만 무대는 제한적이었다. 북미에서 진행되는 인디카 레이스, 나스카에서 다수의 우승을 거두었지만 포드로서는 이에 만족할 수만은 없었다. 포드 역시 르망 24시 등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모터스포츠에 출전해 우승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 포드로서는 기술력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포드에 기회가 찾아온다. 각종 모터스포츠에서 연패를 이어나가던 페라리가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1963년 포드는 페라리를 한화로 약 192억원에 인수하기로 했고 엔초 페라리도 동의했다. 그런데 계약 당일 포드가 작성한 계약서에 페라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바로 페라리의 모터스포츠 부서인 스쿠데리아 페라리까지 인수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페라리 경영권만 매각해 회사 경영을 포드에 넘기고 본인은 모터스포츠에 몰두하고 싶었던 엔초 페라리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조건이었다. 당연히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페라리를 이기기 위한 포드의 무모한 도전
이에 포드의 CEO였던 헨리 포드 2세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였고 페라리를 완전히 박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10달 안에 르망 24시에서 페라리를 이길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10달 내에 24시간 동안 약 5,000km를 300km/h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면서 한번도 고장 나지 않는 차를 만들라는, 당시 포드의 기술력으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지시였다. 하지만 포드의 엔지니어들은 밤을 새워가며 첫번째 레이싱카 포드 GT40를 만들어 냈다. 참고로 포드 GT40의 40이라는 숫자는 차량의 전고가 40인치(1,016㎜)인 데서 유래했다.
최초의 포드 GT40는 4.2리터 V8엔진을 얹어 320km/h로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고속 주행 중에도 휠스핀이 일어날 정도로 섀시 제어가 불안정했고 심지어 테스트 도중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1964년 르망 24시에 출전했다. 당연히 출전한 레이스카 모두 리타이어하며 한대도 완주하지 못했다. 반면 페라리는 1, 2, 3등을 모두 석권하며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이 후 포드는 레이서 겸 모터스포츠팀 감독으로 유명한 캐롤 쉘비와 미국 최고의 레이서 켄 마일즈를 영입했다. 이들이 바로 ‘포드 V. 페라리’의 주인공들이다. 영화에서 캐롤 쉘비는 맷 데이먼이, 켄 마일즈는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다. 이 둘의 영입으로 고속에서 불안정했던 움직임 등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부족했고 1965년 르망 24시 대회에서도 페라리에게 패배했다.
2번의 패배 이후 1966년, 포드는 당시 선진기술인 컴퓨터 트레이닝을 도입하는 한편, 쉘비, 마일즈의 노력으로 안정적으로 337km/h로 달릴 수 있는 최종버전 포드 GT40를 완성했다. 하지만 페라리도 그 사이에 가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페라리는 전고가 950㎜, 무게는 851kg에 불과한 330 P3를 만들었다. 이는 포드 GT40 보다 66㎜더 낮고 366kg 더 가벼운 수치다.
그러나 330 P3에도 약점은 있었다. 최고속력이 310km/h로 포드 GT40의 337km/h 보다 느렸다. 전체적인 출력을 조금 희생하고 높은 가속력과 민첩한 운동성을 구현하기 위한 엔초 페라리의 전략 때문이었다. 또한 무게가 가벼워서 피트 스톱 횟수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페라리 측은 최고 속력은 큰 약점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낳은 의외의 결과
대망의 1966년 르망 24시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페라리 소속의 레이서 존 서티스가 갑자기 참가를 포기한 것이다. 존 서티스는 모터사이클 GP(이하 모토 GP), F1, 르망 24시 등 전세계 유명 레이스에서 항상 우승을 놓친 적이 없는 전설의 레이서였다. 이런 존 서티스가 참가를 포기한 이유는 부상 이력과 임원들의 사내 정치 때문이었다. 실력은 좋았지만 1965년에 척추와 다리가 부러지고 신장이 파열되는 큰 사고를 당해 페라리의 임원들은 그가 참가해도 우승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대회 시작 바로 직전에 존 서티스를 퇴출시키고 다른 레이서를 투입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분이 상한 존 서티스는 그 길로 페라리와의 오랜 인연을 끊고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그런 상황에 시작된 1966년 르망 24시는 정말 치열했다. 초반에는 포드가 선두였으나 중반에는 포드의 출전 차량 8대 중 4대가 리타이어 했고 가볍고 민첩한 페라리가 다시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경기 후반 켄 마일즈의 활약과 페라리의 출전 차량 3대가 나란히 리타이어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마침내 포드는 1, 2, 3 피니쉬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로도 1697, 68, 69년 르망 24시에서 우승을 하며 4연패를 달성했다. 물론 포드의 르망 24시 첫 우승 이후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형 포드 GT40을 테스트 하던 도중 사고로 포드의 르망 첫 우승 공신인 켄 마일즈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영화 ‘포드 V. 페라리’는 이런 실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포드’와 ‘페라리’ 사이에 VS(versus)가 아니라 V인 것도 포드가 페라리를 이기기 위해 겪었던 지난한 과정에서의 드라마임을 짐작케 한다.
통상 실화 기반의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이들이 내용과 결말을 알고 있는 상황이다.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으로도 박진감 넘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과연 영화는 어떻게 이 실화 속에 담긴 깊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현재로 이끌어내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풀어낼지 매우 기대가 된다.
글
정휘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