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국내 중형차 시장의 영원한 2인자일 것 같던 기아차의 K53세대 모델의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동차의 디자인이 책임디자이너 한 사람만의 공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큰 변화를 이끌어낸 스타급 디자이너 카림 하비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K5에 이르기 이전까지 그의 굵직한 디자인 이력과 특기할 만한 점을 살펴보았다.

다재다능형 코스모폴리탄의
CV를 훔쳐보다

CV(Curriculum Vitae, 생애 이력)으로 본 카림 앙트완 하비브는 다재다능한 엘리트 그 자체다. 캐나다 맥길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아트센터 디자인 오브 컬리지(스위스, 미국)에서 운송 디자인을 전공하고 1998년에 BMW 디자인팀에 입사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태생의 캐나다인이다. 현재 그의 상사인 루크 동커볼케처럼 하비브 역시 다양한 언어에 능통한 코스모폴리탄으로, 아랍어에 익숙하고 프랑스,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구사한다. 청소년 시절 캐나다 펜싱 대표팀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심플하면서도 과감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미국의 미술가 마크 로스코의 미니멀리즘적 표현 기법,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디자인,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또한 비롯해 전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디자이너 로난 & 에르완 부를렉 형제 등과도 교분이 있다. 이런 배경을 통해 BMW 7 시리즈와 몽블랑과의 협업 등을 주도하는 등 BMW 그룹의 디자인적 외연 확장에도 힘썼다.

비교적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인피니티에 몸담았던 24개월간은 카림 하비브의 디자인 커리어 중에서 가장 실험적이었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영감 받았다고 꼽는 건축가들의 디자인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예컨대 2019년 선보였던 인피니티의 콘셉트카 Q 인스퍼레이션은 전체에서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적인 곡면을, 측면 디자인에서는 렘 콜하스의 건축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면처리를 떠올릴 수 있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내홍이 아니었다면 그가 보다 멋진 신차를 선보일 기회가 있었겠지만 인연은 201910월까지였다.


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2019년 인피니티 Q 인스퍼레이션 콘셉트카의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 카림 하비브

이 외에 그는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에도 몸담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의 메르세데스 벤츠 재직 기간, 그는 하이브리드 콘셉트카인 F800C클래스(W205)를 디자인했. 그러나 그의 외도는 짧게 끝났고 2011BMW로 복귀해 대중적 쿠페인 4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 디자인 등을 맡았다. 그의 소셜 커리어 서비스 계정 링크드인에도 메르세데스 벤츠의 이력은 없다. 다만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임 회장인 디터 제체 회장은 여전히 인맥으로 이어져 있다. 참고로 그의 링크드인 인맥에서는 사업가로 변신한 배우 제시카 알바 등이 눈에 띈다.


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하이브리드 콘셉트카 F800

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W205 C 클래스

독보적 아이디어의 소유자,
기아차와 궁합은 잘 맞을까?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분야의 계간지 <몽테크리스토>2016,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하며, “자기 과잉의 시대에 적정 수준을, 카피캣의 시대에 자신만의 길을 지키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일정 수준 예술적 자질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지만 카림 하비비브는 그가 풍기는 독특한 아우라 때문인지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경향이 조금 더 강하다.

그래서 기아자동차와의 호흡이 어떤 시너지를 이루게 될지는 더욱 관심을 끈다. 어찌 됐든 그는 대중적인 브랜드보다는 같은 세그먼트에서도 평균적으로 가격이 20~30% 비싼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량, 그것도 후륜 구동 차량을 중심으로 디자인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디자인적 제약이 큰 FF(프론트쉽 전륜 구동) 차량을 디자인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잠시 상기해볼 또래 디자이너 두 명이 있다. 바로 푸조의 디자인 수장 질 비달과, 2017BMW M 출신으로 기아차로 왔다가 PSA 그룹으로 1년만에 이적한 피에르 르클레어다. 질 비달은 시트로엥에서 시작한 PSA 순혈로 FF 레이아웃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늘씬한 비례감 등 디자인적 가치를 끌어내는 데 달인이다. 최근 그는 푸조의 주요 클래식 라인업들을 전기차로 재해석한 레전드 시리즈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기아차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피에르 르클레어도 전륜 구동이 중심인 PSA 그룹의 럭셔리 브랜드 DS로 이적했다. DS 역시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중심으로 한 신차를 개발 중이다. PSA 그룹의 경우는 강력한 전동화 드라이브를 통해 구동 레이아웃으로 인한 디자인 한계를 탈피해가는 중인데, BMW M 출신의 르클레어는 이러한 방향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푸조의 디자인 수장 질 비달(오른쪽)

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2017년 기아차에 부임했다 1년만에 PSA 그룹의 DS로 이적한 피에르 르클레어

따라서 앞으로 하비브의 성과 및 행보는 자연스럽게 질 비달, 피에르 르클레어와 함께 언급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적 차량을 중심으로 하는 브랜드에 몸담은 스타 디자이너이자, 유럽 시장에서는 일부 세그먼트를 통해 경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리비아(잡학)적 내용이긴 하지만 그는 5라는 숫자와 인연이 있다. 기아자동차의 K5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으로 디자인 프로젝트에 투입된 것도 5세대 5시리즈(E60)의 인테리어였다. 이는 거의 그가 입사하자마자 참여한 프로젝트로 BMW에서의 커리어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기아차의 3세대 K5

또한 그가 메르세데스 벤츠로부터 BMW로 복귀 후 디자인을 맡은 7시리즈 역시 5세대(G11)였다. 42세인 2012년부터 BMW의 디자인 수장을 맡아 선행 디자인과 주력 럭셔리 차종들의 디자인을 이끌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5세대 7시리즈의 전기형은 그의 BMW 커리어에서 정점이라 할 만하다.


기아차 K5 ‘대박’ 디자인 견인한 카림 하비브의 포트폴리오는?
몽블랑과의 BMW의 협업

만약 그가 추후 BMW로 복귀하지 않고 기아자동차에 오래 남는다면, 또 다른 5세대째의 차량들이 그의 손에 당첨될 확률도 있다. 통상 선행 디자인은 5년 전에 이루어지는데, 그렇다면 사실 이번 K5는 카림 하비브가 전적으로 맡은 디자인이라기보다는 약간 손을 본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약 5~6년 후에 선보일 쏘렌토의 5세대가 기아차에서 그의 오리지널이 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또한 이미 어느 정도의 디자인은 나와 있겠지만 5세대의 스포티지 역시 그의 손을 좀 더 거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현대기아차의 디자이너 수집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과거에 비해서는 개선됐지만 일부 품질 문제, 파워트레인 개발의 한계 등이 비판의 요인이다. 타당하고 일리 있는 의견들이다. 그러나 자동차의 외관은 도시의 풍경을 다채롭게 하는 공공디자인적 성격도 갖고 있다. 멋진 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의 디자이너가 국산차 제조사에 영입되어 나쁠 것은 없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실제 계약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친 3세대 K5의 디자인은 분명히 한국 자동차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림 하비브가 자신의 오리지널 디자인 차량에서 계속 이러한 센세이션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한명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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