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배터리굴기’, 이대로 항복해야 하나?

전기차의 활성화는 국제 정치경제 면에서 의외로 첨예한 사안을 수면으로 띄우고 있다. 바로 배터리 제조와 에너지 패권 문제다. 특히 중국 정부가 막대한 국가 예산 투입, 저개발 국가의 광산 매입 등을 기반으로 지원하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성장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도 미치게 된다. 이번 콘텐츠에서의 중국의 배터리굴기(崛起: 크게 일어남)’ 현황과 그에 대한 세계 주요 배터리자동차 제조사의 대안 및 한국 기업들의 위기 돌파 노력 등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삼성 SDI의 BMW 배터리 공급 계약,
중국 CATL 계약 규모의 절반 이하

지난 11 22, BMW는 본사 이사진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천안에서 삼성 SDI와의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계약 규모는 2031년까지 29억 유로, 한화로 3 7,800억 원 수준의 계약이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엔 ‘씬 스틸러’가 있었다. 바로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의 공급계약 규모다. CATL의 공급 계약액수는 동 기간 73억 유로, 한화로 9 4,350억 원에 달한다. CATL의 계약 규모가 삼성이 맺은 계약의 2.5배가 넘는다.

CATL이라는 기업의 이름은 전기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산업부 기자들뿐만 아니라 자동차 분야 기자들도 최근 받는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전기차 관련 보도자료에서 수시로 이 회사명을 보게 된다. 현재 세계 1위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닝더스다이(寧德時代) 신에너지 유한공사의 약칭이다. 삼성 SDI, LG 화학, 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주요 한국 기업들에게는 무서운 경쟁자다.

중국 정부 차원의 지원,
기술력도 한국 기업 턱밑

물론 CATL의 기술 수준이 삼성 SDILG 화학만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구개발비도 매년 매출의 7~8% 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준이어서 격차는 더욱좁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한 전문 연구기관이 CATL의 배터리를 분해, 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이 채 양산화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온 바 있다.

중국에서 이런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당연히 중국 공산당의 든든한 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은 높은 배터리 안전 기준을 정하고 이를 통과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화이트리스트제도를 시행해 왔다. 그리고 이는 해외 제조사에게는 일종의 장벽으로 기능해 왔다. 이미 중국 자동차 기업들도 기술력을 인정하는 LG 화학과 SK 이노베이션의 배터리도 불과 2019년 말에 들어와서야 이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한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에 대한 한한령의 영향이라 하지만, 이는 사실 명분이고 중국 기업의 기술 개발을 위한 시간 벌어주기의 조치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의 ‘배터리굴기’, 이대로 항복해야 하나?
CATL의 배터리 출하량 성장세(출처: https://www.catlbattery.com)

중국의 자국 산업 보호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강대국들의 기본 스탠스이기는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중국 EV 시장의 규모가 전세계의 80%이상을 차지한다는 점과 맞물려 상황이 심각해졌다. 특히 배터리의 원료가 되는 희토류의 경우, 중국 내 생산량 통제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 광산의 매입 등으로 독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비호 기조로 성장한 것은 CATL만이 아니다. 비야디(BYD) 역시 2위 제조사인 파나소닉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최근 중국 내 3위급의 배터리 제조사인 옵티멈나노에너지 사가 파산했지만, 이는 중국 정부가 경쟁력 있는 제조사에 힘을 집중시키려는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배터리굴기’, 이대로 항복해야 하나?
BYD는 배터리와 자동차는 물론 다양한 신에너지 기술 산업에서 세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맞불’ 프랑스, ‘이이제이’ 일본
‘합종연횡’ 한국?

또한 CATL, BYD는 중국 내 각 자동차 제조사들과 함께 공동 연구개발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어차피 자국 EV 시장이 전세계 EV 시장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중국의 EV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또한 글로벌 생산 시설 강화로 자국 외 전기차 시장에서의 배터리 점유율도 높이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CATL은 독일 튀링겐 주 에르푸르트에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 시설을 건설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EV 배터리 제조 산업과 전동화 파워트레인 전략에 솟아날 구멍은 있을까? 일본 토요타와 프랑스의 경우는 하나의 힌트다. 일본 토요타는 지난 7CATL과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지만 한편으로는 CATL의 경쟁 업체인 BYD 그리고 자국 기업인 파나소닉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비용에서 매력적인 중국 제조사를 택하되 한 쪽에 힘이 쏠리는 것을 막겠다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화이트리스트 해제 시점 이후에는 결국 중국 자국 기업끼리도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100년 넘은  업력과 그로 인해 범접할 수 없는 기술력의 자국 기업의 존재를 과시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중국의 ‘배터리굴기’, 이대로 항복해야 하나?
2020년 하반기 첫 선을 보일 렉서스의 첫 EV UX 300e


중국의 ‘배터리굴기’, 이대로 항복해야 하나?
렉서스 UX 300e의 배터리 배치

프랑스 PSA 그룹은 자국의 배터리 생산 기업 사프트(Saft)와 손잡고 32GWh 급의 배터리를 출하할 생산 시설을 직접 건설할 예정이다. CATL의 에르푸르트 배터리 생산 시설에 대한 강력한 견제 세력이 될 수 있다. PSA 그룹 역시 LG 화학과 CATL, 파나소닉 등 공급처를 다변화해 운용해왔는데, 막강한 화학 기술과 여러 특허를 보유한 프랑스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배터리 생산에 뛰어든다면 중국 업체들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PSA 그룹과 비슷한 방법은 거대 제조사와의 합작 법인 등으로 가능하다. 특히 지난 126, LG 화학은 GM3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오하이오 주 로즈타운에 건설할 예정이며 내년 착공에 들어간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매년 26%씩 성장하고 있고, 미국이 중국의 배터리 굴기를 경계하는 상황에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묘안이라 할 수 있다. 투자 규모는 LGGM이 각각 1조 원씩 50:50이며 단계적으로 27,000억 원씩 늘려갈 계획이다.


중국의 ‘배터리굴기’, 이대로 항복해야 하나?
매리 배라 GM CEO(왼쪽)와 LG 화학 CEO인 신학철 부회장(오른쪽)

자국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 제조사가 협력을 강화하는 중국의 방식도 참고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방식은 결국 EV와 배터리의 최적 조합을 찾아내려는 정공법이다. 한국 자동차 제조사는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20191월에는 현대자동차의 전기차인 코나 일렉트릭과 수소연료전지 전기차인 넥쏘가 <워즈오토>가 선정하는 세계 10대 엔진에 꼽혔고, 다양한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은 희토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메리트도 있다. 쉽진 않겠지만, 양적으로 승부할 수 없는 한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다.

나폴레옹은 중국이 깨어나면 세계는 전율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고, 이는 200년 이후 적중했다. 중국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강대국의 내로남불식 자국기업 보호와 팽창주의 앞에, 그 어떤 말의 성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LG 화학이 보여준 것과 같은 실질적 움직임만이 답이라 할 수 있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