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 완성도와 판매량은 반드시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차종들은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가격이나 마케팅, 생산량 등의 문제로 단기간에 시장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국산 차종 중에서도 극소의 판매량을 보여줬지만, 마니아들은 인정하는 펀카가 많다.
아반떼 쿠페(2013-2015)
아반떼는 국내를 대표하는 준중형 세단으로, 현재도 사회 초년생의 첫 차로 많이 선택되는 모델이다. 이렇듯 아반떼는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차체에 부족하지 않은 출력으로 대중성을 지향한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반떼 스포츠 모델을 통해 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합리적인 펀 드라이빙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며, 국내 모터스포츠를 활성화 시켜주기도 한다.
이러한 아반떼 스포츠가 탄생하기 전, 아반떼에게도 스포티한 주행감을 선사하는 모델이 있었다. 5세대 아반떼(MD)를 베이스로 한 쿠페 모델은 세단 모델과 비슷한 가격대(1,645만원부터)임에도 불구하고, 1.6L 배기량의 엔진을 장착한 세단 모델과 달리 2.0L 엔진을 장착했다. 그 밖에도 더 단단한 서스펜션 및 32비트 MDPS를 적용해 더욱 날카로운 조향 응답성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소비자에게는 세단 모델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은 디자인, 쿠페 차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채용하지 않은 부분, 현대차의 벨로스터와 기아차의 K3 쿱 터보와 겹치는 시장성으로 인해 저조한 판매량을 보여줬다. 일례로 아반떼 쿠페는 2014년 상반기, 48대 판매에 그치며 현대차의 목표인 연 5,000대 판매량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때문에 현재, 중고차 시장에서 아반떼 쿠페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아반떼 쿠페의 수동 변속기 모델은 더욱 찾기 힘든 모델로 꼽힌다. 하지만 아반떼 쿠페 수동 모델은 1,216kg의 가벼운 공차중량에 173ps의 최고출력과 21.3kg⋅m의 최대토크로 경쾌한 움직임을 만들어주며, 현행 아반떼에서는 찾을 수 없는 2.0L 직분사 엔진을 적용했다는 점,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연식이라는 점에서 펀 드라이빙을 위한 합리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희소성으로 인해 최근에는 중고차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도, 소유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베오 RS 터보(2013)
쉐보레 아베오는 국내 소형차 판매시장에서 ‘만년꼴찌’ 꼬리표를 달고 있는 모델이다. 때문에 공공도로에서는 쉽게 만나보기 힘들지만, 의외로 서킷에서만큼은 종종 만나볼 수 있다. 동급 경쟁모델에 비해 우수한 출력과 차체강성, 저렴한 중고가액으로 서킷 입문용으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아베오 RS 터보 모델은 2013년 11월에 추가된 스포츠 트림으로, 타이트한 1, 2, 3단 기어비로 펀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이다. 또한 스포티한 성향을 갖춘 서스펜션과 동급 대비 우수한 자세제어장치로 안정적인 선회 성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베오 RS 터보 모델은 기본 모델보다도 더욱 처참한 판매량을 보여주며, 지난해 1분기에 모든 아베오 트림이 국내시장에서 단종됐다.
아베오 및 RS 터보의 판매 실패 요인으로는 크게 가격정책과 튜닝의 한계성, 수동트랜스미션의 부재가 있다. 먼저 아베오는 전반적으로 당시 경쟁 차종이었던 현대 엑센트나 기아 프라이드에 비해 비싼 가격이었는데, 소형차의 주 구매층이 가격에 민감한 사회 초년생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아베오 RS 터보 모델 역시 펀드라이빙을 즐기는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일부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마니아층의 경우, 보다 스포티한 주행을 위해 튜닝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베오의 경우 애프터마켓 튜닝 데이터도 부족하며 파츠 수급도 어려운 편이었다. 또한 작은 엔진룸에 1.4리터 터보 엔진을 장착해 높은 출력을 위한 엔진 튜닝도 어렵다.
그밖에 서킷 주행을 즐기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수동변속기의 부재 역시 아베오 RS 터보의 문제점으로 꼽는다. 수동변속기는 자동변속기에 비해 가벼워 공차중량을 줄일 수 있으며,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기어 변속이 가능해 보다 운전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반떼 스포츠와 같은 스포티한 성향의 차량은 구매자 중 수동 변속기 모델을 고른 경우도 많은데, 그 중 많은 수가 서킷 주행을 취미로 삼거나, 수동변속기 특유의 주행 감성을 그 이유로 꼽는다.
GM 대우 G2X(2007-2008)
위 두 모델이 스포티한 성향의 펀카라면, GM대우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수입하여 판매한 G2X는 ‘스포츠카’로 부를 수 있는 모델이다. 또한 1996년 기아자동차의 엘란 이후 국내 제조사가 판매한 차량 중 처음으로 소프트톱을 장착한 컨버터블 차량이었다. 하지만 당시 4,460만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으로 누적 판매량은 109대에 불과했고 출시 1년만에 수입이 중지됐다.
물론 차량의 공력성능만 본다면 당시 국산 차종 중에는 G2X를 따라올 모델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모델이다. 당시 국내에는 최고출력 264ps을 발휘하는 2.0리터 가솔린 모델이 수입되었으며 미국차답게 푹신한 시트를 적용해, 서스펜션이 하드하게 세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차감이 우수한 편이었다.
그밖에 G2X는 스포츠카임에도 불구하고 유지 관리비용 및 튜닝비용도 합리적인 모델로 꼽혔다. 2.0리터 엔진을 장착해 자동차세가 비싼 것도 아니었으며, 일부 하체 부품은 당시 출시됐던 말리부와 호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터보 엔진을 적용해 36.0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는데, 이는 휠의 세팅값에 따라 경쾌하고 가벼운 주행감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G2X에게는 높은 가격 이외에도 소비자가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했다. 먼저 당시 6단 자동변속기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구형의 5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했으며, 국내 시장에서는 수동변속기 모델을 수입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 밖에도 기아 엘란, 쌍용 칼리스타 등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에 있어서는 실패했던 국내 차종들은 여럿 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듯이 이러한 실패를 통한 기술 축적(흡수를 포함한)은 소비자들이 보다 합리적으로 우수한 차량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앞으로도 수익 보다는 기술적 발전을 위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새로운 시도를 기대해 본다.
글
양완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