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의 역사에서도 미국은 유럽과 그 스타일을 달리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포드 머스탱, 쉐보레 카마로와 같은 자동차들은 대배기량을 내세운 투박한 머슬카였고 람보르기니, 페라리, 포르쉐 같은 모터스포츠 기반의 기술집약적 슈퍼카 제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에 제랄드 위거트(Gerald Wiegert)라는 남자가 미국에도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 제조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역사상 가장 황당하고 미친, 슈퍼카 제조사를 설립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바로 벡터 모터스를 살펴본다.
타도 유럽을 외진 벡터 모터스의 첫 시작
벡터 모터스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한 슈퍼카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절대 빠지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슈퍼카 제조사다. 벡터 모터스의 전설은 1971년, 제랄트 위거트가 설립한 ‘비히클 디자인 포스 에서 시작됐다. 이후 1978년, 보다 멋있는 ‘벡터 모터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벡터 모터스에서 제작한 슈퍼카는 W2, W8, WX-3, M12, SRV8, WX-8 이렇게 6종류이다. 그러나 이 중 실제로 제작 및 판매까지 이어진 차종은 W8, M12뿐이이고 나머지는 프로토타입만 존재할 뿐 실제로 양산되지 못했다.
벡터 모터스의 첫 번째 슈퍼카, 벡터 W2는 1976년 LA 오토쇼에서 처음 선보인 후 1978년 프로토타입을 생산해 각종 매체들에게 공개했다. 당시 W2는 쉐보레의 5.7리터 V8엔진을 탑재, 최고출력은 608ps, 최대토크는 83.0kg·m를 발휘했다. 이차의 제원 상 최고속도는 현재 기준으로도 빠른 390km/h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벡터는 의심 많은 사람들을 위해 보네빌 소금평원에서 직접 인증했다. 물론 양산차량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못했다. 참고로 당시 벡터가 타도 목표로 삼았던 유럽산 슈퍼카들의 최고출력을 살펴보면 람보르기니 쿤타치가 455ps였으며 페라리 BB 512가 365ps였다.
작명은 흔하디 흔한 알파뉴메릭(알파벳과 숫자 조합)이지만 여기에도 제랄드 위거트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 W2의 W는 제랄드 위거트 본인의 성에서 따왔고 숫자 2는 터보차저의 개수를 의미한다. 즉, W2는 5.7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첫 번째 자동차임에도 이름이 W1이 아닌 W2인 것이다. 이처럼 벡터 모터스는 독특한 콘셉트의 W2로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0→100km/h 3.9초, 하지만
와이퍼는 설계미스? 벡터 W8
이후 벡터 모터스는 1989년 W8을 출시한다. 벡터 W8는 프로토타입이었던 벡터 W2를 기반으로 차체를 더욱 공력 성능을 강화하고 파워트레인을 개선했다. 특히 개선된 파워트레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6.0리터 트윈터보 V8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이 634ps였으며 부스트압을 14psi까지 올렸을 경우 최고출력이 무려 1,217ps까지 상승한다. 최대토크는 89.7kg·m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람보르기니 디이블로가 492ps, 페라리 F40이 478ps, 포르쉐 959가 450ps라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강력한 출력인지 이해하기 쉽다.
또한 강력한 출력과 토크를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구동륜인 후륜 타이어의 폭이 315㎜에 달했고 고성능 알콘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는 이런 강력한 출력을 감당할 변속기가 없었다. 고심 끝에 벡터는 정말 터무니없게도 GM의 3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출시했다. 물론 벡터에서 주장하는 최고속도는 390km/h, 정지상태에서 96km/h(60마일)까지 가속 성능은 3.9초였다.
벡터 W8은 디자인도 매우 특이했는데 벡터 측은 1968년에 나온 알파로메오 카라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람보르기니처럼 위로 열리는 도어는 창문이 바디 라인을 따라 각진 형태여서 만약 유리창이 깨지면 벡터 모터스에서도 수리가 불가능했다. 또한 전고가 1,080mm로 매우 낮았으며 낮은 전고 때문에 앞유리 각도가 비이상적이었다. 때문에 낮고 길쭉한 앞유리를 닦을 수 있도록 윈도우 와이퍼가 조수석 쪽에는 정상적으로 1개이며 운전석 쪽에는 와이퍼 2개를 ㄱ자로 형태로 연결해 무려 3개나 장착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작동시키면 서로 뒤엉키며 제대로 닦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벡터 W8의 백미는 실내다. 디지털 속도계를 비롯해 주행 시 필요한 모든 조작 버튼들이 스티어링 휠 왼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3단 자동변속기의 레버는 놀랍게도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가 아닌 운전석 쪽 도어에 달려 있었다. 이 밖에도 옆 창문은 독특하게 상·하가 아닌 좌·우로 움직이는 미닫이 방식을 적용했으며 게다가 전동식이었다. 이처럼 벡터 W8은 독특한 디자인과 성능에도 불구하고 1989년부터 1993년 단종될 때까지 단 22대만 판매됐다.
람보르기니와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이후 1992년 후속 모델인 벡터 WX-3를 개발했는데 W8보다 배기량을 늘린 7.0리터 트윈터보 V8 엔진을 사용했다. 최고출력은 608ps에서 1,217ps로 W8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변속기도 기존에 사용하던 3단 자동변속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물론 실내 디자인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W8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W8에서 지적 받았던 왼쪽에 몰려 있는 버튼 및 속도계와 운전석 도어 바로 옆에 위치한 변속기 레버 등 구성은 기존과 동일했다. 쿠페 버전과 로드스터 버전 프로토타입 2대가 제작됐으며 1993년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까지 했으나 회사가 망하면서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벡터는 메가테크라는 회사에 인수되고 1995년 새로운 후속 모델 M12를 출시한다. 미국산 V8 엔진을 사용했던 이전과 달리 M12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에 탑재된 5.7리터 V12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다. 이는 당시 벡터의 모회사 메가테크가 크라이슬러로부터 람보르기니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물론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팔았다.
그래서 이전과 달리 최고출력이 매우 현실적인 500ps였다. 0→96km/h 가속성능은 4.8초이며, 최고속도는 305km/h로 처음으로 정상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했다. 람보르기니와 자매 회사였기에 전체적인 외관은 프로토타입 WX-3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를 적절하게 섞어 놓은 듯한 디자인이었다. 실내도 비정상적이었던 속도계 및 변속기의 위치를 정상적으로 되돌렸다. M12는 전체적으로 정상적인 모습으로 출시 했으나 1996년부터 1999년 단종될 때까지 17대만 판매됐다.
1999년 람보르기니 5.7리터 엔진을 버리고 다시 GM LT1 V8엔진을 사용하고 포르쉐의 수동변속기를 조합한 SRV8을 선보였다. 그러나 벡터 모터스를 소유하고 있던 메가테크가 망하면서 벡터 SRV8은 공개 며칠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광기는 계속된다.
벡터 모터스
벡터 모터스의 소유권은 다시 제랄드 위거트에게 넘어가고 위거트는 다시 벡터를 부활시키기 위해 WX-8을 제작했다. 2007년 LA 오토쇼에서 공개한 WX-8은 쉐보레 카마로와 토요타 MK4 수프라를 섞어놓은 듯한 충격적인 디자인으로 나왔으며 다시 인증되지 않은 미친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그리고 2018년 아직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공식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WX-8의 사진과 스펙을 공개했다.
이후 2018년 다시 세상에 공개된 벡터 WX-8은 스몰 블록과 빅 블록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먼저 스몰 블록은 기존에 알려진 7.0리터 V8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방식이 아닌 7.8리터 V8 엔진이 탑재되며 자연흡기와 슈퍼차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기본 자연흡기는 최고출력이 760ps이며 0→96km/h 가속성능은 2.7초, 최고속도는 약 418km/h다. 그리고 슈퍼차저 버전은 최고출력이 무려 1,267ps이며 최고속도는 442km/h 이상이다.
다음으로 빅 블록의 성능은 더욱 가관이다. 엔진이 10.0리터 V8엔진이며 트윈 터보차저 옵션과 트윈 슈퍼차저 옵션이 마련되어 있다. 트윈 슈퍼차저의 경우 최고출력이 1,470ps이며 트윈 터보차저 버전은 1,876ps에 달한다. 정지상태에서 96km/h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사양에 따라 3.5초에서 2.3초이며 최고속도는 482km/h다.
이 황당한 출력을 발휘하는 엔진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 엔진블록에 단조 피스톤과 크랭크샤프트를 사용, 피스톤과 크랭크샤프트는 티타늄 커넥팅로드로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알루미늄 합금 실린더 헤드와 흡기 및 베기 밸브는 스테인리스로 재질로 제작했다. 또한 강력한 출력을 견딜 수 있는 4, 6, 8단 반수동 변속기도 적용했다. 황당한 스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WX-8은 미쉐린 XGT 315/45ZR 19인치 타이어를 사용한다.
이렇게 엄청난 성능에도 WX-8의 제원은 전장 4,368㎜, 전고 1,104㎜, 휠베이스가 2,743㎜에 전폭이 2,032㎜이며 최저 지상고는 140㎜다. 이 작은 차체에 무식하게 거대한 엔진과 변속기를 탑재하는 것은 물론 안전을 위해 실내에 롤케이지까지 장착되어 있으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에어컨, 스테레오, 선루프 그리고 전동 트렁크까지 적용된다는 것이다. 외관은 람보르기니 우라칸과 가야르도, GTA 스파노, 맥라렌 570 등 온갖 슈퍼카들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차 빼고는 모든 것이 엉성한 제조사
벡터 모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실사 이미지와 상세한 제원표까지 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만든 듯한 퀄리티의 홈페이지 상태부터 신뢰도가 확 떨어진다. 그리고 실제 자동차 사진은 없고 오직 3D 그래픽 합성 이미지만 있다. 또한 프로토타입을 제작 중이라며 올린 실사들을 보면 어딘가 미심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