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에 신음하는 중국의 ‘모타운’, 각 제조사의 현황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 감염증으로 중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확진자가 나와 각국마다 비상 대응을 진행 중이다. 감염증인 폐렴 증상은 우한 폐렴이라고도 불린다. 진원지가 후베이성 우한 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우한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와 중국 제조사 합작 법인의 본부가 다수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전염의 최소화를 위해 춘절(음력 설) 연휴를 연장한다고 밝혔는데, 이로 인한 영향 등은 어떠할지 간략히 살펴보았다.

유서 깊은 중국 ‘돈맥’의 중심

우한[武漢]은 후베이성[湖北省]의 성도다. 후베이성의 후[(호수 호)]는 중국에서 4번째로 큰 호수이자 중국 문학 작품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동정호다. 이 호수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이 각각 후난 성과 후베이성이다.

특히 후베이성의 우한은 중국 문명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한대에 이미 큰 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발달한 수운을 기반으로 자본이 집중되고 산업도 발전했으며, 청대에 이르러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사회주의 경제 체제인 중국이 1990년대 초반 산업 생산과 외자 유치에 특화된 경제 특구를 지정할 때 우한이 들어간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반영된 것이었다. 역시 광학, 통신 등 첨단 연구기업들이 자리잡은 기술 경제 특구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루이뷔통, 펜디, 구찌, 발렌시아가, 카르티에 등의 제품 공장도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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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도심

중국 자동차 산업의 중추 우한,
각 제조사별 생산 차질은 없을까?

이 우한은 수 년 전부터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중국의 자동차 산업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 5대 자동차 제조사인 둥펑(东风公司)의 본부가 있다. 또한 혼다, 르노, 푸조 등 글로벌 제조사들도 중국 주요 제조사들과 만든 합작법인의 본부나 공장을 두고 있다.

중국 내 및 글로벌 시장에서 우한 지역에 위치한 이들 제조사 공장들의 생산량 비중도 작지 않다. GMSAIC(上海汽, 상하이자동차)의 합작법인 공장은 중국 내 GM 생산 인력의 10%를 차지한다. 르노의 경우는 우한 공장에서 대표적 인기 SUV인 콜레오스와 카자르를 생산하고 있다. 봉쇄된 우한 시민들 중에는 이 공장들의 생산 인력들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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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의 소형 SUV 카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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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의 중형 SUV의 콜레오스

사실 이 지역에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와 폐렴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에 들어오고 면역 체계와 싸우는 과정에서 독소를 내뿜는데, 이 과정에서 폐처럼 인간의 약한 세포막이 박테리아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발병하는 것이 폐렴이다. 우한 폐렴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2차적인 증상인 셈이다.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우한 폐렴의 치사율은 3% 수준으로,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원인인 2003년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이나 중동 급성 호흡기 증후군(MERS)보다는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우한 현지에서도 완치된 사람이 나오고 있고, 국내 확진자들 역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체가 생길 시간을 의료적으로 충분히 벌어 주고, 바이러스로 인해 약해진 몸에 박테리아가 번식하지 않도록 멸균 환경을 만들어주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만 중국에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인구 대비 낙후된 의료 체계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도 산업 차원에서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아직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한 자동차 공장은 더하다. 예컨대 MERS의 경우 완벽한 음압 환경 속에서 치료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감염자의 회복과 퇴원에는 최소 2주 정도가 걸렸다. 현재 중국의 병상 수는 OECD 평균치이긴 하지만, 우한 시의 경우는 인구 1,100만에 달하는 대도시다. 지역 의료 인력만으로 해결하기엔 무리가 있다. 내달 초 1,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응급 병상을 정부 차원에서 조성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 때까지 각 공장들의 정상 조업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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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펑자동차의 SUV AX7

이미 이곳에 파견된 각 글로벌 기업들은 자국 인력들을 철수시키고 있다. 특히 우한에 가장 많은 투자를 진행한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됭케르크 철수를 방불케 하는 탈출 작전을 진행 중이다. 지난 25, PSA 그룹의 경우 38명에 달하는 인력을 철수시켰다. 이 외에 혼다의 경우 약 30여 명을 철수시켰고 닛산도 주요 인력들을 철수시켰다.

이러한 본국 차원에서의 인력 철수는 중국 자동차 제조업에 있어, 적어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가볍지 않은 타격이 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직접 철수시킨 인력들은 상당수가 핵심 엔지니어나 기술 담당자들일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따라서 중요한 의사 결정 부분이나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어려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 당국이 전염병과의 전쟁까지 선포했지만 시기가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내 실적 하락세이던 제조사들
오히려 한숨 돌리나?

그나마 불행 중 덜 불행한 소식은, 2018년 기준으로 르노와 PSA 그룹의 경우 중국 내 판매량과 점유율이 다소 하락했다는 점이다. 특히 PSA 그룹의 경우는 2018년 대비 중국 내 판매량이 절반 정도 하락한 상황이었다. 철수가 진행되기 하루 전인 124, CNN과의 인터뷰에서 PSA 그룹의 담당자는, 우한 공장에서의 감산 논의는 따로 없지만 중국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민이 깊었던 차에 약간의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카자르와 콜레오스 도합 47,000대 이상의 생산량을 기록하며 나름대로 선전 중인 르노도 최근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탈출극 등으로 주가가 조금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우한 폐렴 사태로 인해 전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하락하면서 그들의 약세가 특별히 두드러지지는 않게 됐고, 얼라이언스 전체의 내홍도 덜 두드러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에게는 영향이 없을까? 중국에 법인을 두고 있는 주요 한국 기업들은 출장 자제령을 내리고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둥펑과 합작법인인 둥펑위에다기아를 운영하고 있는 현대기아차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둥펑위에다기아의 본부는 우한과 약 780km 정도 떨어져 있는 장쑤성 옌청 시에 있어 직접적 영향은 벗어나 있다.


바이러스에 신음하는 중국의 ‘모타운’, 각 제조사의 현황은?
기아자동차와 중국 둥펑의 합작 법인인 둥펑위에다기아

다만 감염보다 무서운 것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중국 전체의 산업적 침체다. 전염성이 강한 질병은 사회에 공포심을 유발한다. 횡행하는 가짜 뉴스는 중세 시대 전염병 앞에 떨던 사람들의 유언비어 유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로 인해 중국 사회가 활력을 잃는다면 중국 내에서의 생산이나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중국 역시 SARS나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 등 주요 인간, 동물 전염성 질병으로 인해 나름대로 경험치가 쌓였고 국가 차원에서의 해결책도 강구하고 있다. 시간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질병의 경우에도 그랬듯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약화되는 것이 수순이다. 국제 사회의 관심과 협조도 모아지고 있다.

질병은 한편으로 해당 사회를 성숙하고 겸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질병은 자본력과 국세(國勢)를 앞세우던 중국이, 고도 발전 과정에서 놓치고 있던 문제점의 발현이기도 하다. 첨단의 산업 도시를 지향하면서도 인적 자원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무관심, 낙후된 위생 수준과 식자재문화 등에 대해서는 중국 역시 내적으로 크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중국이 더 이상 속도전을 지향할 수 없다면, 향후 자동차 제조사를 포함한 한국 기업에 과히 부정적 시그널만은 아닐 것이다.


한명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