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만든 벤츠가 있었다고?!

최근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고성능 세단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태동기에는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 500E가 있다. 500E를 빼놓고 1990년대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500E1984년 출시된 W124 E 래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고성능 세단이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BMW M5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숨은 진주 같은 메르세데스벤츠 500E를 알아본다.

가장 완벽한 메르세데스-벤츠, W124

500E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W124 E 클래스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재 메르세데스볜츠를 대표하는 E 클래스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벤츠의 역사에 있어 매우 특별한 존재다. 네이밍부터 이전까지 이어 온 W123, W114처럼 알파뉴메릭 방식을 탈피했을 뿐만 아니라 벤츠의 4매틱 4륜시스템도 W124 E 클래스를 통해 최초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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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W124 E300d

또한 W124는 역대 벤츠 차종들 중 가장 우수한 내구성을 자랑하는데, 특히 독일에는 100km를 넘긴 W124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판 당시에도 전독일 자동차연맹 아데아체(ADAC)가 실시한 품질 조사에서 E세그먼트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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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500E

W124는 한국 자동차 시장과도 인연이 있다. 쌍용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인 체어맨이 W124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쌍용자동차는 이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기도 했다. 또한 덕분에 W124는 체어맨과 호환되는 부품들이 많아 수입차 치고는 비교적 리스토어가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쌍용자동차는 체어맨 외에도 렉스턴, 코란도 투리스모 등에도 W124 플랫폼을 사용했으며 2008년 등장한 체어맨 W W124의 후속인 W210의 플랫폼을 개량해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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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1세대 체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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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렉스턴

W124의 파워트레인은 2.0리터, 2.2리터, 2.3리터 직렬 4기통 엔진과 2.6리터, 2.8리터, 3.0리터, 3.2리터 직렬 6기통 등 다양한 엔진 라인업이 존재했다. 여기서 3.2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은 쌍용 체어맨에도 장착됐던 엔진이다. 변속기는 4단 및 5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는데 이 역시 체어맨에서 오랫동안 우려 먹었던 변속기다. 이 외에 4.2리터, 5.0리터, 6.0리터 V8엔진 사양이 존재했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손 잡은 포르쉐와 벤츠

메르세데스벤츠 500E의 탄생하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은 전세계적으로 경제 불황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였다. 특히 포르쉐는 1987, 현재 시판되는 포르쉐보다 더 빠를 뿐만 아니라 포르쉐 최초로 4륜구동 및 첨단 기술로 무장한 끝판왕 959를 출시했음에도 회사의 사정은 매우 힘들었다. 포르쉐의 생산 시설들이 조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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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59

물론 포르쉐도 분위기 반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964는 원가 절감을 위해 이전 세대인 930에 적용된 구형 3.3리터 수평대향 엔진을 탑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 효과는 없었고 964는 판매량 저조로 1989년 출시 이후 4년 만인 1993년에 단종되며 993으로 세대 교체됐다. 이전 세대인 포르쉐 930 1975년부터 1989년까지, 14년동안 판매된데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964는 현재 없어서 못 파는 희귀한 자동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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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64

반면 벤츠, 아우디, BMW, 폭스바겐과 같은 대중 차량 제조사들은 비교적 타격이 적었다. 당시 메르세데스벤츠는 새로운 고성능차 개발을 원했지만 새로운 S-클래스 개발로 일손이 부족했다. 그리고 포르쉐는 보다 대중적이고 경쟁력 있는 4도어 모델, 포르쉐 989를 개발하던 중이었다. 참고로 포르쉐가 개발하려던 989는 당시 포르쉐 최초의 2+2 그랜드 투어러 쿠페인 928를 휠베이스를 연장해 2열 도어를 추가한 형태였고, 파워트레인도 928에 사용된 V8엔진 및 변속기를 적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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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89

포르쉐가 만든 벤츠가 있었다고?!
메르세데스-벤츠 500E

그러나 포르쉐는 고성능 차량 개발 능력에 비해 세단을 만들어 본 경험이 일천했기 때문에 데이터가 부족했다. 때마침 들어온 고성능 세단 500E의 개발 요청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참고로 포르쉐는 989의 경쟁력을 비관적으로 보고 1992년에 그 개발 계획을 접었다. 그러나 포르쉐의 4도어 차량에 대한 꿈은 2009년에 포르쉐 파나메라로 다시 부활한다.

1대 제작 기간만 18일, 초대형 프로젝트

포르쉐가 참여한 벤츠 500E의 제작은 복잡했다. 먼저 벤츠가 W124의 섀시를 독일 주펜하우젠에 있는 로이터 바우 포르쉐 공장으로 넘기면 포르쉐는 기본 W124 섀시의 강성을 높이고 차폭이 넓히는 작업을 진행했다. 와이드 바디로 개조해 고배기량 엔진이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고 주행 안정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핵심이었다.


포르쉐가 만든 벤츠가 있었다고?!
메르세데스-벤츠 500E

포르쉐가 만든 벤츠가 있었다고?!
메르세데스-벤츠 500E

그리고 도색을 위해 독일 진델핑겐 벤츠 공장으로 차량을 전달했다. 도색이 끝난 차량은 다시 포르쉐 로이터 바우 공장으로 전달됐다. 여기서 5.0리터 V8엔진 등 벤츠에서 제공한 파워트레인 부품들을 포르쉐가 개조한 W124 차체에 장착하는 방식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델핑겐 벤츠 공장에서 최종 검수가 한 번 더 진행되었고 그 후에야 차량이 출고됐다. 이렇게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운송을 해야 했기 때문에 완성된 벤츠 500E 한대를 만들기 위해 약 18일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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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500E

메르세데스벤츠 500E의 엔진은 SL 클래스(R129)에 탑재된 M119 5.0리터 V8로 최고 출력은 326ps, 최대 토크는 48.9kg·m를 자랑했다. 0100km/h까지 가속 시간은 5.5초에 불과했고 최고 속력은 260km/h였다. 이는 당시 경쟁상대였던 BMW E34 M5 보다 강력한 퍼포먼스였다. 물론 최고출력은 340ps E34 M5가 살짝 더 높았지만 가속능력은 500E 0.5, 최고속도는 10km/h 더 빨랐다. 또한 1994년부터는 메르세데스벤츠 E60 AMG 6.0리터 V8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381ps이며 097km/h 5.3초에 불과한 E60 AMG를 선보였다.

포르쉐 파나메라, AMG E63의 진정한 전신

벤츠 500E 1991년부터 1995년까지 판매 및 생산됐다. 1994년부터는 W124의 이름이 메르세데스 벤츠 E 클래스로 바뀌면서 500E E500으로 바뀌었다. 그런 한편으로, 포르쉐 공장에서 생산됐기 때문에 포르쉐 타입 2758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고, 주펜하우젠의 포르쉐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포르쉐가 만든 벤츠가 있었다고?!
포르쉐 타입 2758, 메르세데스-벤츠 500E

이 자동차는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하다. 1998년 개봉한 뤽 배송의 영화, 택시1에서 푸조 406 택시와 대결하던 차량으로 나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악역의 차량이어서, 극중에서는 끝이 좋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