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GM대우라는 브랜드가 곧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던 때를 기억하는가? 당시 GM대우 홍보 부문 부사장도 기업 블로그를 통해 위 소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해명을 했기에 GM대우의 존속을 믿는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에 쉐보레로 브랜드를 변경하며 GM대우는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GM대우의 자동차들 중 패기 넘치게 출시했지만 제대로 망한 2가지 차량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보려 한다.
2007년에 출시한 G2X는 어떤 차?
강력한 주행성능 강조한 2인승 로드스터
G2X는 새턴사의 스카이를 GM대우에서 수입하여 판매한 차량이다. ‘2인승 로드스터’라는 당시 국내에선 찾아볼 수 포지션의 모델이었다. 그나마 기아에서 ‘엘란’이라는 2인승 로드스터 모델이 있었지만 1999년에 단종된 상태였고 8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2007년에 G2X가 출시한 것이다. G2X는 GM에서 개발한 로드스터 전용 플랫폼인 카파(Kappa) 플랫폼이 적용되었고 사이드멤버에 보조 프레임을 장착하는 등, 차체 강성 확보에 많은 신경을 썼었다.
새턴 스카이의 파워트레인 라인업으로는 최고출력, 179㎰의 2.4L 엔진과 264㎰의 2.0L 터보 엔진, 그리고 5단 수동변속기와 5단 자동변속기가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264㎰의 2.0터보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 사양으로만 판매됐었다. 스포티한 주행감각이 장점인 경량 로드스터인 만큼 한국GM이 수동변속기 장착 기종을 들여오지 않은 것은 꽤나 아쉬운 판단이었다. 그랬다면 도로에서 G2X를 몇 대라도 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콤팩트한 차체와 2.0L 터보 엔진의 힘을 운전자가 오롯이 수동변속기로 제어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펀드라이빙’이라는 장점이 분명 판매에 도움이 됐을 것 이다.
제로백 5.5초에 지붕까지 열리는데 판매량은 대체 왜?
하지만 G2X가 팔리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던 바와 같이 비싼 가격 때문이었다. 4,390만 원에 출시했지만 그마저도 얼마 안가 4,460만 원으로 인상하였다. 이 가격은 현대의 그랜저TG 최상위 트림을 구입하고도 400만원 가량 남는 금액이었다. 이 뿐만 아니라, 당시 소비자들 입장에서 더욱 용납이 안 되는 것은 G2X의 미국 판매가는 2,700만 원 정도였다는 점이다. 이토록 높은 가격 때문에 G2X는 출시 초기엔 판매량이 매월 한 자릿수를 기록하였고 한대도 팔지 못한 달도 있었다.
이에 GM대우는 약 1,000만 원 할인이라는 초강수를 두었고 할인을 시행한 7, 8월 달에만 92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G2X의 국내 출시 가격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할인이 끝나자 마자 판매대수는 다시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 쳤고 이에 GM대우는 G2X가 더 큰 고통을 받기 전에 놓아주는 선택을 했다. 출시 1년 만에 단종된 비운의 자동차 G2X는 아무리 GM대우의 이미지 쇄신용으로 출시한 모델이라 하더라도 판매량에 있어서 참혹한 굴욕을 겪었기에 약간의 동정심마저 든다.
그 당시, 국내 운전자들에게 있어 2인승 경량 로드스터는 생소한 포지션이긴 했지만 G2X는 차량 자체는 월 10대도 못 팔만큼 나쁜 차는 아니었다. 최고출력 264㎰의 2.0터보엔진은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데 5.5초면 충분했었는데 이는 당시 국산차 중에선 찾아볼 수 없는 성능이었다. 공차중량도 1,371kg으로 가벼운데다가 후륜 구동 방식이어서 펀드라이빙을 즐기는 데는 매우 좋은 조건의 차량이다. 게다가 수동이긴 하지만 소프트탑 컨버터블이어서 지붕을 열고 오픈에어링도 즐길 수 있다. 또한 특별한 하드웨어 튜닝 없이 ECU(Electronic Control Unit) 설정값만 튜닝 해줘도 310마력으로 최고출력을 올릴 수 있는 것도 튜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매력적인 점이다.
G2X는 4,390만 원이라는 거만한 가격으로 국내 시장에 호기롭게 출시했지만 월 평균 약 9대, 총 판매량 109대를 기록하며 1년 만에 자취를 감췄다. 원체 많이 안 팔린 차량이다 보니 현재 중고 매물도 5대 안팎으로 의도치 않게 희귀성을 자랑하고 있다.
실수의 반복 혹은
포기할 수 없었던 열정, 베리타스
놓을 수 없었던 플래그십 세단의 꿈
GM대우의 기함 자리를 맡았던 베리타스도 홀덴사의 카프리스를 이름만 바꿔서 수입해 온 차량이다. GM대우는 베리타스에 앞서 스테이츠맨이라는 대형차도 똑같은 방식으로 판매를 했었는데 1년 2개월간 1,760대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보이며 단종됐었다. 스테이츠맨의 부진을 설욕하고자 GM대우는 베리타스를 기용했지만 사실, 스테이츠맨과 베리타스는 각각 홀덴 카프리스의 2세대, 3세대 모델이다. 이미 제대로 망한 차량을 세대가 바뀌었다고 또 다시 들여오는 안일한 결정을 한 GM대우는 무슨 계획이 있었던 걸까?
안타깝게도 계획 같은 건 없었다. 스테이츠맨에서 그렇게 지적을 받았던 카오디오의 전원 스위치가 동승석 쪽에 위치해 있는 점과 음향 및 공조 기기 인터페이스가 우리나라와는 다른 좌측통행 차량 설계 그대로인 상태로 국내에 출시한 것이다. 그리고 윈도우스위치도 여전히 도어트림이 아닌 기어노브 뒤쪽에 자리잡고 있다. 대형차임에도 불구하고 파킹브레이크는 전자식이나 페달식이 아닌 핸드브레이크였던 것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깎아먹는데 일조했다. 다행히 핸드브레이크의 위치는 운전석 쪽으로 수정이 이루어졌었다.
애매했던 정체성, 럭셔리? 스포티?
베리타스는 대형세단임에도 불구하고 럭셔리 세단이 아닌 스포츠 세단으로 성격이 정해져 있었다. 최고출력255㎰를 발휘하는 홀덴의 알로이텍 V6 3600(MPi)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돼 대형차임에도 경쾌한 주행 성능을 보여준다. 또한, 특이한 점이 34.0kg.m인 최대토크가 1,900rpm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후기형으로 바뀌게 되는데 281㎰를 발휘하는 SIDI(직분사)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결합돼 연비와 출력이 약간 향상되었다. 또한 베리타스에 사용된 GM의 제타 플랫폼 역시 홀덴의 코모도어, 쉐보레 카마로 등 GM산하 브랜드들의 스포츠카나 스포츠 세단에 사용된 플랫폼이었다. 심지어 홀덴의 고성능 라인업인 HSV의 그랑지(Grange) 6.2L LS2 엔진도 수용하는 플랫폼이다. LS2 엔진은 쉐보레 콜벳이 사용하는 고성능 엔진이다. 이처럼 베리타스는 태생부터가 스포츠 세단이지만 국내에서 대형차는 정숙성과 안락함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베리타스와는 시장 성격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베리타스가 스포티한 주행에만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차종은 아니다. 휠베이스가 3,009㎜로 뒷좌석 공간은 매우 넓으며 뒷좌석 편의장치도 준수한 편이다. 천장에 DVD플레이어가 내장되어 있으며 블루투스 헤드폰도 같이 제공됐다.
가장 비싼 럭셔리 트림에는 뒷좌석에 열선 및 안마기능까지 있었으며 시트 앞뒤 조절과 각도 조절 그리고 헤드레스트까지 전동으로 조절된다. 전동 선쉐이드도 있으니 그 당시에 들어갈 수 있는 웬만한 뒷좌석 옵션은 거의 다 들어갔었던 셈이다.
운전석으로 가면 HID헤드램프, 메모리 시트, 트라이존 풀오토 에어컨, 크루즈 컨트롤, 내비게이션, DMB, 보스 프리미엄 사라운드 오디오 시스템 등 베리타스의 편의사양은 나름대로 풍부했다.
그리고 베리타스하면 우람한 펜더를 빼놓을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에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포티하면서 단정한 외관과 넓디 넓은 실내공간, 나쁘지 않은 편의사양을 갖췄는데도 베리타스는 왜 경쟁 차량들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을까? G2X처럼 국내출시 가격을 말도 안되게 책정을 한 것도 아니다. 베리타스의 출시 가격은 4,650~5,780만 원이었다. 당시 경쟁 차종이었던 제네시스BH는 4,338만원~6,394만 원(프라다 모델은 제외)이며 체어맨W도 4륜 및 리무진 모델을 제외하면 5,215만원~6,820만 원으로 베리타스의 가격 책정이 크게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베리타스의 총 판매 대수는 2,128대로 스테이츠맨과 별 차이 없는 수치다. 정말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대우자동차라는 브랜드가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작용한 것일까?
딱히 이렇다 할 단점이 없는 것 같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높은 부품 가격이다. 부품을 수입하다 보니 정말 사소한 부품에도 터무니 없는 가격이 책정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LED테일램프 1개 가격이 42만7,130원, 리어 번호판 플레이트 하우징이 29만7,990원이지만 제일 터무니 없는 부품은 37만4,000원이나 하는 보닛 엠블럼이다. 그래서 베리타스를 지금까지 보유한 오너들은 직접구매를 통해 부품을 조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굳이 이런 애호가의 경우가 아닌 일반적 소비자 입장에선 비슷한 값을 주고서 상대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도 약하면서 부품값이 비싼 GM대우의 베리타스를 구입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성향을 가진 대형 세단이라는 점은 분명 어떤 이들에겐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쉐보레 C8 콜벳에 대한 요구,
부응할 수 있을까?
GM대우도 사실 G2X와 베리타스를 출시하면서 높은 판매량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G2X라는 굉장히 색다른 모델을 출시해준 것만으로도 국내 소비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베리타스 역시 기존의 대형 세단의 틀을 깬 의미 있는 차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GM은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특색 있는 모델을 국내에 출시하며 승부를 걸었다. 이러한 GM대우의 행보 때문에 최근들어, 마니아들로부터 국내 출시 요청이 쇄도하는 차종이 하나 있다.